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목항에 수차례 갔다. 참사가 있던 그 다음 날과 그리고 1년이 지난 오늘까지. 그런데 항구에서 불과 1킬로미터 떨어진 팽목마을 팽나무 한번 가보지 못했다. 아직 바닷바람이 추웠던지 새싹도 피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앞은 화사한 노란색 유채가 만발했다.
갯벌을 걷다 보니 폐선들이 펄 깊숙이 박혀 녹슬어가고 있다. 세월호도 그럴 것이다. 배가 침몰한 곳, 수많은 영혼이 수장된 곳으로 갔다. 동거차도와 맹골도 사이, 그리도 조류가 거세다는 맹골수도 앞에 다다랐을 때, 뱃멀미로 선실에서 누워 있던 유족들은 차가운 바다를 베고 누워 있다. 뼛속까지 시리리라.
팽목항에서 수많은 군상의 사람들을 만난다. 씻김굿을 한다는 젊은 처자는 망연히 바다를 쳐다보고, 늙은 할마씨들은 친구들끼리 어렵게 찾아와 가엾은 어린 넋을 기린다. 저 어린 동생만이 남기고 떠난 큰애를 기억하는 아비의 심정은 또 어찌 표현을 해야 할까?
여기저기 정치권에서 보낸 조화가 한 구석에 방치돼 있다. 참사가 일어나던 그날, 4월 16일은 아예 유족들이 분향소를 걸어잠그고 안산으로 떠났다. 그리고 비보도(엠바고)를 걸었던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날아왔다. 유족 없는 상황실을 돌아보고 팽목항에 와서 홀로 성명서를 읽고 홀연히 경호실의 비호를 받으며 떠났다. 단 20분 만이다.
그리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먼바다에서 먹구름이 몰려온다. 팽목항의 모든 것들은 바람에 날려 휘청거린다. 멀리, 팽목항에서 떨어진 서망 해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이들을 봤다. 수북한 제수들을 정성스레 차려놓고 북을 두드리는 사람들 곁에 다가가 물었다. "이거 세월호 참사 관련인가요?" "유족들이 청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저희들이 마련한 겁니다." 무속인들은 그렇게 조용히, 배척당할 줄 알기에 그렇게 자기들끼리 세월호 넋들을 위로하고 있었다. 돌풍이 불고 비가 쏟아지는 해변에서 월출산에서 왔다는 만신 박선황은 통곡했다. 그 통곡 소리에 파인더를 통해보는 내 눈에서는 절로 눈물이 흘렀다.
만신들도 떠난 바다. 나와 함께 했던 행위 예술가 김은주 씨가 영령들을 상징하는 붉은 깃대를 해변에 꽂았다. 해변은 노을과 함께 붉게 물들었다. 해변에 앉아 머리를 삭발하고 그 머리카락을 태웠다. 살이 타는 역겨운 냄새가 해변을 메운다. 이것이 죽음이다. 실제다. 고통이다.
1년 전처럼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날처럼 진도의 하늘은 별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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