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난달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충분한 검토를 위해' 이 법안을 법사위 법안심사 제2소위로 회부한 것을 보면, 이 법은 통과가 불투명해 보인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가 <프레시안> 칼럼에서 지적한 것처럼(☞관련기사 : '아이유법' 좌초 유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우리 국민들의 술 소비량은 독주인 증류주 소비가 세계 1위를 차지하는 등 매우 많은 편이다. 알코올 중독자가 주류 회사를 상대로 술로 인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정도다. 2013년 한국음주문화센터의 알코올 중독자 조사 결과, 180만 명이 알코올 중독자이고 살인사건 중 45%는 주취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 병원만도 200여 개다. (2013년 9월 13일 MBC 뉴스 '알코올 중독자 180만명…술 권하는 사회, 문제 없나?)
이에리사 의원이 발의한 법안의 취지는 충분히 공감한다. 과음에 대해서는 명확하고 단호한 규제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법안은 법안 발의의 목적과 그 수단 간에 충분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법안의 취지가 불투명해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어렵고, 오히려 논쟁거리로 끝나거나 회기 만료 때까지 계류되다가 폐기되기 일쑤다.
이번 법안이 그렇다. 과연 만 24세 이하의 연예인이 주류광고에 출연하지 않는다고 해서 소주나 맥주를 적게 마실까? 만 24세 이하 연예인의 주류광고가 청소년의 음주를 촉진시킨다는 근거는? 또 '만 24세'라는 자의적인 기준은 뭘까? 하정우가 맥주 광고에 나오면 괜찮고, 아이유가 소주 광고에 나오면 안 된다는 논거는? 음주를 실제로 가장 많이 조장하는 것으로 알려진 밤 10시 이후의 TV 광고 규제는?
새누리당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김진태 의원조차 '직업 선택의 자유'를 거론하며 반대하는 판이니, 이미 이 법안의 운명은 정해진 수순으로 보인다. 물론 연예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당사자가 아닌 일반인들이 나서서 대신 걱정할 일은 아니겠지만, 법안의 논의 수준이 조악하니 이런 문제도 제기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히려 이 법안에서 나는 국가주의적인 사고관의 위험성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국가가 시민들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예를 들면 중독성이 극심한 마약 등 향정신성 의약품에 대한 규제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금주법을 만들었으나 결국 없어진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문화'를 국가가 나서서 규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음주 문화가 그렇고, 음주 문화에서 파생되는 광고가 그렇다.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들을 생각해서 음주 문화에 대해서 계도를 하려면 보다 현명하게 규제를 해야 한다. 만약 주류에 대한 규제가 성공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의 규제가 적합하다고 본다.
첫째, 직접적인 유통 규제. 주류를 10시 이후에 편의점이나 수퍼마켓 등 소매점에서 유통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은 어떤가? 내지는 도수가 높은 술에 대한 일정 수량 이상의 판매 규제는? 둘째, 세금. 알코올 도수가 높아 국민건강에 상대적으로 해로운 주류(예를 들면 소주 등이다)에 대해 주세율을 높이는 법안을 만들면 어떨까?
하지만 이런 주류 유통 제한이나 주세율 상향에 정부가 주저하는 이유는, 복잡한 산업 관계자들의 이해 논리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10년 넘게 큰 진전이 없는 상태다. 미국에서는 많은 주(州)에서 시민의 건강을 위해 주류 판매시간 제한 규제를 오래 전부터 도입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현명한 규제'란 청소년층을 포함한 알코올 중독 취약 계층에 대한 위해요소를 다양한 층위에서 사전 분석해 이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광고 규제보다는 직접적인 유통 규제가 국민 건강을 위한 보다 직접적 해결책이다. 국민들, 청소년들이 손쉽게 술을 접할 수 있는 온갖 루트는 그냥 방치해 둔 상황에서 '국민 건강'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다.
사후적으로는 알코올 중독 전문병원 등에 대한 지원·후원 체계와 확립이 보다 절실하다. 알코올 중독 전문 병원인 카프(KARP) 병원이 주류업계 지원금으로 운영을 시작했다가 2013년 업계 지원금이 끊기자 현재까지 인수 주체 없이 표류하는 상황을 보라. 이러한 문제 하나부터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 시장에서 유통되는 기존 고도주에 대한 국민정서와 향수를 고려하더라도, '국민 건강'을 생각하면 가격을 상향시켜 전반적인 소비를 줄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고 이같은 세율 인상으로 얻어진 세수는 국민 건강 증진이나 알코올 중독자 치료를 위한 재원에 전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 현재는 주류 판매를 통해 얻어지는 주세, 교육세 및 부가가치세는 일반세원으로 사용될 뿐이다. 물론 이에는 담뱃세 인상 논란과 동일한 반발이 예상되지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고, 실제로 기획재정부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주류에 대해서는 점차 주세율을 높여가고, 알코올 도수가 낮은 주류에 대해서는 점차 주세율을 낮춰가는 방식을 검토할 만하다. 예컨대 희석식 소주에 대한 주세율은 1999년을 기점으로 35%에서 72%로 올랐고, 반면 맥주에 대한 세율은 1975년 무려 150%에 달했으나 점점 하향 조정됐고 2007년을 기점으로 72%로 낮아졌다. OECD 국가들의 상당수가 이같은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중소 맥주 활성화를 위한 주세법 개정안을 냈던 것이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 이 법은 중소기업이나 하우스 맥주 회사가 파는 맥주에 대한 세금을 낮춰, 맥주 산업을 활성화하자는 법안이다. '소맥' 문화가 왜 형성됐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맥주가 맛은 없고, 소주는 독하니 이를 혼합해 적당히 취하자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 아닌가. 맥주의 다양성을 늘려가면, 주종이나 주류 문화가 더 발전할 수 있다.
삼겹살에 곁들이는 소주 한 잔은 '알코올 중독' 우려의 대상이 아니라 추억이고 삶의 기쁨이다. (물론 다음날의 숙취는 생각하기 싫은 추억이지만.) 음주에 대한 가장 좋은 규제는 소비자들의 절제이겠지만, 그 절제 이전에 국가가 빗장을 걸어줄 영역도 물론 있다. 그것이 규제다. 하지만 그 규제의 대상은 '아이유'가 아닌, 알코올 그 자체여야 한다.
(이 글을 쓴 박지웅 변호사는 법무관으로 군 복무 중이던 지난 2008년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가 이듬해 파면당했고, 2011년 고등법원으로부터 파면 취소 결정을 받았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민변) 사무차장을 지냈고,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실에서 비서관으로 일하며 입법 활동 경험을 쌓기도 했다. 현재는 법무법인 '민본'에서 일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세월호 희생자를 어묵에 비유한 '일베' 회원들을 자신을 포함한 시민 510명의 이름으로 고발했으며, 이 소송 대리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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