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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파트 단지에 온정을…

[살림이야기] 인천 학익동 마을기업 '협동조합 다락'

아파트 단지를 마을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먹을거리도 나눠 먹고, 서로 배우고 가르치며, 어린아이들을 서로 돌보는 마을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인천 남구 학익동 신동아아파트 주민들의 마을기업 '협동조합 다락'이다.

모바일커뮤니티 항아리와 협동조합 다락

"둘째 주 공동구매 주문받습니다."
"유정란 1개, 김자반 1개, 사골 1개, 콩나물 1봉지, 요구르트 500밀리리터(㎖) 2개, 오곡쌀과자 3개 주문해요."

'항아리(항상 아름다운 마을을 줄인 말)'라는 모바일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이다. 마감이 임박했는지 주문이 줄줄이 이어진다. 협동조합 다락은 공동구매사업을 진행하는데, 매주 화요일까지 주문을 받고 목요일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물품보급소인 다락 사무실에 모여 주문한 물품을 나눈다. 가짓수가 15품목 정도로 얼마 되지 않지만 값싸고 품질 좋고 안전한 먹을거리라 주문량이 날로 늘어난다. 친환경 유정란과 콩나물, 노인 인력센터에서 만든 쌀과 자, 마을기업에서 만든 김자반·사골국물·미역·다시마, 홍성에서 오는 유기농 요구르트, 생산자에게 직접 산 쌀, 마을기업 박람회에서 인연을 맺은 곳에서 공급받은 더치커피도 있다. 최근에는 레몬청과 자몽청도 물품으로 등록됐다. 배달도 안 되고 신용카드도 안 되지만, 항아리 회원들은 발품을 팔면서 다락의 물품을 이용한다. 항아리는 다락을 탄생하게 했다. 현재 279명의 마을 사람들이 모바일에서 또는 마을 곳곳에서 열리는 항아리 활동에 참여한다. 여기서 다락의 역할은 항아리 활동의 추진체이다. 마을기업인 동시에 협동조합으로서 항아리 사업단이다. 다락이 하는 주요 활동은 위와 같은 공동구매사업과 재활용·재사용 물품을 나누는 활동 등 공유경제 활동, 엄마 강사 활동이다.

▲ 신동아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선비어린이공원에서 지난 5월에 나눔 장터를 열었다. 사무실이 없던 시절에 조합원들은 이곳에서 주문한 물품을 나누었다. ⓒ협동조합 다락

엄마들 모임이 협동조합 마을기업으로


항아리는 초등학교에서 책 읽어 주던 10명의 학부모들이 먹을거리 가운데 가장 걱정스러운 유정란을 공동구매하면서 시작됐다. 용인에 있는 친환경 사육장에서 생산한 유정란을 공급받았고, 쌀과 김, 다시마, 친환경 콩나물로 품목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공동구매를 집중해서 할 사업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을기업을 만들자고 의견을 모았다. 그때가 2013년 초다. 당시 마을기업을 하려면 협동조합이라는 법인이 필요했고, 2014년 1월에 각자 60여만 원의 출자금을 내고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그해 4월에 인천시 남구 마을기업에 선정되어 3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다락은 현재 조합원이 8명이다. 직장을 다니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한 두 사람을 제외하고 실질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6명이다. 그중 한 사람은 직장을 다녀 매주 목요일 물품 보급 날에만 참여하여, 일상적인 활동은 5명이 맡아서 한다.

조합원들은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거의 매일 사무실에 출근한다.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는 주간 회의를 열어 지난주 활동을 평가하고, 이번 주 활동 계획을 짠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사무실을 여는데, 목요일은 공동구매 물품을 보급해서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이렇게 해서 그들이 매월 나누는 활동비는 30여만 원. 이사장이라서, 이사라서, 일을 더 많이 했다고 하여 더 받지 않으며 똑같이 나눈다.

"경제적 수익을 얻으려는 목적보다 아파트단지에서 온정을 나누려고 시작한 일이라 매월 나누는 활동비에 구애 받지 않아요."

최장미 이사장은 사무실 운영비와 활동비를 이만큼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게 대견하다고 말한다.

학원 대신 엄마 강사

4300가구가 살고 있는 인천 학익동 신동아아파트는 30년 된 오래된 곳이지만, 유흥가가 없고 교통이 편리하다. 하지만 아이들의 모자란 공부를 채워줄 학원이 부족하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거나 다른 지역의 학원에 아이들을 보내기도 한다.

다락은 이런 마을 사람들의 절실함을 '엄마강사 활동'에 담았다. 책 읽어 주는 모임을 열기도 하고, 과학을 전공한 전직 학원 강사인 이지수 조합원이 나서서 과학교실을 열었고, 항아리 회원 중에서 수공예에 뛰어난 사람을 강사로 강좌를 열기도 한다. 올해 새로 기획한 행사로는 '영어수다', '수학수다'라고 해서 아이들 영어 공부나 수학 공부에 대해 서로 얘기 나누는 만남과 다과회가 있다. 먹을거리를 가져와 나눠 먹으며 아이들 교육이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인천에서 열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알리고, 다락 사무실에서 페이스페인팅이나 도예교실을 열기도 한다. 가장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은 과학교실이며, 냅킨아트, 북아트도 호응이 좋았다. 매년 두 번 열리는 나눔 장터는 다락이 주최하는 항아리 회원들의 행사다. 올해 5월 9일에 여섯 번째 나눔 장터가 열렸다.

▲ 과학을 전공한 전직 학원 강사인 이지수 조합원은 '엄마 강사'로 아이들에게 과학을 가르친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업이라더니 정말 신나 보인다. ⓒ협동조합 다락

각자 재능 살려 협동하는 보람


다락의 조합원들은 각각 다른 이력을 가졌다. 건축사·학원강사·기업컨설턴트·은행원·영업 관리사무직·공무원·사서 등. 그 경험들이 밑받침되어 은행원 출신인 성민희 씨와 영업 관리 경력을 가진 김혜선 씨는 회계 업무를 맡았다. 과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학원강사를 했던 이지수 씨는 다락의 과학교실을 담당하고 있으며, 마을에서 인기 있는 과외선생님 역할도 한다. 건축사 출신의 이지연 씨는 항아리 리더로 서류와 관련된 업무를 도맡는다. 다락의 총무 역할이다.

마을기업으로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운영하다 보니, 시에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다. 조합원 모두 힘을 모아 어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서류를 정리해 냈다. 최장미 이사장은 그 많은 서류를 만들어 낸 것이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이 단순한 모임을 꾸리는 것과 크게 달라 어려움은 있지만 스스로 능력을 발휘해 성과를 낼 때 이들은 협동조합 하는 사람으로서 자긍심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할 일을 찾은 점에서 생활의 활기를 얻는다.

다락에서 유일한 30대인 김혜선 씨는 "다락을 하기 전, 아이들만 키우고 살던 시절에 의기소침하고 우울한 적이 많았는데, 요즘 얼굴이 환해지고 생기가 느껴진다"며, 다락의 활동으로 생활의 활력을 찾았다고 했다. 은행원이었던 성민희 씨도 "전업주부보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하는 것, 특히 마을 살리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점에 뿌듯하"기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최장미 이사장은 며칠 전에 딸이 다니는 중학교에서 협동조합 강의를 했다. 딸이 엄마의 새로운 모습에 자랑스러움을 느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들은 '협동조합 하는 사람'으로서 자긍심이 대단하다. 특히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 더욱 가치를 느낀다.

오가는 이야기 마당이 점점 풍성해진다. 매일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고 더 많은 회원들이 다락의 마을 사업에 참여한다. 항아리 회원들의 참여와 그 사업단인 협동조합 다락의 추진력이 '항상 아름다운 마을' 신동아아파트 마을 커뮤니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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