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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명가, '죽음의 기업'으로 남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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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 명가, '죽음의 기업'으로 남을 텐가?

[박점규의 동행] 정리 해고 6주년 쌍용자동차의 갈림길

5월의 마지막 날,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상구(47) 씨는 설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130개가 넘는 문항을 앞에 놓고 회한에 잠겼습니다. 2009년 6월 8일 정리 해고를 통보받고 지나온 6년, 악몽의 기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20년 전인 1995년 쌍용자동차에 입사한 그는 체어맨과 로디우스 조립 라인에서 일을 했습니다. 대한민국 1호 자동차 회사에서 최고의 자동차 체어맨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했습니다. 두 달에 5000원만 내면 되는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주야 근무를 했습니다. 하루 세 끼를 모두 공장 밥으로 때우며 돈을 모았습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휴일에는 좋아하는 등산을 다녔습니다. 회사가 어렵다고 해서 빚을 내 렉스턴을 샀습니다. 매달 50만 원이 넘는 할부금을 갚느라 허덕였지만, 회사를 위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가정을 꾸리고 아파트를 장만하고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소박한 꿈은 정리 해고를 통보받은 2009년 6월 8일 멈추었습니다.

소박한 꿈이 깨진 2009년 6월 8일

설문 문항을 읽어나갑니다.

"해고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낀다" - "매우 그렇다"
"해고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 - "매우 그렇다"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 "매우 그렇다"
"내가 해고당한 것이 남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내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는다" - "매우 그렇다"

"전혀 아니다"와 "아니다"는 대답을 할 수 있는 항목이 없었습니다. 상구 씨는 그 동안 가족이나 친구가 자신 때문에 난처해하지 않도록 사람들과 같이 있는 자리를 피하고, 해고 당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을 거부할까봐 가까이 하는 것을 피했습니다.

가족이나 친척, 공장 안 동료들이나 동창들을 만날 때 느꼈던 감정이 질문지에 고스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6년의 시간, 함께 싸우고 있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홀로 있는 듯한 외로움을 느끼고,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아 슬퍼지는 일들이 잦아집니다.

정리 해고 6년은 사람 좋고 성격 좋은 상구 씨의 가슴에도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았습니다.

정리 해고 6년의 참화

세계 노동절을 하루 앞둔 4월 30일 오후 4시, 쌍용자동차에서 28번째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평택공장에서 차체 공정 품질 관리 업무를 했던 김모(49) 씨가 자택에 쓰러져 있는 것을 작은 딸이 발견하고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배우자와 대학교 1학년, 중학교 2학년 두 자녀를 두고 있었습니다.

▲ 2011년 쌍용차 평택 공장 정문 앞에서 열린 고 임무창 조합원의 노제. ⓒ프레시안(손문상)

그는 2009년 8월 6일까지 진행된 77일간의 쌍용자동차 공장 점거 파업을 마지막까지 함께 했고, 8.6 합의에 따라 희망 퇴직을 신청했습니다. 이후 전북 익산으로 내려가 부모님 간병을 하면서 친구 대리점을 통해 보험 설계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그에게 6년은 기나긴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쌍용차 해고자라는 낙인으로 대인관계가 힘들었고, 경제적 어려움은 정신적 고통으로 이어져 정신과 병원에서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에게는 마지막 희망이 있었습니다. 쌍용차 굴뚝농성 이후 시작된 해고자 복직을 위한 노사 교섭이었습니다. 그는 예전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교섭 진행 상황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해고자(187명)와 노사 합의에 따른 희망 퇴직자(353명) 복직에 대한 내용은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방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습니다.

6년 만에 재개된 교섭은 희망 고문이 되었고, 28번째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6년 만에 재개된 교섭, 희망고문, 28번째 죽음

지난 4월 쌍용차 티볼리는 내수 3420대, 수출 2327대로 국내외 총 5754대가 팔렸습니다. 전체 쌍용차 판매량 1만2531대의 절반에 이릅니다. 3월 생산물량 4672대보다 1000여대가 많은 것으로 지금 계약을 하더라도 차를 인도받는 데까지 최소 1달 이상이 소요됩니다.

5월 28일 최종식 쌍용자동차 사장은 "올해 티볼리 생산을 당초 계획한 3만8000대보다 60% 늘려 6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티볼리는 출시 4개월 만에 국내에서 1만 대가 넘게 판매됐고, 글로벌 런칭 후 해외 시장에서의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내년에는 10만 대로 판매 목표를 세웠다"고 밝혔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던 쌍용차는 유럽 시장의 좋은 반응으로 수출에서도 청신호가 켜졌습니다. 쌍용차는 6월 중순부터 유로 스포츠를 통해 TV 광고도 진행합니다. 유럽 딜러망도 지난해 800개에서 내년에 1000개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7월 출시 예정인 티볼리 디젤 모델은 가솔린 모델보다 인기가 높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티볼리는 평택공장에서 코란도C와 혼류 생산되고 있습니다. 연간 최대 생산량이 코란도C와 합쳐서 8~9만 대 수준입니다. 내년에 티볼리만 10만 대를 생산하려면 생산 라인을 대폭 늘리고 인원을 채용해야 합니다. 최 사장은 "생산 라인 전환 배치, 인력 확대 방안 등을 두고 노동조합과 협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티볼리 대박…올해 6만 대, 내년 10만 대 생산

지난 1월 한국을 방문해 김득중 쌍용자동차 지부장을 만난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은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그들과 그 가족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며 "티볼리가 기대 이상으로 선전하면 저희도 기꺼이 더 많은 사람들을 고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회사, 기업노조,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의 3자 교섭에서 회사는 해고자n복직에 대해 진전된 안을 전혀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현재 경영 상태가 해고자 복직 시점을 이야기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논의가 어렵다"며 시간만 끌고 있습니다.

5월 28일 열린 14차 실무 교섭에서도 회사는 해고자들이 차량 판매를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영업 정보에만 관심을 보였습니다. 해고자 복직과 손해배상 가압류에 대해서는 라인 생산 계획이 확정되지 않았고, 라인 간의 불균형 문제로 인력 충원 계획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라며 5개월 째 똑같은 대답만 하고 있습니다.

참다 못한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와 기업노조는 실무 교섭을 중단하고 노사 대표가 참여하는 본 교섭을 열자고 요구했습니다. 노사 대표의 끝장 교섭을 통해 해고자 문제를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타결 짓고, 쌍용차 정상화로 매진하자고 제안했습니다.

14차 실무 교섭 해고자 복직 "논의 어렵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욱, 이창근이 공장 안 70미터 굴뚝에 올라 농성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해고자들의 복직을 바라는 시민들은 "김정욱,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다"며 응원을 보내고 전국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어느 유명 연예인은 "신차 티볼리가 많이 팔려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가 안정되고, 해고됐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다"며 "그렇게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힘내라 이창근 김정욱, 응답하라 쌍차"라는 '쌍용차 챌린지' 릴레이에 여야 유명 정치인들과 종교계, 사회 인사, 일반 시민들까지 수만 명이 참여했습니다. 해고자 복직을 통해 쌍용자동차가 국민 기업으로,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SUV 명가로 부활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해고자들을 티볼리 판매에만 이용해먹고 해고자 복직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확인되는 순간 쌍용차에 대한 응원이 실망과 분노로 바뀌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 쌍용자동차 해고자 김정욱, 이창근 씨가 고공 농성을 벌인 쌍용차 평택공장 안 70미터 굴뚝.ⓒ프레시안(손문상)

쌍용차에 대한 응원이 분노로 바뀐다면?

"저희는 판매 대수가 많지 않아서 이런 보도 나가면 큰 타격을 입습니다. 그렇게 되면 해고자 복직 문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3월 말, 쌍용차 차량 결함 문제를 취재하고 있던 기자에게 쌍용차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회사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보도를 유보해 달라는 부탁이었죠. 이런 식의 부탁은 비판적인 내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항상 겪어왔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부탁 때문에 취재를 접은 적도 없었죠. 그런데 쌍용차 관계자의 말은 듣고는 흔들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2014년 12월 27일 SBS 박원경 기자가 쓴 "'쌍용차 리콜'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이유"라는 기사입니다. 쌍용차 해고자들의 복직을 바라는 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최근 쌍용자동차 변속기 등의 결함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SBS는 5월 16일자 기사 "코란도C, 변속시 '쿵'하며 차체 출렁…피해 속출"이란 기사를 내보냈고, 동아일보도 같은 날 "티볼리는 종합 병원? 병난 곳 한둘 아니야…"라는 비판 기사를 썼습니다.

해고자 복직에 대한 바람을 등에 업은 티볼리 돌풍이 하루아침에 꺼져버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7월 티볼리 디젤, 연말 티볼리 롱바디 출시가 예정되어 있지만, 경쟁 업체에 비해 신차 출시 시기가 길고, 경쟁 회사에 비해 자금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티볼리의 선풍은 오래 가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쌍용자동차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내수 판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지난 6년간 사회 각계 각층의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5대 종단의 종교계 지도자들, 여야 정치인들과 자치단체장, 유명 방송인들, 문화예술인들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에 함께 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쌍용차 정상화의 밑거름이 된다면 쌍용자동차는 힘겨운 경쟁을 이겨내고 탄탄한 내수 시장을 확보해 쌍용차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귀하는 복직이 안 될 경우 현재와 비교하여 1년 후 행복 정도와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상구 씨가 가장 쓰기 싫었던 설문입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1년 뒤 복직이 안 될 경우는 상상하고 싶지 않습니다."

해고자들의 복직을 염원하는 시민들은 대한민국 1호 자동차 쌍용자동차가 국민기업 SUV 명가로 부활할 것인지, 죽음의 기업으로 패망할 것인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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