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정부 계획대로라면 15년 후인 2029년이 되면,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현재 23기에서 모두 36기가 될 전망이다. 또 정부가 고리 1호기의 영구 정지와 폐로 여부를 결정하고 나서, 핵 발전 산업계는 벌써부터 폐로 시장을 통한 이익 창출에 단단히 눈독을 들이고 있다. 한편, 낙찰가 1조1775억 원에 이르는 신고리 5, 6호기 주설비 공사 입찰의 승자는 삼성물산 콘소시엄으로 최근 결정됐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 특히 핵 발전 정책은 견제 받지 않는 독과점 시장에서, 산업·학계·관료·정치·언론의 소수 이해관계자에 의해, 각종 담합과 비리 속에서, 현재의 이익만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까지 미리 결정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핵 발전 이익 공동체의 확장 과정은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 생산-송전-소비 과정에서의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 환경 파괴와 시민 안전이 더욱 훼손되는 과정이다.
핵 발전 중심의 에너지 정책의 의도, 혹은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책의 수혜자와 피해자를 살펴보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핵 발전의 최대 수혜자
핵 발전을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이 누구인가? 지난 4월말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발간한 자료를 보면, 핵(원자력) 산업 분야 전체 인력은 2만8974명이었고, 원자력 산업 분야 총매출액은 21조4221억 원, 원자력 공급 산업체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0.8% 증가한 5조8195억 원이었다.
핵 발전 매출이 1000억 원 이상을 기록한 업체는 모두 12개로, ①건설업의 현대건설, 삼성물산, GS건설, SK건설, ②제조업의 두산중공업, 한전원자력연료, 효성, ③서비스업의 한전KPS, ④설계업의 한국전력기술, ⑤공공 기관의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연구재단, 한국원자력환경공단 등이었다. 또 100억 원 이상 1000억 원 이하의 매출을 기록한 업체로는 현대중공업㈜, ㈜대우건설, ㈜코센, 현대엔지니어링㈜, 한전KDN㈜,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등 33개 업체 또는 기관이었다.
특히, 현대건설은 국내 운영 중인 핵발전소 23기 중 14기 건설에 참여했고, 현재 건설 중인 국내외 9기 중에도 8기에 시공 대표사로 참여하고 있고, 두산중공업은 신고리 1, 2, 3, 4호기, 신월성 1, 2호기, 신울진 1, 2호기를 수주하는 등 국내 유일의 주기기 공급자 및 주 계약자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해 왔다. 핵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은 국가 예산과 세금으로 현대건설-삼성물산-두산중공업 등 소수의 핵 발전 산업체의 이익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정책이다.
핵 발전은 인권-민주주의-안전 위협
핵 발전을 통해 피해를 보는 집단은 누구인가?
먼저, 핵 발전은 노동자들의 안전과 기본권을 담보로 하고 있다. 핵발전소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채굴 광산의 노동자는 방사능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핵발전소 건설-운영-정비 분야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또 이들 핵발전소 외주-하청 노동자의 평균 방사선 피폭량은 한국수력원자력 정규직 노동자의 최대 15.4배에 달했다.
둘째,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은 부실한 이주 정책과 방사능 위험, 사고에 대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고리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은 가족 중에 암환자 없는 집이 없다고 증언한다. 셋째, 핵발전소에서 대도시로 송전하기 위한 가로 30미터, 높이 100미터의 송전탑으로 인해 밀양과 청도의 할머니들은 생계 위협 속에서 정부와 한전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넷째, 방사능 아스팔트, 방사능 농수산물, 방사능 인조 잔디 등 대도시의 생활 방사능도 심각한 상태이다. 다섯째, 10만 년 이상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 핵 발전 쓰레기(방사성 폐기물)는 현세대는 물론이고 미래세대의 해결할 수 없는 골치 덩어리다.
정부와 핵산업계는 핵 발전 외에는 대안이 없으며, 수출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핵 발전 정책을 이익-피해의 구조로 단순화시켜 보면, 현대건설-삼성물산-두산중공업 등의 소수의 핵 발전 산업체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주변 주민-송전선로 주민-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로시마, 고리, 밀양-청도, 그리고 영덕-삼척
지난 5월 29일은 반핵 인권운동가 김형률의 10주기였다. 어머니가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했고, 김형률은 유전성 희귀 질환으로 35년의 짧은 생을 고통 속에서 원폭 2세들의 인권을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았지만, 원폭 피해자와 그 자녀를 지원하는 법률은 국회에서 10년째 잠들어 있다.
핵발전소 인근에서 살다가 갑상샘암에 걸린 주민에 대한 핵발전소 운영사의 배상 책임 여부를 따지는 이른바 '균도 소송'에서 지난해 10월 1심 재판부는 운영사에 배상 책임이 있다며 주민 손을 들어 줬지만, 피고와 원고 모두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1945년 후쿠시마 원폭 피해자의 피폭 문제가 대를 이어 현재 진행형이고, 1978년 가동을 시작한 고리 핵발전소 주변 주민의 집단 암 발병에 대한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핵발전소 건설로 인한 밀양-청도 등 송전탑 피해자들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른 신규 건설 후보지로 지목된 삼척과 영덕의 민심은 들끓고 있다.
포화 상태에 이른 사용 후 핵연료는 전 세계에 영구 처분장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후대에 엄청난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 오로지 현대건설-삼성물산-두산중공업 등 핵 발전 공급 산업체는 전년 대비 총매출이 10% 이상 증가하는 등 호황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확정될 경우 미래의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수천의 핵발전소 최하층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 그리고 피폭과 사고 위험에서 목숨을 담보로 노동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핵 발전 정책인지 분명하다. 이번 제7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은 국민의 안전과 목숨을 담보로, 재벌에 의한 재벌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성격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임을 인식하자. 그리고 핵발전 이익 공동체를 해체하기 위한 정치-경제-사회의 실천을 통해 '조직'하고 '전환'하자.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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