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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글리츠를 차기 경제부총리로!

[주간 프레시안 뷰] 스티글리츠의 <규칙 새로 쓰기>

"35년 묵은 정책을 새로 쓰기 위한 공격적 청사진 (…) 그간의 정책은 극부유층에게 자산의 거대한 집중을 안겨주고 점점 중산층을 압박해 왔다."(<뉴욕타임스>)

"불평등과 싸우기 위한 새로운 매니페스토."(<워싱턴 포스트>)

"미국의 경제적 불평등에 관한 비밀스러운 진실 : 이 이슈를 이런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기 어려울 것이다."(<타임>)

"우리의 경제와 그 규칙에 대한 근본적인 개조."(<슬레이트>)

지난 5월초에 발간된, 스티글리츠 미국 콜럼비아 대학 교수의 보고서 <규칙 새로 쓰기>(Rewriting the Rules, 루스벨트 연구소 펴냄)에 대한 언론의 평입니다. (☞바로 가기)

하지만 스티글리츠 스스로는 그리 새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불평등의 대가>에서 이런 정책 방향을 이미 제시했으니까요(제가 쓴 서평을 참고하시죠. (☞바로 가기). 이 보고서는 2000년대 들어 그가 꾸준히 써온 미국 경제에 관한 비판과 대안을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보고서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대체로 민주당의 가장 진보적인 후보가 받아들일 만한 내용입니다. 비슷한 성격의 보고서가 또 한 편 있죠. 올해 1월에 발간된 <포용적 번영 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Commission on Inclusive Prosperity, 미국진보센터 펴냄)가 그겁니다. 이 보고서는 하버드 대학의 서머스 교수가 썼습니다. (☞바로 가기)

대선을 앞두고 클린튼과 오바마대통령의 경제자문회의 전 의장들이 비슷한 성격의 글을 써낸 건데요, 스티글리츠는 주류경제학 내의 이단아이고, 서머스는 주류경제학 내의 네오케인지언이니까 서머스 보고서가 조금 더 오른 쪽에 있을 겁니다(서머스 보고서는 아직 다 못 읽었는데 시간이 나면 두 보고서의 정책을 비교하는 글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제도주의자 스티글리츠, 구조개혁가 스티글리츠

▲스티글리츠 미국 콜럼비아 대학 교수. ⓒ연합뉴스
스티글리츠는 정보경제학으로 존베이츠클라크 메달과 노벨경제학상을 탄 주류경제학자입니다. 하지만 '정보경제학="광범위한 외부성 이론"'으로 신고전파 경제학(또는 "새로운 합의 모델(New Consensus Model)")을 강력하게 비판하던 스티글리츠는 이제 명시적으로 제도경제학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우리의 가설은 시장의 힘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과정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시장은 법률 및 규정, 그리고 제도에 의해 만들어진다. 모든 법률, 모든 규정, 모든 제도가 분배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 사회의 규범과 제도는 진공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니다. (…) 그 가운데 상당히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바로 상위 1퍼센트이다."(<불평등의 대가> 149~150쪽)

(여기서의 제도주의는 베블렌이나 폴라니, 커머스 등의 구제도주의를 말합니다. 스티글리츠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2001년판 서문을 쓰기도 했죠.)

이 보고서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서 "공공과 민간 간, 고용주와 노동자 간, 혁신과 동반성장 간, 그리고 다른 모든 이해관계 간의 권력균형을 결정하는 규칙들"(p7)에 주목합니다. 즉 '규칙=제도'를 결정하는 권력관계가 분석의 중심에 놓인 거지요. 이렇게 보면 현재 미국경제의 가장 큰 문제인 불평등의 심화와과 저성장은 불가피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규칙을 선택했느냐에 따른 결과이고, 따라서 이 규칙을 새로 쓰면 불평등과 저성장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림1> 빙산의 일각


스티글리츠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불평등, 즉 낮은 월급의 일자리, 생활비용의 증가, 깊은 불안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고 말합니다(<그림1>의 맨 윗 부분). 주류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이 기술혁신이나 세계화(<그림1>의 아랫부분)와 같은 불가피한 경향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원인을 제거하려 하면 오히려 부작용만 불러일으킬 것이기에 기술변화에 걸맞은 교육 등 '온건한' 대증요법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스티글리츠는 이런 처방을 '패배의식'에 물든 것이라고 일축합니다. "이 보고서의 전제는 빙산의 중간부분을 재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글로벌한 힘들(기술혁신이나 세계화)아 자기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 결정하는 매개 구조를 고칠 수 있다"(p20)라는 거죠. 즉 이 리포트는 <그림1>의 중간 부분인 금융규제와 기업지배구조, 조세구조, 무역과 금융에 관한 국제협정, 거시경제정책, 노동법과 노동시장 접근, 구조적 차별에 대한 정책 처방입니다. 모두 경제구조에 관련된 주제, 따라서 각 집단의 이해관계가 격렬하게 충돌하는 어마어마한 주제들입니다.

즉 말하자면 구조개혁에 관한 처방들이죠. 구조개혁이라면 바로 IMF, OECD 등 국제기구, 주류경제학이 별로 뾰족한 수가 없을 때 내세우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노동시장 유연화, 민영화와 규제완화, 긴축 재정 같은 것들이죠. 하지만 스티글리츠의 '구조개혁'은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구조개혁의 방향 : 최상류층 길들이기와 노동자 세력화(Empower Workers)

이 보고서 자체가 스티글리츠 책들의 요약이기 때문에 더 요약한다는 건 아마 소제목들을 되풀이하는 데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에 스티글리츠가 새로 강조하는 부분만 소개하겠습니다.

"최상류층 길들이기(Taming the Top)"는 '시장의 힘=독점의 규제', '금융부문의 개혁', '기업의 장기 경영 장려', '조세 개혁' 등을 담고 있습니다. <불평등의 대가>에서 정의했듯이 스티글리츠는 현재의 불평등이 '지대 추구'의 결과라고 봅니다. 그리고 지대는 경제적, 정치적 독점력에서 비롯되는 거죠. 따라서 그는 '21세기형 경쟁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특히 지적재산권, 글로벌 무역협정, 보건의료 가격, 소비자금융 보호의 문제가 바로 독점의 결과이기 때문에 여기에 경쟁을 도입해야 한다는 거죠.

흥미롭게도 스티글리츠의 경쟁은, 국가나 규제의 배제가 아니라 국가의 개입에 의해서 보장됩니다. 즉 국가의 새로운 규칙 아래서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다는 거죠. 의약품 지적재산권에 관해서는 복제약을 허용해야 하고, 글로벌 무역협정의 투자자국가중재해결제도(ISDS, 이건 투자자의 독점권이죠)를 삭제해야 하며 정부가 약값 산정의 협상에 나서서 값을 떨어뜨려야 하고, 정부가 소비자와 대학생의 채무 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겁니다.

국가에 의한 공정경쟁의 보장이라는 방향은 이 보고서의 각종 정책에서 되풀이됩니다. 예를 들어 모기지 금융시장의 약탈적 대출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주택금융("21세기 주택금융시스템", 89쪽)이 개입해야 하고 고등교육에 대한 접근을 높이기 위해서는 공공재정의 확대, 대학생 대출의 재구조화(미래 소득에 따른 변제), 사립학교에 대한 감독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84~85쪽)는 겁니다.

우리나라 진보 진영에서도 국민연금을 이용해서 국영정유회사, 국영통신사를 만들어 이들 카르텔 내에 경쟁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있었는데, 스티글리츠의 정책 전반에도 그런 생각이 흐르고 있는 거죠.

이 보고서가 권력을 정면에 내세웠다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단순히 정부가 아니라 각 집단의 힘이 균형을 이뤄야 경제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니까요. 피케티나 포스트 케인지언들과 마찬가지로 스티글리츠도 불평등의 근본 원인으로 노동소득몫의 하락을 지목합니다. 즉 노동자의 힘이 약화됨에 따라 실질임금의 상승 속도가 생산성 상승 속도를 밑돌았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림2> 노동소득 몫의 하락은 하위 99%에서 두드러진다


<그림2>에서 보듯이 국민소득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85.3%에서 2010년 78.544%로 약 7%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최상위 1%의 임금을 빼면(스티글리츠는 이들의 월급은 사실상 지대라고 주장합니다) 78.4%에서 63%로 15% 이상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할 뿐 아니라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공정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장"(77쪽)해야 합니다. 즉 노동자의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새로운 규칙이 필요한 거죠. 스티글리츠는 기존 노동법의 개정을 통한 협상권의 강화, 공공부문에서 기준 세우기, 노동기준의 이행 강제와 위반에 대한 처벌 강화, 최저임금 인상, 강제 초과임금의 소득상한선 확대(법정 근로시간 이상의 초과근무에 대해서 1.5배의 초과임금을 부과하는 소득 상한성을 올려야 한다) 등을 제시합니다(77~79쪽). 이런 진단과 처방은 포스트케인지언의 "소득주도 성장론"과 동일합니다. 이 외에도 또 인종과 성별 차별(구조적 차별)을 없애기 위한 정책도 제시하고 있죠.

물론 한국과 미국은 서로 다른 사회입니다. 따라서 스티글리츠의 처방을 한국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영향, 특히 외환위기 이래 미국 주류의 정책처방전이 한국에 직수입되었다는 점에서 큰 흐름은 같다고 봐야 할 겁니다. 스티글리츠의 이번 보고서는 경제학자나 정책입안자들에게 중요한 참고자료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예 스티글리츠를 차기 경제부총리로 영입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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