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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경기 시대, '촌놈마라톤'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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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144경기 시대, '촌놈마라톤'은 이제 그만!

[베이스볼 Lab.] 야구에 '첫 끗발'은 없다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는 흔히 ‘마라톤’에 비유되곤 합니다. 온갖 변수 속에 장시간 펼쳐지는 마라톤 경주처럼, 6개월이 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대장정’이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말이 그렇다 뿐이지 실제 보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대부분은 야구를 마라톤이 아닌 단거리 경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야구팬들도, 감독들도 하나같이 시즌 초반 성적이 그해 성적을 좌우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니까요. 팬들은 응원팀이 시즌 초반 승승장구하며 앞서나가면 벌써 우승이라도 한 듯 환호합니다. 미디어에서는 초반 내달리는 팀을 집중 조명하며 어떻게 강팀이 되었는지 분석하죠. 감독들은 ‘초반에 밀리면 끝장이다’ ‘초반에 뒤처지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시즌 초반인 3~4월 성적이 제일 중요하다는 속설이 사실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조사하기 위해 <베이스볼 Lab.>은 KBO리그가 단일리그 체제로 재편한 1989년부터 2014년까지 총 26시즌의 페넌트레이스 월별 성적과 시즌 전체 성적의 상관관계를 살폈습니다. 특히 3~4월 승률과 최종 승률이 어느 정도 상관관계를 갖는지 중점을 두고 조사했습니다. 편의상 무승부 경기는 승률 계산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조사한 기간 3-4월 승률과 시즌 승률의 상관계수는 0.6005가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구한 R제곱값은 0.3606으로, 이는 3-4월 승률이 시즌 승률의 36%밖에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3-4월 승률이 시즌 승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기록이라면, 100%에 보다 근접한 R제곱값이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36%는 통계적으로 큰 의미를 찾기 힘든 수준입니다. 흔히 운이 많이 작용하는 스탯으로 알려진 타율만 해도 팀 득점의 약 56%를 설명해주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36% 정도로는 팀의 시즌 성적을 거의 설명해주지 못한다고 봐야죠.

3-4월을 제외한 다른 월별 성적은 어떨까요. R제곱값만 놓고 보면 3-4월보다는 오히려 한여름인 7-8월과 시즌 막바지인 9월 승률이 시즌 성적을 더 잘 설명해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그래봐야 R제곱값이 0.50을 넘지는 않는 수준이라 3-4월 성적과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다시 말해, 3-4월을 비롯해 어떤 월별 승률도 팀 성적을 설명하는 데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이런 반론이 예상됩니다. “3-4월 성적이 중요한 건 팀이 초반에 치고 올라가서 분위기를 타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팀의 승률을 볼 게 아니라 시즌 성적이 좋은 팀들만 따로 놓고 봐야 한다”는 주장인데요. 과연 그럴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두 가지 조사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3-4월 승률이 높은 팀들만 대상으로 시즌 승률과의 상관관계를 구했습니다. 다음 표를 보시죠.

3-4월 승률 6할 이상을 올린 팀들의 경우, 시즌 승률과의 상관계수는 0.4567이 나왔습니다. 이는 전체 상관계수 0.6005보다 오히려 한참 낮은 수치입니다. 3-4월 승률 5할 이상 팀들을 놓고 봐도 시즌과의 상관계수는 0.5243으로 저조했습니다. 3-4월에 5할 미만 승률로 부진했던 팀의 상관계수는 0.4245로 약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3-4월에 승률 4할 미만으로 폭삭 망했던 팀들의 경우엔 0.3954에 불과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시즌 최종 승률을 기준으로 삼아 3-4월 승률과의 상관관계를 알아봤습니다. 시즌 최종 승률 6할 이상을 올린 역대 최강팀들의 경우, 3-4월 승률과의 상관계수는 0.4223로 집계됐습니다. 역시 전체 상관계수에 비해 떨어지는 수치입니다. 포스트시즌 진출의 척도인 5할 승률 이상 팀으로 봐도 상관계수는 0.5139로 높지 않았습니다. 시즌 승률 4할 미만의 약팀들을 놓고 조사해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과거 쌍방울, 암흑기 롯데, 최근의 한화 등이 기록한 시즌 승률과 3-4월 승률의 상관계수는 0.4985에 불과했습니다. 의미 없는 수준입니다.

촌놈 마라톤이 박수 받는 이유

이처럼 통계적으로 3-4월 성적이 시즌 성적과 큰 관계가 없는데도, 왜 많은 감독과 팬들은 시즌 초반에 모든 것을 걸고 ‘촌놈마라톤’을 불사하는 걸까요? 먼저 생각해볼 문제는, 인간에게는 세상 만사에서 설명 가능한 원인을 찾으려는 본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서로 아무 관계없는, 순전히 우연한 결과를 갖고도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찾아내려고 하죠. 가령 주식시장이 토요일(Saturday)과 일요일(Sunday)에 문을 닫는 사실을 갖고, “주식시장이 주말에 문을 닫는 건 철자가 S로 시작하는 요일이기 때문이다”라고 하는 식이죠. 야구에서도 다르지 않아서, 노란 속옷을 입은 날 이긴 감독은 다음날에도 같은 속옷을 입고, 어떤 타자가 두 타석 연속 주자 1-3루에서 안타를 치면 해설자는 “저 선수는 주자 1-3루에 아주 강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3-4월 승률이 다른 달보다 더 중요하다는 믿음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3-4월에 좋은 성적을 낸 어떤 팀이 시즌 마지막에도 좋은 성적을 냈다면, 이는 그 팀이 좋은 전력을 갖고 시즌 내내 경쟁력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즌 초반 질주한 덕분에 그 분위기를 타고 팀이 강해지면서 좋은 성적을 냈다”고 믿어버리죠.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3-4월에 폭삭 망한 어떤 팀이 시즌 끝났을 때도 끔찍한 성적을 냈다면, 사방에서 “초반 부진이 시즌 성적을 좌우했다”는 분석이 쏟아져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인과관계가 틀렸습니다. 그 팀이 망한 건 시즌 초반에 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진 전력이 약하고 시즌 내내 약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전력은 좋은 팀인데 3-4월에 밀리는 바람에 팀이 망가져 하위권으로 떨어지거나, 최약체로 평가 받는 팀이 초반에 많이 이긴다고 전력까지 강해지는 게 아닙니다. 강한 팀은 9월이든 3-4월이든 가리지 않고 많이 이기고 적게 집니다.약한 팀은 한여름에나 3-4월에나 지는 날이 이기는 날보다 많게 마련입니다. 실제로 다음 표에 나오는 것처럼, 시즌 승률 6할 이상 팀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3-4월에도 정규시즌과 거의 비슷한 승률을 기록했습니다. 승률 4할 미만 약팀들 역시 평균을 내보면 3-4월 승률이 시즌 최종 승률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구요.


만약 강한 팀이 시즌 초에 부진했다면, 시즌을 치르면서 점차 원래 실력을 발휘하면서 많은 경기에서 승리할 겁니다. 약한 팀이 시즌 초에 촌놈마라톤을 펼쳤다면, 시즌 치를수록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법칙을 증명하며 지는 날이 많아지겠죠. 실제로 팀별 3-4월 승률과 3-4월을 제외한 5월 이후 남은 경기 승률의 상관관계를 구해본 결과, 0.4145라는 극히 낮은 수치가 나왔습니다. 시즌 전체를 갖고 구한 수치(0.6005)와 비교하면 아주 낮은 수준입니다.
만약 초반에 달려서 높은 승률을 올리면 팀이 강해진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시즌 초반 승률이 남은 시즌 승률과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야겠죠.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3-4월에 많이 이긴다고 해서 없던 전력이 생기면서 강팀이 되거나, 초반에 많이 졌다고 전력까지 약해지는 게 아니라는 얘기죠. 다음 표는 3-4월에 6할대 승률로 질주했지만 최종승률은 5할 이하였던 팀과, 3-4월에는 5할 이하로 부진했지만 마지막에 웃었던 팀의 목록입니다. 올라갈 팀은 초반에 못해도 결국 올라가고, 내려갈 팀은 초반에 반짝 해도 결국에는 내려갑니다.


통계적으로 별 의미 없는 시즌 초반에 목숨을 거는 문화는 다양한 부작용을 낳습니다. 흔히 ‘촌놈마라톤’이라 일컫는, 전력이 약한 팀이 초반에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리수를 던지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초반에 달리면 강팀이 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은 투수 혹사와 부상 선수의 조기 출전을 낳고, 결국에는 시즌 중반 이후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참사로 이어집니다.

또 어떤 구단들은 시즌 초반 일시적인 부진을 오판해서 감독의 자리를 흔들고, 선수단 운영에 간섭하고, 선수들에게 압력을 가해서 팀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기도 하죠. 팬들의 무시무시한 비난은 또 어떻고요. 시즌 초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이런 행태는 조금만 기다리면 충분히 올라갈 수 있는 팀을 완전히 망가뜨립니다. 의미 없는 3-4월 승률이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되어 버리는 셈이죠. 어쩌면 촌놈마라톤을 강요하는 이런 문화가 현장 감독들로 하여금 더욱 촌놈마라톤을 추구하도록 조장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올해부터 KBO리그는 경기수가 128경기에서 144경기로 대폭 늘어났습니다. 경기수가 적었던 예전에는 게임차가 한번 벌어지면 따라잡기 어렵다는 이유라도 있었지만, 경기수가 늘면서 이제 3-4월 승률은 더욱 의미를 찾기 어려워질 전망입니다. 실제로 162경기를 치르는 메이저리그의 경우, 최근 33시즌을 갖고 조사한 결과 3-4월 승률과 시즌 승률의 R제곱값은 0.3202에 불과했습니다. KBO리그에서 나타난 36%보다 더 적은, 32%의 설명력밖에 갖지 못했다는 얘기죠. 경기수가 많으면 초반에 승차가 벌어져도 언제든 따라잡을 시간적인 여유가 있습니다. 지난해만 해도 메이저리그 3-4월 승률 상위 10팀 중 가을야구에 성공한 팀은 5개 팀에 불과했습니다.

또 메이저리그에서는 7월(36%), 8월(42%), 9월(51%)로 갈수록 시즌 성적과 높은 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장기레이스의 특성상 시즌 중반을 넘어가면 부상자가 속출하고 주전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결국 풍부한 선수층을 갖춘, 주전 중 부상자나 부진한 선수가 나와도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팀들이 시즌 중반 이후 좋은 승률을 내고 상위권을 차지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는 144경기로 늘어난 KBO리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무더위가 시작되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여름부터 각 팀간의 희비가 본격적으로 엇갈리겠죠. 선수층이 풍부하고 투수들을 잘 관리한 팀은 7월 이후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겁니다. 반대로 선수자원이 부족하고 시즌 초반 투수들의 어깨를 동낸 팀은, 초반에 반짝하며 찬사를 받을지 몰라도 오래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144경기 시대. 의미 없는 시즌 초반 질주보다는, 시즌 전체를 바라보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때입니다. 야구는 마라톤입니다. 오늘만 보고 달리는 촌놈마라톤은, 이제는 그만할 때가 됐습니다.
기록출처: www.baseball-la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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