올해는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저마다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있지만, 지구촌의 큰 방향은 평화가 아니라 갈등과 대결 쪽으로 기울고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선 '신냉전'이라는 말이 이미 대중화되었고, 중동의 갈등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보면, 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은 냉전 도래 70년과 동전의 앞뒤 관계에 있다. 미국과 소련을 위시한 양 진영은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적'이 사라지자 잡았던 손을 놓고는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했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은 '광복'을 가져왔다. 그러나 종전과 함께 뿌려진 세계 냉전의 씨로 인해 '분단'도 강요되고 말았다. 종전이 평화로 이어졌다면, 그래서 '동지'였던 미국과 소련이 '적'으로 돌변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온전한 광복을 맞이했을 것이다.
세계 냉전이 뿌려놓은 한반도 분할은 좌우 대립과 남북 갈등을 거치면서 분단으로 귀결되기 시작했고, 급기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고착화되고 말았다. 그 이후 한반도는 정전체제라는 기나긴 늪에 빠져들고 만다. 분단이 70년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많지 않았듯이, 전쟁이 멈춘 상태로 62년을 흘려보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더구나 분단체제 극복은 물론이고 그 전환점에 해당되는 정전체제의 끝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덧 우리는 이러한 비정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더 기막힌 현실이 있다. 광복 70년을 맞이해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악화와 한미일 3각 동맹의 출현이 교차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둘 사이의 길항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악순환이었다.
광복 70년을 맞이해 남북한 당국에 '역사적 정언명령에 귀 기울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임기 반환점을 도는 박근혜 정부와 탈상을 끝낸 김정은 정권에게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는 절규 어린 호소도 쏟아졌다. 그러나 기대는 낙담으로, 호소는 탄식으로 바뀌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남북관계의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됐던 6.15 공동행사가 반쪽 행사로 전락한 것이 이를 상징한다.
이에 반해 올해를 한미일 3각 동맹 원년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퇴행적인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과거를 잊고 미래로 가자'는 미·일 동맹의 요구에 박근혜 정부가 '역사와 안보는 분리한다'는 희한한 전략으로 사실상 호응해온 결과이다.
일제 식민지배의 청산은 일본이 평화헌법을 준수하면서 평화국가로서의 위상을 분명히 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일본은 평화헌법을 족쇄로 여기면서 안보국가로 돌변하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견제하지는 못할망정 '안보 이익'을 앞세워 묵인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가 의미하는 바는 중대하다. 한미일 3각 동맹의 출현은 동아시아의 ‘이중 분단’을 고착화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70년 전에 그어진 38선은 한반도의 분단선이자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선'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약간의 조정을 거쳐 휴전선이 되었지만, 그 성격은 여전히 유효하다.
한미일 3각 동맹은 북한을 명시적인 적으로 삼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반발과 맞물려 휴전선의 철조망은 더욱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또한 3자 동맹은 중국을 잠재적인 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이는 곧 중·러 협력체제의 강화와 맞물려 동아시아의 세력균형선인 휴전선을 더욱 경직되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한반도는 '통일 대박'은 고사하고 냉전과 열전 사이를 오가는 영구 분단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우리가 '이중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게 필수적이다. 최근 동아시아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당분간 아시아에서 '데탕트'를 기대하긴 힘들다. 또한 동아시아의 신냉전 기류가 커진 데에는 한반도 정세가 악화된 탓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면, 코리아 데탕트를 통해 아시아 데탕트를 유도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 두 달도 남지 않은 광복 70주년 행사는 이를 위한 '골든 타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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