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아프다. 대통령의 병환은 개인적인 것이라 뭐라 평하기가 좀 그렇다. 주변에서도 "대통령이 아프다는데, 그에 대해 비판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박 대통령의 쾌유를 빌겠다. 필자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잠시 머무른 적이 있다. 해발 고도 2600미터(m) 고원 지대다. 당시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사람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 괴로움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원인 불명의 복통, 소화불량에 호흡곤란, 두통까지, 백약이 무효다. 박 대통령이 겪는 고통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쾌차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어볼 점들이 있다
앞서 말했듯,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대통령의 병환은 박근혜 개인의 고통이기도 하지만, 병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적, 사회적 현상들은 공적 영역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의 건강 상태는 국가 기밀에 해당된다. 외부에 공개되는 것 자체가 없는 일이다. 공개될 경우, 현재 상황이 비정상적이라는 신호를 국민들에게 줄 수밖에 없다. 결국 다방면에서 국가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
먼저, 27일 청와대의 '극히 이례적'인 브리핑을 짚어보자. '극히'라는 부사를 별로 쓰고 싶지 않지만, 이번 사례는 '극히' 외에 붙일 수 있는 수식이 없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오전 서울 모처에서 몸 컨디션과 관련한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 과로에 의한 만성 피로 때문에 생긴 위경련으로 인한 복통이 주 증상"이었다고 했고 "인두염에 의한 지속적인 미열"도 있어 "전체적인 건강상태가 많이 좋지 않았"다고 브리핑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최소 하루 이틀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할 것 같고, 그래서 2∼3일은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의 건강이 생중계되고 있다. 이런 브리핑은 대통령 재가 아니면 나올 수 없다. 이를테면 북한은 2~3일간 대통령이 활동할 수 없다는 정보를 청와대발 공식 입장으로 접하게 된 셈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살 소식에 "전방은요"라는 말을 돌려 준 박 대통령이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도중 당한 피습 치료를 마친 후 내놓은 첫 마디가 "대전은요"였다.(이 발언은 여러 설이 있긴 하나, 당시에는 "대전은요"가 첫 마디로 공인됐고, 이는 선거판을 뒤흔들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자신의 차트를 공개하듯, 병명과 휴일 날짜를 공지한 것인데, '극히' 이례적이라 아니할 수 있겠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병환을 숨기기 위해 화장까지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퇴임 후 참모의 회고를 통해서야 겨우(?) 알려졌다.
청와대는 내일인 28일 국무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표도 수리할 수 없는 상태이고, 새누리당이 요구하고 있는 '성완종 리스트' 사태에 따른 '사과'도 할 수 없는 상태인 것 같다. 박 대통령은 정말로 좀 쉬고 싶은 것 같다. 아니 쉬어야 할 것이다. 내일 예정된 국무회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얼굴을 한 차례 더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새누리당을 곤란하게 만든 대통령의 병환
'국가 기밀 유출'까지 감안한 청와대의 충정, 그리고 박 대통령의 결단이 말미암은 일들을 예측해볼 순 있다.
"2~3일" 쉰다는 전망을 보자. 이틀 후는 4.29재보선이다. 3일 후는 재보선이 끝난 다음 날이다. "1~2일"은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상태에서 쉰다고 한다. 하루 뒤는 내일이고, 재보선 전날이다. 몇 가지 시나리오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먼저 여당. 새누리당은 대통령의 사과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눈치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이날 "대통령이 이 문제('성완종 리스트' 파동 및 이완구 국무총리의 낙마)에 대해 국민이 수긍할 수 있는 진솔한 말씀을 직접 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김무성 대표는 전날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마치 청와대와 교감을 나눈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나 <연합뉴스>에 청와대 관계자는 "교감이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런 모진 사람들 같으니라고.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어렵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몸이 달아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사과를 해야, 돌아서 있는 지지층, 혹은 미심쩍어 하는 지지층에 안심하고 투표장에 나올 수 있도록 명분을 쥐어줄 것 아닌가.
타이트한 재보선 지원 일정을 이미 짜 놓은 김 대표 입장에서는 "대통령이 사과할 것이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는 말을 이틀이나 더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체면이 구겨진 셈이다. 그렇다고 '재보선 전에 사과하라'고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상황이 고약하게 됐다. 더 나아가면 음모론이니, 여기에서 자제하겠다.
그 다음 야당. 새정치민주연합도 불만이 많을 것이다. 어차피 '지지층 VS 지지층' 싸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내야 한다. 그래야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 총력 공세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진 꼴이다. 그렇다고 대통령이 아프다는데, 모질게 비난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얘긴 하고싶지 않지만, 짚어나 볼까 한다. 박 대통령이 생각보다 일찍 몸을 회복해 4월 28일 저녁에 사과를 한다? 여당에겐 당연히 호재고, 야당에겐 좋지 않은 상황이 될 것이다. 그것은 '꼼수'라 불릴 수 있을만 하다. 그러나 설마, 그런 상황은 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누가 봐도 '꼼수' 아닌가.
어찌됐든 대통령이 아프면서, 많은 일들이 꼬였는데, 공교롭게도 청와대는 되려 느긋할 전망이다. 재보선, 그거 이겨봤자 공로는 여당 다 가져갈 거고, 만약 지면 타격도 여당이 다 감수해야 할 일인데, 거기에 청와대가 무슨 액션을 더 취할 것인가. 심지어 액션을 요구받는 상황까지 '철벽'으로 차단한 상황인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지 않겠나. 청와대는 선거 결과에 따라 총리 인선에나 신경쓰면 될 일 아니겠나.
극히 이례적이게도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박 대통령의 건강 상황을 너무나 자세하게 브리핑 받았기 때문에, 2~3일간 벌어질 일들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점, 박 대통령에게 필자가 유감의 말을 전한다.
'정치 픽션'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돌아가며 쓰는 일종의 가상 정치 칼럼입니다. 이 '카더라' 칼럼이 진실의 한 구석이라도 보여줄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연히 정치 평론가 표동협은 가공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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