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돼지를 만나는 여정 담았어요"
개봉을 앞두고 황윤 감독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저한테는 영화가 또 하나의 자식이에요. 자식이 태어나서 돌잔치 하는 느낌이죠. 진짜 애도 키워야 하고, 두 가지 엄마 역할을 하느라 바쁘네요."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총 4년 정도 걸려 만들어졌다. 2011년 초 기획해서 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을 했다. 지난해 초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굉장히 중요한 장면들을 찍었고, 그 내용을 담은 필름을 올해 2월 공식 초청된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했다.
황윤 감독은 이 영화가 "온전한 돼지를 만나는 여정을 담은 것"이라고 말한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던 어느 날, 살아 있는 돼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그는 아들 도영이와 돼지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전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고기를 먹는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돼지도 사람도 병들게 하는 공장식 축산
우리가 먹는 고기 대부분은 공장식 축산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황윤 감독은 대량 생산을 위해 특히 암퇘지가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됐단다.
"출산할 수 있다는 게 사람에게는 축복이지만 돼지에게는 재앙이고 천형(天刑)이에요. 24시간 만에 도영이를 낳을 때 얼마나 아픈지 정말 죽고 싶었는데, 엄마 돼지들은 죽을 때까지 새끼를 낳아야만 한다는 게 너무 가슴 아팠죠."
인공수정을 통해 원치 않는 임신과 출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엄마 돼지는, '스톨(Stall)'이라는 몸을 돌릴 수도 없게 좁은 금속 틀에 갇힌 '새끼 낳는 기계'일 뿐이다.
"우리가 공장식 축산을 일시에 없앨 수는 없지만, 지금의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건 알았으면 해요. 적어도 스톨은 안 쓸 수 있지 않느냐는 건데, 그러려면 목소리를 내야 해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데 법이 저절로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한국에서도 올해 동물보호법이 시행됐지만, 반려 동물이나 실험 동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농장 동물은 소외되어 있다. 참고로 유럽연합(EU)은 2013년 농장 동물에 대한 스톨 사용을 금지했다.
단순히 동물 복지 차원에서만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게 아니다. 2009년 유행한 신종플루의 원래 이름은 '돼지독감'으로, 멕시코의 한 농장에서 처음 발생했다. 종간 장벽이 있어 동물이 걸리는 바이러스에 사람이 걸리지 않는데, 밀집 사육된 가축을 매개로 바이러스가 변종을 일으켜 사람에게 전이된 것이다.
"조류 독감과 돼지 독감이 사람 몸에서 합쳐지면 정말 무서운 일이 생길 수 있는데도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손을 씻고 조심했는데도 도영이가 신종플루에 걸렸었어요. 변종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면역력 약한 아이들이 가장 취약하죠."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전에 없던 질병들이 발생하기 시작한 만큼 농장동물들이 햇빛을 보고 바람을 쐴 수 있게 하고, 밀집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면 예방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감기도 안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강하게 자란 동물은 병에 잘 걸리지 않아요. 언제까지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동물들을 다 살처분할 건가요? 예방법을 따르면 굳이 불구덩이에 뛰어들 필요가 없죠."
내가 정말 고기를 좋아하는 건지, 남들 따라 먹는 건지
"관객들이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고기를 아예 끊어야겠다, 아예 끊지는 않되 동물 복지가 어느 정도 지켜지는 소규모 농장의 고기를 먹어야겠다, 전처럼 고기를 먹되 먹는 양을 줄여야겠다 등으로요."
소비자조합원으로서 "한살림 없으면 못 산다"고 말하는 그는 결혼하고 직접 요리하다 보니 자신이 고기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단다.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돈가스를 끊었는데, 알고 보니 고기를 좋아한 게 아니라 바삭바삭한 식감을 좋아한 거였다.
"대학 신입생 때와 회사 신입사원 때가 고기를 많이 먹게 된 계기였어요. 술도, 고기도 뭐든 잘 먹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였죠."
윗사람이 주는 거면 뭐든 먹어야 하는 한국 문화에서 "고기 안 먹어요"라고 말하면 '까칠한 사람'이 되기 십상이었다.
영화에서 그의 남편도 야식으로 시켜 먹을 게 마땅치 않아 치킨을 먹는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면 흔한 배달음식은 치킨, 피자, 족발, 돈가스 등으로 다 고기 요리다.
"내가 정말 고기를 좋아하는 건가, 아니면 남이 먹는 대로 따라 먹는 건가 생각하게 됐어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고기가 안 들어간 다양한 먹을거리를 선택할 수 있다면 다를 텐데, 무언의 압박에 길들어 있는 거죠."
영화를 찍으면서 고기를 안 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농장 동물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지만,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것도 크다고 했다.
돼지를 고기가 아닌 생명으로 볼 수 있을 것
그는 관객들에게 가장 보여 주고 싶은 장면으로 엄마 돼지가 출산하는 모습을 꼽았다.
"돼지 본연의 모습을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리얼 돼지'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외부인이라 바이러스를 옮길 수도 있고 엄마 돼지가 낯설어해 사고가 날 수 있는데도 출산 모습을 찍도록 허락해 준 농장에 죽을 때까지 감사할 거라고 했다.
"십순이라는 느긋한 성격의 엄마 돼지를 만나 아무 탈이 없었던 것도 정말 다행이었어요. '내가 간절하니까 우주가 나를 도와주는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 자신이 엄마다 보니, 새끼를 낳는 엄마 돼지에 감정이입이 많이 됐다고 한다. 어떤 생명이든 탄생하는 순간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아름답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고.
"새끼에게 젖 먹이는 모습, 또다시 새끼를 낳기 위해 억지로 젖을 떼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나와 십순이, 도영이와 돈수가 자연스럽게 연결됐지요. 머리로 짠 게 아니라 마음으로 그렇게 됐어요."
"야생동물은 쉽게 죽임을 당하고, 실험동물은 화학물질에 강제로 노출되죠. 반려동물은 사람들 입맛대로 길러지거나 버려지고요."
그중에서도 가장 약자가 농장 동물이라는 게 그의 말. 가짓수도 제일 많고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고통스럽게 착취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자기 개나 고양이, 좀 더 나가면 야생동물을 사랑하는 정도죠. 저도 그랬거든요. 먹는 동물과 반려 동물 사이에 벽을 두고 생각했어요. 결국 이 영화는 제 고백인 셈이죠."
그는 영화를 보면 누구나 "돼지를 고기가 아니라 생명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어떤 동물이든지 적어도 고통 받지 않을 권리는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독립영화는 만드는 과정도 어렵지만 관객들에게 보이는 과정이 정말 힘들어요. 땅과 환경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유기농 먹을거리를 찾아 사는 것처럼, 우리 영화도 극장에 와서 봐야 더 많은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어요. 한살림 조합원들만 다 와서 봐도 대박이에요."
전체 관람가라 아이들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달라고. 참고로 먼저 영화를 본 내 주관적 평가를 말하자면 재미와 감동이 어우러진 별점 다섯 개!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바로 가기 : <살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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