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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원자력협정, 국회 평가 당당히 받아라

[기고] 한미원자력협정, 국회 보고만으로 끝나서는 안되는 이유

외교부로서는 출발이 좋았다.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내용을 두고 초반에는 언론도, 전문가들도 모두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애초에 프레임을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4년 넘게 끌어온 협상이 애당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이룬 것은 분명해 보인다.

평가를 유보하는 '보인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필자 역시 아직까지 협정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난 22일 가서명 이후 여러 매체에 기고된 대부분의 글과 전문가들의 코멘트가 보도 자료가 아닌 협정문을 옆에 두고 보면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평가와 분석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계와 학계, 그리고 국책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선진적·호혜적'으로 개정한 내용을 환영하는 분위기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번 협정개정의 최대 수혜자가 다름 아닌 원자력계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정으로 원자력 협정을 체결한 제3국에 대해서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산 핵물질, 원자력 장비 및 부품 등을 자유롭게 재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포괄적 장기동의도 확보했다. 또한 수출입 인허가를 보다 신속히 하도록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동시에, 원전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 등을 촉진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이외에도 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 진단용 방사성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하고 수출할 수 있도록 미국산 핵물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도 마련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번 협정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원자력계의 'LTE'급 찬사를 두고 '용비어천가'로 부르면서 협상 성과를 애써 폄하한다.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논리이다. 그래서일까. 협정개정의 성과에 문자 그대로 열과 성을 다해 홍보를 해오던 외교부도 다소 머쓱했던지 이제는 홍보에 속도 조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개정 내용을 두고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던 신문과 방송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잠잠해졌다. 정부와 언론 모두 숨 고르기 모드로 들어갔다. 협상의 한 축인 미국도 한국 여론 주도층의 반응이 어떠한지 다양한 경로로 탐색하고 있다.

▲ 박노벽(오른쪽) 외교부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 4월 22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에 가서명한뒤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대신에 원자력 산업계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세미나와 회의체가 곳곳에서 개최되고 있다. 이번 협정 개정으로 한국 원자력계가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곳에서는 철 지난 한국판 원자력 르네상스를 외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불편한 진실이 있을 수 있다는 눈치이다.

우선 농축부터 살펴보자. 외교부가 배포한 보도 자료를 보면, "우리가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하고자 할 때에는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일정한 절차와 기준에 따라 양국이 합의하여 추진할 수 있는 매커니즘을 도입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외교부는 그러면서 "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술적 타당성, 경제성, 비확산성 등의 여건이 성숙되는 경우 저농축에 관해 합의할 수 있는 추진경로(pathway)를 마련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추진경로가 과연 무엇이냐는 것을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일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나, 정부의 주장을 선의로 해석하면 농축으로 들어가는 문을 새롭게 만들어 작은 틈새나마 열어 둔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미 배포된 보도 자료를 보더라도 "한미 양국은 핵비확산 조약의 당사국으로서 원자력을 평화적 목적으로 연구·생산 및 이용함에 있어 갖는 불가양의 권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양국 간 원자력 협력을 확대함에 있어 주권의 침해가 없어야 함을 명시하였다"로 기술되어 있다.

덧붙여 "농축과 재처리 등 형상·내용 변경을 포함한 제반 원자력 활동에 있어서 상대방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규정도 포함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산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는 (저)농축을 할 수 있으며, 이는 전적으로 우리가 결정할 사항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절반만 옳다.

평화적 목적의 20% 미만의 농축은 원칙적으로 핵비확산조약에 따라 국제적으로 제약 없이 할 수가 있다. 미국산 우라늄이 아니라면 한국이 미국의 설비, 장비 또는 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독자적으로 농축을 하는데 제약이 없다. 게다가 한국은 핵비확산조약 당사국으로 동 조약에 따른 제반 의무를 충실히 준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천양지차다. 따라서 주권 국가로서 한국은 농축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정치·경제적 요소들을 감안하여 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야 국격(國格)에 부합되고 논리적으로 옳다. 이렇게라도 주장하지 못할 바에야 더 이상의 자화자찬은 거두어야 한다. 협정문이 정식으로 공개되면 이에 대한 정부의 보충 설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한편, 남북한 간에 합의한 비핵화공동선언은 어떻게 되나? 1992년 2월 19일에 정식으로 발효된 공동선언의 핵심은 △남북한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조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않으며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하며 △핵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연구개발 차원의 농축은 시설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기에 가능하다는 주장과, 반대로 농축 시설을 보유하지 않겠다고 한 마당에 연구개발 농축은 미국의 강력한 비확산 드라이브 정책에 밀려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최근에 화상회의로 접한 미국 측 전직 고위급 인사의 전언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도 이에 대해 법적으로 어떻게 해석할지 여태껏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둘째, 정부는 비핵화공동선언이 북한의 세 차례 핵실험으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인가? 그럴 경우 동 선언의 사실상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였던 미국이 과연 이를 용인할까? 알려진 바로는 개정된 협정에 비핵화공동선언과 관련한 내용은 언급되어 있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한국은 차제에 최우선적으로 비핵화공동선언에 대해 내부적으로는 일단 무효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옳다. 이전의 '유효 견지'입장에서 미국의 북미 제네바합의 무효화 사례와 같이 비핵화선언이 무효인가에 대해 '확인도 부인도 않는 (Neither Confirm, Nor Deny : NCND) 입장'으로 미세한 정책이동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동시에, 9.19 공동성명 1항과 유엔안보리 결의안 2094 등에도 비핵화공동선언 준수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검토도 이뤄져야 한다.

개정협정과 모순되는 기존의 비핵화 선언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 이에 대한 대안적인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비확산 강화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농축과 재처리를 통해 한국이 핵을 가질 수 있다는, 즉 한국의 핵무기 개발 가능성을 우려하는 미국 정책 집단의 주장을 일축시키기 위해 이 작업은 시급히 필요하다.

셋째, 완성될 국문본 개별 조항을 두고 한미 양국이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몇 가지 행정적인 절차도 남아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관련 부처에서 가서명된 협정에 대한 핵 비확산 평가 등을 거친 뒤 대통령의 승인을 받게 된다. 이후 6월경 양국 간 공식 서명식을 한 후 협정문 최종본이 의회로 이송되어 연속회기 90일 동안 반대가 없으면 협정은 발효된다. 가능성은 낮지만 미 의회가 개정된 협정 내용을 두고 만약 어깃장을 놓는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꼬일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국문본이 최종적으로 정해지면 법제처에 넘겨 국문본 심사와 함께 국회비준이 필요한지에 대해 유권해석을 곧 의뢰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정부는 부분 개정이 아닌 전면 개정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협정문과 관련해서 국회의 동의는 필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기존 한미원자력협정을 포함해 우리나라가 체결한 29개 원전협정 가운데 국회 비준을 거친 협정이 현재 하나도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하지만 한미원자력협정을 여타 협정들과 같은 선상에서 비교한 것은 내용과 중요성을 고려할 때 부적절하다. 권위주의 독재정권 시절 체결된 후 40년이 지나 개정된 협정이 단순히 관련 위원회 여야 의원들을 상대로 국회 보고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이는 사실상 20년 후에나 꺼내어 볼 개정 협정이 지니는 외교·안보 및 경제와 기술적 무게감과 정치적 중요성을 간과한 셈이 된다.

혹자는 반대로 국회로 가져오면 개정협정을 두고 여야 간 내실 있는 논쟁은 사라지고 대신에 인화성이 높은 정치적 문제로 변질될 것을 우려한다. 그리고 반핵과 원자력 진흥을 외치는 시민단체들까지 끼어들어 혼란만 부채질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걱정이 단순히 기우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듣기에 따라서는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한 모욕으로 들릴 수 있다. 협상에 최선을 다했다면 정부는 우회하려 하기보다는 당당하게 국회의 평가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래야 일각에서 제기되는 '위계적이고, 비대칭적이고, 일방적인 협정'이라는 오명을 벗어 던지고 역사에 남는 기념비적인 협정으로 남는다. 이 정부의 업적(legacy)이 될 만한 것이 당장 머리에 떠오르지 않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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