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병원들의 해외 수출을 지원하고자 예산 100억 원을 들여 500억 원 규모의 민관 합동 '사모 펀드'를 조성했다. 국민의 세금으로 보건 의료 분야에 진출하는 '사모 펀드'를 지원한 것은 부적절할 뿐만 아니라, 이 펀드가 외국에 영리 병원을 짓는 데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 과제이자 경제 혁신 3개년 계획 주요 과제 '한국 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가 복지부 예산 100억 원과 6개 민간 기관 400억 원 출자를 통해 총 500억 원 규모로 조성됐다고 지난 30일 밝혔다.
이 펀드에 출자한 6개 민간 기관은 한국수출입은행(125억 원 출자), 사모 펀드 운용사인 뉴레이크 얼라이언스 매니지먼트와 또 다른 사모 펀드 운용사인 KTB 프라이빗 에쿼티 등이다. 나머지 투자 기관은 공개되지 않았다.
복지부, 사모 펀드에 세금 100억 원 투입
복지부는 75억 원을 투자한 두 사모 펀드 운용사에 '한국 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 운용을 맡겼다. 이에 따라 이 펀드의 공식 명칭은 운용사 이름을 따서 'KTB 뉴레이크 의료 글로벌 진출 사모 투자 전문회사'로 정해졌다.
복지부는 "의료 시스템 해외 진출이 새로운 비즈니스 영역인 만큼, 펀드 구조는 투자 대상 제한이 없고 경영에 참여하여 전략 수립과 자문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모 투자 전문 회사(PEF : Private Equity Fund)'로 하고, 펀드 운용 기간은 8년(추가 2년 연장 가능)으로 장기 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해외 의료 진출 지원과 관계자는 "사업 초기 단계에는 수익성 검증이 안 돼서 민간 투자자들이 이런 분야(해외 의료 진출)에 투자를 안 하니, 정부가 정책 펀드를 만들어서 의료 기관이 투자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병원이 사모 펀드 돈 받아 영리 병원 설립?
사업 내용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으나, 주로 국내 병원의 외국 진출에 초점이 맞춰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의료 기관이 (사모 펀드를 통해) 외국으로 진출해서 현지에 병원을 세우거나 병원을 위탁 운영할 수도 있고, 외국 병원을 사는 등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 의료 기관이 출자해서 해외 진출 합작 회사를 만들고, 의료뿐만 아니라 의료 시스템까지 포함한 사업에 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이 사모 펀드 투자 회사가 외국 의료 분야에 투자해 수익률 5%를 넘으면 초과 이익의 20%를 성과 보수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관리 보수로는 초기 3년 동안은 해외 투자 사업 약정 총액의 2.0% 이하, 3년 후부터는 투자 잔액의 2.0% 이하를 회수하도록 했다.
문제는 국내 의료 기관이 사모 펀드의 투자를 받아 합작 회사를 만들고, 외국에 병원을 세우면 그 병원은 '영리 병원'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상이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사모 펀드가 투자한 돈을 병원 수익에서 회수한다면 그 병원은 영리 병원"이라며 "우리 국민이 반대하는 영리 병원을 제3국에 가서 짓는 게 바람직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돈벌이 의료를 위해 국민 세금 투입할 일인지 의문"
보건 의료 분야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모 투자 전문 회사를 만드는 데 세금 100억 원을 투입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우려했다.
이상이 교수는 "설사 돈벌이를 위해서 외국 국민의 의료비를 치솟게 하는 일을 하도록 양해한다고 하더라도, 사모 펀드 회사 설립이 국가가 나서서 주도해야 할 일이고 국민의 세금을 투입할 일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도 "정부가 세금으로 사모 펀드에 돈을 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국내 투기 자본에 한국 정부 이름을 걸고, 그것도 가장 민감한 부분인 복지·의료 부분에 투자를 열어주는 것은 국제적 망신이자 수치"라고 비판했다.
우 정책위원장은 "사모 펀드가 외국 자본과 합작 투자해서 다시 국내 영리 병원으로 역수출될 수도 있다"며 "이미 해외 투자라는 명목으로 제주도 영리 병원에 국내 의료 기관이 참여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국내 병원이 외국과 합작 회사를 만들어서 현지에 세우는 병원은 형태가 영리 병원일 수도 있고, 비영리 병원일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도 해외에 나가는 기관들이 합작 회사를 만들어서 병원을 세우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이고, 국가마다 영리 병원을 허용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며 "(한국 의료 글로벌 진출 펀드가) 외국에 영리 병원을 만드는 것을 도와주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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