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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집회'에 늘 있던 그 사람, 많이 아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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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집회'에 늘 있던 그 사람, 많이 아픕니다

[기고] 풍경처럼 당연한 사람 오렌지, 힘내요

'오렌지'를 처음 만난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처음 그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 건 아마도 2013년 그의 사진전 준비를 하면서였던 것 같다. 반올림의 소개로 만난 그는 나에게 열심히 정리해온 자신의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보여주었다. 그리고 상당히 멋쩍은 표정으로 자기가 생각하는 전시에 대해 차분히 이야기해 나갔다. 전시가 처음이라며 조금은 부끄러워했지만, 누구보다 자신의 사진에 대해 명확했다. 지금 나에게 각인된 오렌지의 첫 모습이다.

나는 아직 그의 손에 카메라가 들려있지 않은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자그마한 체구였지만 언제나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한 손에는 큼지막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무엇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였는지, 무엇 하나라도 놓쳐버릴까 불안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오렌지는 긴 머리, 큰 눈, 배낭, 카메라 정도로 상징된다.

오렌지의 가방 옆 주머니에는 언제나 참치 캔 하나가 볼썽사납게 구겨져 있었다. 삼성 기흥공장 앞에서 둘이 밥을 먹다가 내가 물었다. 그건 무겁게 왜 매일 가지고 다니느냐고. 그는 대단한 정보라도 되는 양 촬영하다 보면 밥을 못 챙겨 먹을 때가 많은데 다른 것보다 단백질이 많은 참치가 건강에 제일 좋다고 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참 별나다 싶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하기만 하던 그가 쓰러졌단다.

▲ 지난해 3월 3일 '고(故) 황유미 7주기 추모 및 반도체·전자산업 산재사망 노동자 합동 추모 주간'을 맞아 "유미 씨와 함께 맞는 봄, 지금 여기!" 행사 후 기흥에서 수원역까지 행진에서 오렌지가 사진을 찍고 있는 장면. ⓒ홍진훤

삼성 관련 집회에 가면 늘 오렌지가 있었다. 가끔 그가 안 보일 때는 병원에서 투석을 받고 있을 때뿐이었다. 그곳에서 그를 만나도 왔느냐고 인사하지 않았다. 그곳에 그가 없더라도 어디에 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 오렌지는 그렇게 당연한 사람이었다. 병원이 아니면 그 현장에 있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왜 당연해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게 오렌지는 여전히 풍경처럼 당연한 사람이다.

그런 풍경 같은 이의 부재는 많은 이들의 마음에 짐을 남겼나 보다. 많은 사람이 오렌지를 응원하고 걱정한다. 나도 어쩔 수 없이 그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심장이 잠시 멈췄다는 소식을 듣고 입 밖으로 낼 수 있었던 소리는 그저 "아…" 정도였다. 잠시라도 멈출 것 같지 않던 그의 셔터 소리가 잠시 멈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걸렸다.

요 며칠 그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엔 조금 오래 병원에 있는가 보다. 이틀에 한 번씩 투석을 받는다더니 이번엔 조금 더 시간이 오래 걸리는가 보다. 오렌지는 원래 그랬으니까. 잠시 병원에 있다 밝은 얼굴로 카메라를 들고 나타나는 게 그였으니까. 그게 당연하니까.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와 만난 건 지난달 세월호 집회 때였다. 최루액 물대포를 함께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구석에서 콜록대고 있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괜찮으냐고 묻던 그였다. 그렇게 단단한 사람인데 조금 쉴 시간이 필요했나 보다.

오렌지가 일어나 다시 카메라를 들고 내 앞에 나타났을 때 언제나처럼 나는 왔느냐고 인사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서로 씨익 웃고 말겠지. 활동비를 모으고 모아서 새 노트북을 샀다며 한걸음에 달려오던 그의 모습이 선하다. 다음에는 꼭 같이 전시하자던 그의 약속이 또렷하다. 내가 일본에 갈 때마다 건담을 부탁하던 그의 목소리가 선명하다. 다시 만난 오렌지와 나는 또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나 하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풍경처럼 당연한 사람. 그의 오랜만의 쉼이 너무 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빨리 다시금 우리의 단단한 풍경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미안하지만 조금 더 힘을 내봐요. 오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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