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은 6월 1일부터 시사평론가 김종배 씨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시사통>과 기사 교류를 시작합니다. 이 기사는 6월 1일 '이슈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날 김진호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 연구실장과 함께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종교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시사통> 바로가기)
김종배: 이슈 인터뷰 시간인데요. 아침 방송에서 예고해드린 대로 오늘 이슈 인터뷰에서 집중 탐구할 사람은 황교안 총리 후보자입니다. 이제 여야 인사 청문 특위위원들이 구상됐고, 본격적인 검증 국면에 들어갈 텐데요. 이것저것 이야기가 조금씩은 나오고 있습니다만, 이건 추후에 제대로 짚을 기회가 차례로 있겠죠. 그래서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황교안 총리 후보자를 둘러싸고 이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념적으로는 보수이면서, 또한 종교적으로는 개신교 전도사이기도 한데요.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서 이른바 기독교 보수주의자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런 분석이라고 할까요? 이를 어떻게 봐야할 지에 대해서 전화 연결해서 집중적으로 털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3시대 그리스도교 연구소의 연구실장을 맡고 있는 김진호 목사를 전화로 연결합니다. 여보세요?
김진호: 네. 여보세요.
사: 이 점부터 짚을게요. 저희가 아침 방송에서 기독교 보수주의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지적해 주셨어요. 기독교와 개신교는 다르다. 개신교 보수주의라는 표현이 맞지 않느냐고 지적하셨어요. 먼저 용어 정리부터 하고 가죠. 어떤 게 맞습니까?
김: 기독교는 천주교와 개신교, 정교회 등 여러 종파들이 있습니다. 황교안 씨는 배타주의적 개신교도인이니까 개신교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사: 개신교 보수주의자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용어를 그렇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보수주의자가 나온 이유는 이른바 미국식 분석틀에 입각해서 황 총리 후보자를 바라본 것 같습니다. 아무튼 황교안 총리 후보자를 개신교 보수주의자로 분석하는 이런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총평부터 부탁드릴게요.
김: 네, 이분은 배타적 개신교 보수주의자죠. 미국의 근본주의에 많이 경도되어 있는 분입니다.
사: 배타적 개신교라고 하면요? 풀어주십쇼. 어떤 뜻인가요?
김: 다른 종교나,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분들에 대해서 마음을 열지 않는 신앙적 태도를 의미합니다.
사: 예를 들어서 불교 사찰에 가서 무언가 행동을 하는 분들을 떠올리면 됩니까? 극단적인 경우로는요?
김: 그렇습니다.
사: 그렇다면 배타적 개신교의 교리에 입각한 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겁니까?
김: 여러 형태가 있는데요. 일단, 그리스도교 중심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요. 다른 종교는 잘못된 것이거나, 허위의 신앙을 갖고 있다고 봅니다.
사: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요?
김: 네. 그런 사람들을 개조해야한다고 생각을 하고요. 개조하기 위한 방식으로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가령 법적 제도적 방식을 취하느냐 등 다양한 방식과 유형으로 갈립니다.
사: 그러면 황교안 총리 후보자가 총리가 됐다고 가정을 해 보죠. 그렇다면 황교안 총리 후보자의 종교적인 색채가 총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김: 저는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 예를 들어서 설명해주세요.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김: 예컨대 이 분이 보여줬었던 말들 중, 사법시험을 일요일에 치르는 것을 합헌으로 결정한 헌재 판결에 대해 유감 표명을 했어요. 일요일 시험을 치르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일요일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신앙의 안식일을 태양력 사회로 바뀌면서 버전이 전환된 것이라고 보거든요. 일요일은 안식일의 변형입니다. 이스라엘 신앙에서 안식일의 의미는 쉼입니다. 그것도 주인을 향해서 신의 명령 형식으로 안식일을 쉬라고 말을 한 것이에요. 안식일은 자기 뿐 아니라 가족, 식객, 종, 가축, 땅도 쉬게 하라는 것인데요. 이분이 원하는 것은 쉼을 만들어야하는 사회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요. 일요일에 교회를 갈 수 있도록 하라는 데 관심이 있었던 것이죠. 이분의 종교적 편향성을 드러내주는 특징인데요. 우리가 24시간 영업하는 업체들이 많고요, OECD 회원국 중에 노동 시간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죠. 그런 것들은 그렇게 해야만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인건비가 저렴하기에 가능한 것이죠. 이런 나라에서 현실적으로 쉼은 불가능한데, 국무총리가 될 사람이 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제도나 법적 형식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갈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총리로서 적절한 태도는 아닙니다. 그것이 한 예죠.
사: 타 종교에 대한 태도가 총리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 일단 일요일의 문제가 타종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문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명박 정부 당시 잘 드러났던 것처럼, 기독교 중에서는 특정 형식의 기독교에 여러 형식의 특혜를 줬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다른 종교로 하여금, 기독교와 비슷한 방식의 종교를 만들게 하는 종교 간의 갈등과 경쟁을 부추기게 하죠. 종교가 함께 합심해서 우리 사회의 분열을 타개하고, 사회 통합을 지향하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하는 방식의 종교 정책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의 종교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죠. 이 분이 의도하고 한 것이 아니더라도요. 몸에 베어있는 종교관이 많이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사: 편향적인 종교관의 한 예로 과거 샘물교회 신도들의 인질 사태가 있지 않았습니까? 이것에 대한 황 총리의 발언을 되새기게 하는 보도가 많았습니다. 전도를 위해서는 공격적인 것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전도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듯 한 발언을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바라봅니까?
김: 일반적으로 근본주의적 기독교도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이죠. 그것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선교와 단기 선교를 혼돈하고 있는 것이에요. 선교는 타 사회에 낯선 곳에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요. 자기 전체 또는 생명까지 버려야하는 일이고요. 전 생애를 걸고 나서야 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큰 결단과 긴 준비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단기 선교는 그런 콘셉트가 아니고요. 일종의 신자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이름은 선교로 되어 있지만요. 가령 청소년 극기 훈련 캠프 같은 것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습니다만 그 문제는 차치하고, 그러한 프로그램 자체만 볼 때 그러한 프로그램을 만약에 시리아 교전 지역에서 한다면 난리가 날 것이에요. 그런데 단기 선교를 그렇게 운영한 것이거든요. 이것은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어디에 가서 선교를 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고, 이 교육 프로그램 자체가 굉장히 문제적으로 진행이 된 결과가 그렇게 아프긴 피랍사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것을 마치 선교처럼 해석했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이고요. 두 번째 문제는 선교가 무엇인가에 관한 문제도 있어요. 이 분이 황 후보자가 생각하는 선교관은 선교사이거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종교의 관점이거든요. 이런 경우는 선교사가 파송 종교에 비해 우월감을 전제해요. 그렇기에 공격적 전도가 수행되는 것은 선교사가 속한 사회보다는 가난한 사회에서 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선교를 과시하는 방식 등으로 전개가 돼요. 이것은 정복의 다른 형식이라는 것이죠. 이런 것들이 문제가 제기돼서 오늘날에는 선교가 피선교지역의 사람들의 필요를 출발점으로 하는 선교가 중요시 여겨지고 있어요. 그래서 피선교 대상인 사람들의 필요와 그것을 정의와 평화의 관점에서 선교사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선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의와 평화의 관점에서 삶을 나누는 것이 선교라는 것인데요. 황교안 후보자의 경우는 낡은 선교관을 갖고 있고요, 그러한 낡은 선교관은 종교인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총리로써 국민을 통합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역할에서 볼 때는 부적절한 종교 인식이죠.
사: 예를 들어서 중동에 파병을 한다든지, 여행을 제한한다든지, 여러 가지 정부 정책적 결정 과정과 결정상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서 황교안 후보자가 총리가 된다면, 총리가 자신의 종교관에 따라서 일정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시나요?
김: 네. 그 분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 같고요. 그 분 주변에서 그런 형태의 로비나 제안들이 상당히 많이 가겠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피 선교 지역 사람들을 열등하게 보는 가치관이 국제 정치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사: 그런데 또 일각에서는 황 총리 후보자가 어떤 종교적 신념을 갖고 있든지 그건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것이며, 공직을 맡기 이전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니지 않느냐. 동시에 법무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에 어떤 종교적 영향을 미쳤는가, 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김: 그분이 그렇게 실제로 생각을 하고, 두 가지 형식으로 공직을 수행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제는 어떤 사람도 순수한 개인으로 있을 수 없죠. 그가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 그에게 어떤 의견을 전달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터고요. 상당히 편향적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얽혀 있을 것이고요, 국무총리는 특정한 업무를 하는 검사가 아니죠. 통합과 총괄적 역할을 하는 역할입니다. 종교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는 측면이 있을 것 같고요. 실제로 종교인 과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은 종교인 과세가 상당히 종교 간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고, 종교와 비종교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도 있는 측면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이 분이 결코 중립적으로 자신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의심스럽다는 점이죠.
사: 황교안 총리를 두고 미스터 보안법이라고도 부르곤 합니다. 국보법에 대한 해설서도 썼었고, 국보법 존치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주장했던 사람이고요. 그런데 그의 국보법이라든지 공안문제에 대해서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오래된 공안검사로서의 경력으로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데요. 혹시 황 총리 후보자의 종교적 편향성 신념에서 이념적 편향이 나타난 측면 역시 분석이 가능할까요?
김: 자료가 물론 더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일단은 개연성은 상당히 있는 것 같아요. 이분이 개인적으로도 근본주의적 신앙이 신실한 분이지만, 그 분의 가족도 월남자 가족이잖아요. 서북 지역 기독교가 갖고 있는 한국 개신교의 어떤 강력한 반공주의의 영향 망이 이 분이 어렸을 때부터 베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 연원을 거기에서 찾을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김: 지금 한국 기도교는 40년대 중반부터 50년대 중반까지 굉장히 강력한 반공주의 성향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기총이 창립되는 80년대 말부터 현재의 개신교는 과거의 강력한 반공주의 행동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듯한 징후들이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이 분이 갖고 있는 공안 검사로써의 이념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그 분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행보와 관련해서 극우주의가 강하게 발현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봅니다.
사: 한국 개신교는 왜 초강경 반공주의적인 성향을 보일까요? 어떤 역사적 배경에 기초한 것일까요?
김: 해방 당시에 남한보다 북한이 2배 정도 개신교 신자 인구가 더 많았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신자의 거의 86%가 장로교 신자이고요, 그들 대부분이 평안도 황해도라는 서북 출신이에요. 평안도 황해도는 40년대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강성의 근본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는 분들이 계셨어요. 그 분들이 북에서 권력 투쟁을 하다가 패배를 했고. 정치 보복을 상당히 당했습니다. 그 분들의 상당수가 월남을 했고요, 월남자 개신교도의 수가 7만 명 당시 되었습니다. 남한 개신교 신자가 당시 10만이 되었으니까 남한 개신교 신자의 거의 70%정도가 그분들인 것이죠. 그런데 그분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심을 갖고 내려오신 분들입니다. 남한 사회는 그 당시에 문정 당국이 조사한 것으로 77%가 사회주의 공산주의적인 성향이 강했고요. 남한 사회를 기독교 반공 국가로 만들고자 했던 군정의 주요한 파트너가 서북 지역에서 내려온 월남자 기독교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분들이 상당수 있었고요. 미군정에 친화적이었고, 그 분들이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미군정의 행정 시스템을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일제강점기 시절의 공무원이었던 분이나 경찰이었던 분을 천거했고 그러면서 제1공화국이 등장하는 밑거름이 되었어요. 그 와중에서 그분들은 강도 높은 반공 투쟁을 통해서 주체화되었습니다.
사: 그 때 당시에 있었던 서북청년회가 그 흐름에서 불거진 일단의 세력으로 볼 수 있네요.
김: 네. 대표적이죠.
사: 그렇다면 서북 지역은 당시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찾아볼 수 없는 강성 근본주의적 성향을 띄었다고 하셨는데요. 왜 그런 것일까요?
김: 미국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이농민들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사회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 때 대종교 신비주의 운동이 활발해져요. 그러한 신비주의 현상은 미국에서 극우주의와 결합합니다. 그런데 미국 사회에서 그런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난 지역 중에 하나가 시카고 지역입니다. 시카고 지역의 부흥사들 상당수가 장로교였고요, 그들이 한반도의 선교사로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 분들이 주로 평안도 지역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쪽에서 일종의 종교적인 대 각성 운동이 일어나는데요, 그 분들이 사이즈가 커질 때마다 자기의 같은 계열 사람들을 불러오죠. 그런 이유로 인해 강성 근본주의가 발전하게 됐던 것이죠.
사: 종교적으로는 근본주의 정치적으로는 극단적 반공주의로 그렇게 무장을 하게 되는 것이네요. 그러면 황 총리 후보자의 경우도 교회에서의 강연 내용을 가지고 설왕설래가 되고 있어요. 그 이전에 문창극 씨 경우도 교회의 강연이 낙마 이유가 되었습니다. 교회 강연이 문제가 되는 배경에도 교회라는 공간에서의 일체감과 종교적 정치적 일체에서 비롯되는 강연 내용이고요, 그것이 사회의 영역으로 나오면서 문제가 되고 있다는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까?
김: 그러니까 예컨대 2007년도가 대선이 있었던 무렵이죠. 개신교에서 많은 개신교 신자들과 교회에서 굉장히 부흥처럼 일어났던 것이 성 시화 운동이었어요. 성 시화라는 일종의 이명박 서울 시장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내용입니다. 각 지역에서 기독교 신자 엘리트들이 자기의 영역을 신에게 바치겠다는 선서를 했던 것이에요. 그런 것들이 그 자체가 정치적인 정책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니지만요, 그것이 일종의 기독교도들을 결속시키는 선거 연합 프레임이 됐던 것이죠. 그래서 2007년도에 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한국식 바이블 벨트가 만들어졌잖아요. 이것의 중요 기폭제가 07년도에 일어난 성 시화운동이었어요. 문창극씨나 황교안씨나 이런 분들의 신앙적 표현들은 그러한 자장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프레임들이 그 안에서 어떤 문화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고요. 2012년도 대선 당시에는 바이블 벨트가 한국에서 작동하지 않았거든요. 아마도 그런 것들을 꿈꾸고 익숙하게 되풀이 시키려는 노력들이 그분들 안에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저희로서는 우리 사회의 건강한 발전과 화해와 타협이 필요한 시기인데, 그런 얘기들이 부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요소가 되죠.
사: 목사님 말씀은 그러한 움직임들이 하나의 정치적 힘으로 권력 창출의 힘으로 작동하며 조직화되어 있다는 뜻이시네요? 그렇습니까? 잘 알겠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했던 취지로 돌아가서 다시 질문 드리겠습니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을 때,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떤 반박이 있냐면. 그 발언들은 종교적인 세계관일 뿐이고 그것이 총리 직무를 수행하는 데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다. 그것을 국가 정책과 어떻게 동일시해서 볼 수 있는가? 그것을 분리해서 볼 수 있나요?
김: 우리 사회 인구의 90%가 기독교인이라면 그 말은 문제가 되지 않을 거에요. 그런데 18%가 기독교인이에요. 80% 이상의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요, 18%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그런 식의 신앙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공직자가 그렇게 얘기했던 것이 하나의 사례로 기억되고 있어요.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우리들은 그들의 종교적 표현들이 예사스럽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공직자라면 전 국민을 대변하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더욱 바람직하게 자리 잡는 데도 의미가 있을 겁니다.
사: 알겠습니다. 말씀 잘 들었습니다.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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