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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입 닫는 것이 능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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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입 닫는 것이 능사인가?

[기자의 눈] '과거의 잘못'보다 '현재의 거짓말'이 더 문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BBK 의혹' 논란이 한창이다. 김경준 씨 측과 대통합민주신당 측으로부터 연일 제기되고 있는 의혹에 그 때 그 때 방어논리를 펴 온 한나라당은 급기야 자의적으로 '의혹의 종결'을 선언하고 해명을 중단했다. (관련기사 : "막도장이다"→"비슷하긴 하네"→"해명 중단")

"당신하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기자실서 '고성'

그런데 홍준표 의원이 '해명중단'을 선언한 25일 기자회견에서는 뜻밖의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홍준표 의원의 발언을 보자.

"BBK 사건이 종결되고 나면 줄리어드 관계, 해외 부동산 문제, (이 후보의 부인인) 김윤옥이 해외 보석 두세 개를 가져오다 걸린 일도 있다. 삼성 비자금 관계도 있다고 폭로할 수도 있고…. BBK가 무산되면 무차별 폭로전이 들어올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에리카 김과의 합성사진도 들고 흔든다는 말이 있다. 추잡하고 추악한 대선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 26일 한나라당 공약집 발표회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가 생각에 잠겨 있다. ⓒ뉴시스

BBK 문제 외에도 상대방이 제기할 가능성이 있는 의혹들의 '리스트'를 미리 언급하면서 일종의 '사전 경고'를 보낸 셈이다. "진실공방은 하지 않겠지만 고소고발 등 사법절차를 통해 대응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러나 "김윤옥이 해외 보석 두세 개를 가져오다 걸린 일도 있다"는 이 발언은 오히려 새로운 의혹의 빌미를 줬다. 일부 언론에서 이를 보도하자, 신당에서는 "이는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의혹으로, 홍준표 의원이 자백한 셈"이라고 비난을 퍼부었다.

홍준표 의원이 26일 다시 당사 기자실을 찾아 왔다. 홍 의원은 "아무리 기자지만 그런 식으로 악의적으로 보도하는 것은 참기 어렵다"면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해당 언론사의 기자가 "그런 말을 한 것은 홍 의원 본인이지 않느냐"고 항변했지만 홍 의원은 "당신하고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해의 소지를 제공한 것은 홍 의원 자신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어 보인다. "김윤옥이 해외 보석 두세 개를 가져오다 걸린 일도 있다"는 발언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홍 의원이 분명히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양념승덕'-'식사준표'-'모르쇠 대변인'…<조선>도 비판

문제는 이번 일이 단순한 해프닝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최근 김경준 씨의 구속 이후 거듭된 'BBK 의혹'의 공방과정에서도 한나라당은 끊임없는 자충수로 혼란을 오히려 키워 왔다. 홍준표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당 클린정치위원회는 그 주역이었다.

최근 이명박 후보의 '귀국시점'이 쟁점으로 떠오르자 클린정치위원회 소속 고승덕 변호사는 "이명박 후보의 귀국시기를 증명할 중대한 자료가 있다"면서 김경준 씨와 이 후보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와 자필 메모 등을 공개했다.

고 변호사는 이를 근거로 "이 후보와 김경준은 (BBK 설립 이후에는) 2000년에 만났다"고 주장하다가 "그럼 만난 지 불과 한두 달 만에 회사(LKe뱅크)를 설립했다는 말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사실 이건 오늘 '양념'으로 가져 온 것이고…"라며 피해 갔다.

홍준표 의원도 당시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식사했어요?"라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이 일로 고승덕 변호사와 홍준표 의원은 네티즌들로부터 각각 '양념승덕', '식사준표'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대변인단도 마찬가지다. 나경원 대변인은 귀국시점 논란과 관련해 "당시 이명박 후보가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어설픈 주장을 펴다가 기자들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박형준 대변인도 '이면계약서 도장의 진위논란'과 관련해 한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개인 인감은 아니다. 사업상 서류 제출을 할 때 쓰도록 LKe뱅크에 맡겨져 있던 도장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조작된 막도장"이라는 클린정치위원회의 입장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박 대변인은 "그런 말은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당 언론은 26일에도 이같은 박 대변인의 발언을 재차 확인하면서 "대변인 자격으로 말한 내용을 스스로 뒤집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래도 공당이 취할 바는 아닌 것 같다"고 비난했다.

이런 식의 자충수는 BBK 공방 내내 이어졌다. 대변인단과 법률지원 담당자, 원내 지도부도 가세했다. (관련기사 : 이명박, 흔들리나?, 한나라 'BBK 이면계약서' 오락가락 해명)

에리카 김의 인터뷰를 방송했다는 이유로 MBC의 TV 토론 프로그램에 대해선 생방송 당일 불참을 선언했다. 또 "BBK 관련 토론에는 응하지 않겠다"면서 KBS 토론회도 불참했다. "공방에 일체 대응하지 않겠다"는 '해명중단 선언'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언론마저 비판에 가세했다. <조선일보>는 26일자 사설에서 "선거의 전면에 나선 대변인이라면 후보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면서 "지금 한나라당 대변인들은 이 후보 관련 사항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은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심지어 측근들도 돌아가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한다"면서 "건설회사 사장이 목수와 미장이들을 직접 불러 지시를 내려, 회사 간부라는 사람들이 공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모르는 식"이라고 맹비난했다.

검찰의 좌고우면 없는 수사를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중요한 고비마다 말 바꾸기와 엉성한 논리로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는 쪽은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며, 그러하기에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자연스런 의구심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해명중단'을 선언하고 언론에 더욱 위압적인 조치를 취하는 등 '강공'만을 고집할수록 질서 있는 퇴각은 불가능해진다. 만에 하나 검찰 수사 결과, 혹은 다른 경위에 의해 이 후보의 연루사실이 털끝만큼이라도 밝혀지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꾹꾹 눌러 폭발력을 키운 모든 것이 터져버릴 수 있다는 얘기다.

잘못은 잘못으로, 실수는 실수로 깔끔하게 인정해야 결백의 주장에도 사람들이 귀를 더 기울이는 법이다. 이 후보와 한나라당은 그 기회를 이제 놓치지 않았나 싶다. 남은 건 외길이다. '100% 순도의 결백'을 입증 받느냐, 아니면 '거짓말 후보'로 남은 대선 일정을 남루하게 이어가느냐다.

'과거의 잘못'에는 선처의 여지가 있는지 모르지만, '현재의 거짓말'에 대해 결코 민심은 관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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