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청주시노인전문병원에서 만난 박희춘(74) 할아버지는 "이 병원 환자들은 다 죽을 때까지 여기 있고 싶어 한다"고 소개했다. 방광암 치료를 받고 2012년 10월부터 공공병원인 이곳에 입원한 박 할아버지는 "다른 노인병원에도 갔다 왔는데, 전문성이나 시설 면에서 여기만 못하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는 요즘 청주시가 노인전문병원을 없애려고 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 안 그래도 병원 직원들이 많이 줄었고 물리치료사도 가버렸는데, 병원까지 없앤다니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청주시장이 책임지고 운영해야지, 시는 병원만 지어놓고 나 몰라라 한다"고 비판했다.
박 할아버지는 특히 지난해부터 병원 서비스 질이 떨어졌다고 불평했다. 일례로 전에는 간호조무사 두세 명이 환자 70명을 봤는데, 요즘은 같은 인원을 한 명이 본다. 박 할아버지는 "나는 주기적으로 방광에 찬 소변 주머니를 바꿔줘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니 불러도 제때 도움을 못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력 축소 방침에 목소리를 높이던 박 할아버지는 아쉬운 듯 한마디를 더 덧붙였다. "그래도 여기가 좋아. 다시 예전(의 청주시노인전문병원)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간병사 1인 1실제 → 1인 3실제 변경
결정적인 갈등은 기존 24시간 간병제가 지난해부터 인력 충원 없이 3교대제로 바뀌면서 빚어졌다. 권옥자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분회장은 "간병사들은 '1인 1실' 맞교대제로 일했지만, 지난해 한수환 전 병원장이 '1인 3실' 3교대제를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기존 직원 145명이 구조조정으로 110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표면적으로 노동 강도가 3배 오른 것이다.
인력 부족은 의료 서비스 질 저하로 직결됐다. 간병사인 방금순(51) 씨는 "한 병실만 봤을 때는 환자 '콜'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세 병실을 동시에 봐야 하니 복도에서 '콜'을 대기하고 있다"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병실에서 할머니 기저귀 가는 사이에 옆 병실 할머니가 소변 마렵다고 불러도 듣지 못한다"고 말했다.
간병사인 조애숙(50) 씨는 "예전에는 환자들이 '우리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1인 3실제가 도입된 이후로 매번 간병사가 들어가는 병실이 바뀌고 있다"며 "하다못해 '내일은 손톱 깎아드려야지' 생각하고 퇴근해도, 다음날 방이 바뀌어 있으니 어르신들께 필요한 것을 못 챙겨드린다"고 호소했다.
노조 때문에 적자 경영?…배임 혐의 원장 '무혐의'
병원 측이 직원과 환자 양측이 반발하는 근무 체계를 도입한 이유는 '체불 임금' 논란을 회피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을 상대로 특별근로감독을 벌인 결과, 병원 측이 체불 임금 8억9300만 원을 노동자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정했다. 노동부의 판정이 나온 지 한 달 뒤인 6월, 병원 측은 전체 10시간 가운데 주간 7.5시간, 야간 8시간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1인 3실제'로 근무제를 변경했다.
직원들의 노동 강도는 세졌지만, 임금은 되레 하락했다. 일례로 2013년 기준 169만 원이었던 간병사 방금순 씨의 임금은 2014년 12월 145만 원으로 줄어들었다. 그마저 병원 측이 '적자 경영'을 선언하면서 30만~60만 원 단위로 쪼개져서 나오고 있다고 방 씨는 전했다.
반면 '적자 경영'을 호소한 한수환 병원장은 2013년 연봉을 2억9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1000만 원 올렸다. 이는 같은 기간 다른 공공 병원인 충북도립 청주의료원장과 충주의료원장의 연봉인 1억4000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금액이었다.
이후 노사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노동조합의 고발로 청주시가 지난해 11월 집중 지도 점검을 벌인 결과, 한수환 전 병원장이 배임했다는 정황을 밝혔다. 그러나 경찰 수사 과정에서 한 전 병원장은 '개인 사업자'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됐다.
급기야 한 전 원장은 지난 3월 18일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투쟁의 결과"라며 위탁 철회를 선언했고, 윤재길 청주시 부시장은 지난 3월 24일 "노사 문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세금을 헛되이 쓸 수 없다"며 새로운 수탁자가 병원을 폐쇄하겠다고 발표했다.
청주시노인전문병원 노조는 "간병사, 조리원, 간호조무사 등 노동자 대부분이 저임금을 받으며 높은 노동 강도를 감내하고 있다"면서 "노조 때문에 적자 경영이 났다고 하는데, 진짜 적자가 난 이유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 분회장은 "청주시노인전문병원을 감시하는 서원구보건소 측에 병원 회계감사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한 전 원장이 '개인 사업자라서 공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청주시 관계자들은 뒷짐만 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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