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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만, 당신은 기업가의 기본조차 없는 사람이오"

2번의 해고 끝 복직이 결국 죽음으로…포스코와 이지테크에선 무슨 일이?

포스코의 사내하청 노동자이자, 박지만 회장의 이지(EG)그룹 계열사인 이지테크 노동자였던 양우권 씨가 남긴 유서의 일부가 11일 공개됐다.

고(故) 양우권 이지테크노조 분회장은 박지만 회장 앞으로 남긴 유서에서 "당신은 기업가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조차 없는 사람"이라며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인간다운, 기업가다운 경영인이 되어 달라"고 호소했다.

양 분회장은 지난 10일 자택 근처의 야산 산책로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양 씨는 노조 활동을 하다, 두 차례 해고됐다. 두 번 다 법원에 의해 부당해고 판정을 받고 현장에 복귀했으나 그 이후에도 아무 업무를 받지 못하는 등 부당한 탄압에 시달려 왔다.

때문에 유족들과 금속노조 등은 "양 분회장의 죽음은 노조말살 기업 포스코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회장의 이지테크에 의한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박지만, EG그룹 노동자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지금의 당신은 없다"

▲고(故) 양우권 분회장이 박지만 회장 앞으로 남긴 유서의 내용.
금속노조 등으로 구성된 '양우권 노동열사 투쟁대책위원회'는 이날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씨가 남긴 4장의 유서 가운데 일부를 공개했다.

공개된 유서는 총 2장으로, 박지만 회장과 조합원에게 각각 보내는 편지글 형식이었다. 박지만 회장 앞으로 남긴 글에서 양 씨는 "EG그룹의 노동자들의 피 나는 노력과 땀의 결실이 없었으면 지금의 당신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당신의 회사 현장에서는 당신의 자식들과도 같은 수많은 노동자들이 박봉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공정 주위에서 위험한 유독물을 취급하면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불평 한 마디 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당신은 그것을 알기나 하시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이어 "훗날 후회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권력 옆에서 기웃거리지 말고 제발 당신의 자리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조합원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그는 "제가 바라는 것은 똘똘 뭉쳐 끝까지 싸워 정규직화 소송과 해고자 문제에서 꼭 승리하는 것"이라며 "멀리서 하늘에서 연대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 "마지막으로 저를 화장해 제철소 1문 앞에 뿌려 달라"며 "새들의 먹이가 되어서라도 내가 일했던 곳,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 날아서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 보련다"고 썼다.

고인의 아들 "지난 이야기 2박3일 해도 부족해"…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이날 기자회견에는 고인의 아들 양효성 씨가 참석했다. 양효성 씨는 이 자리에서 "아버지와 우리 가족이 겪어야 했던 이야기는 2박3일 동안 해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고 양우권 분회장의 부인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이지테크에서 8년 7개월 간 일하다 사실상 쫓겨났다. 박지만 회장의 이지그룹 계열사인 이지테크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포스코 광양제처소 앞에서 고 양우권 씨의 영정 사진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금속노조


양우권 씨가 이지테크에 입사한 것은 지난 1998년이었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사내하청업체인 이지테크에는 양 씨의 입사 10년만인 2006년 노동조합이 생겼다. 100여 명의 노동자 가운데 53명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하면 내가 피해를 보게 되더라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고 부당하다고 말하고 고쳐가는" 사람이었던 양우권 씨가 노동조합 일에 열심이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노동조합 활동은 순탄치 않았다. 삼성과 마찬가지로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생각하는 포스코의 사내하청업체였기 때문이다. 노조가 생긴지 1년 여 만에 단체교섭 진행 과정에서 당시 지회장 등 대다수가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탈퇴했다.

금속노조 조합원으로 남는 선택을 한 것은 양우권 분회장 등 3명이 전부였다. 대책위와 유족 등에 따르면, 회사는 금속노조에 남은 3명을 상대로 보직변경 등의 수단을 동원해 민주노총 탈퇴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벌였다. 월급이 약 40만 원이나 줄어드는 직무로 강제로 보직을 변경시키니, 생계의 어려움이 제일 큰 문제가 됐다.

양 분회장을 제외한 2명은 결국 채 2년을 버티지 못했다. 회사는 이들 2명이 노조를 탈퇴하자마자 다시 "기다렸다는 듯이" 원래의 직무로 재배치해줬다. 누가 보더라도 "이들에 대한 직무변경이 업무상 필요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탈퇴하지 않는 데 대한 보복 차원"이라고 생각할만한 상황이었다.

53명이었던 조합원이 다 떠나고 혼자 남았지만, "아버지는 회사의 너무나 모진 탄압에 떠나는 동료들조차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정들도 있는 거라고, 언젠가는 다시 같이 해야지 하며 따뜻하게 말하곤 했다"고 양 분회장의 아들 양효성 씨는 기억했다.

법원도 '부당성' 인정한 두 차례의 해고, 복직한 곳은 제철소 아닌 책상 앞

혼자 남은 양우권 씨에게 돌아온 것은 두 차례의 해고였다. 감봉-대기발령-정직이라는 징계 절차를 한 단계씩 밟아 처음 해고된 것은 2011년 4월의 일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 해고에 대해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모두 '부당하다'고 양우권 분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는 대법원 선고 전 양우권 분회장을 다시 해고하고, 오히려 이 해고의 정당성을 인정해달라고 '고용관계 부존재 확인소'를 제기하기도 했다. 해고 중에 또 받아든 해고 통보였다.

이 2차 해고 관련 소송에서도 법원은 양우권 분회장의 편이었다. "부당해고"라는 2심 판결이 나온 이후 대법원에 상고했던 회사가, 마음을 바꿔 상고를 취하한 것이 지난해 5월의 일이었다. '법정 투쟁'에서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회사는 양 씨를 끝내 복직시켰지만, 양 씨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23일 양 분회장은 복직했지만, 생산직 노동자였던 양 씨에게 광양제철소 출입은 허락되지 않았다. 제철소 밖의 사무실에 있는 책상이 양 씨의 새로운 일터였다. 할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 책상 앞에는 CCTV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양우권 분회장의 아들은 "(민주노총) 조합원이라고 왕따는 기본이고, 회사가 일부러 현장사원을 사무실에 앉혀놓고 일을 시키지 않았으면서 대표이사가 찾아와 비싼 월급 받아가며 일하지 않는다고 타박했으며, 회사 관리자라는 사람은 '더러운 냄새가 나서 같이 일 못하겠다'는 모욕적인 말을 항상 했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얼마나 정신적 고통과 스트레스가 심하셨는지, 밤마다 악몽을 꾸며 회사 사람들에게 쫓기는 내용의 잠꼬대를 하곤 했다"고 양효성 씨는 덧붙였다.

▲고(故) 양우권 분회장의 아들 양효성 씨가 11일 기자회견에 참석해 유족을 대표해 말하고 있다. ⓒ금속노조


양우권 분회장만 고통속에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내 역시 같은 이지테크에서 기숙사 직원들의 밥을 지어주는 일을 하다 퇴사한 뒤 가게를 열었지만, 회사 사람들은 그 가게까지 찾아오곤 했다고 아들 양효성 씨는 주장했다.

양효성 씨는 "어머니에게 퇴직금을 다시 주고 아버지도 복직시켜 줄테니 아버지를 노동조합에서 탈퇴시키라는 협박을 하고 돌아가곤 했고 심지어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는지 어머니 지인들에게까지 연락을 해 노조를 탈퇴하게 만들어 달라고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양효성 씨는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회사는 일거수 일투족 가족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왔고, 누구보다 아버지가 마음 아파했다"고 토로했다.

대책위는 "양우권 분회장은 수면장애와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았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면장애 증상이 점점 심해져 고통이 심했다"며 "최근 한 달간 입원치료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양우권 분회장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바로 전날에도 이지그룹의 체육대회 행사장을 찾아가 "노조 탄압 중단", "사내하청 노동자 정규직화" 등의 요구사항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유족과 대책위는 기자회견을 통해 "포스코와 이지테크는 자신들의 노동탄압으로 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노동탄압 중단 및 재발 방지 약속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또 양우권 씨의 죽음에 대한 산업재해를 인정해주고, 유가족 배상도 해야한다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12일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포스코와 이지테크의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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