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일대일로(一带一路) 정책을 통해 유럽까지 보다 효율적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대형 장기 프로젝트를 선언하여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비교적 조용히 진행되는 중국의 또 다른 길 뚫기 프로젝트가 있다. 북극항로(Northen Sea Route) 개척이다.
신(新)해양실크로드, 북극항로
과거 북극해는 결빙되어 있어 바다로 접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북극해 빙하가 급격히 해빙되면서, 2008년 8월 베링해협을 통해 태평양과 그린란드를 지나 대서양을 이어주는 북극항로가 정식으로 개통되었다. 현재 연간 4개월 반 정도는 항해가 가능하게 되었고,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항해 가능한 일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북극항로 개발 및 북극 지역 개발에 대한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의 관심이 고조 되고 있다.
중국은 벌써 이에 대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국가부도 사태에 있던 아이슬란드에 경제적인 지원을 적극적으로 벌이면서 북극해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중국은 수심 약 70m인 심해 항구를 개발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북극해의 환적 항구를 만드는 데 집중 투자하였다. 이미 2013년 중국 쇄빙선(바다의 얼음을 깨뜨려 뱃길을 내는 특수 장비를 갖춘 배) '수에롱(雪龙)호'는 칭다오(青岛)~베링 해협~아이슬란드를 잇는 북극항로의 시험운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또 시진핑(习近平) 중국 국가 주석은 판다 외교를 통해 덴마크 정부와 우호·평화 관계를 쌓고 있으며, 2010년부터 재정이 부족한 그린란드와의 접촉, 최근에는 그린란드 광산을 인수하는 등 북극이사회 국가에 다각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중국이 북극 지역에 이처럼 관심을 보이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물류적 관점에서 기존에 태평양, 인도양, 수에즈운하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갈 때보다 운항거리를 약40% 정도 줄일 수 있어 시간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분쟁이 잦은 중동지역 정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아덴만의 해적문제, 수에즈 운하의 혼잡 등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어 사회적 비용 또한 절감된다.
자원개발 측면에서도 중국에게 북극은 매우 개발가치가 뛰어난 매력적인 곳이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북극 지역의 석유 매장량은 전 세계 매장량의 13% 정도이며, 메탄가스도 전 세계 연간 가스소비량과 맞먹는 수준으로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뿐만 아니라 니켈, 철광석, 구리, 우라늄, 희토류 등의 자원도 풍부하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중동에는 석유가 있다면, 중국에는 희토류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희토류의 자원 무기화를 강조하였다. 중국이 희토류 및 기타 자원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북극의 자원 개발이익을 선점하는 것이 전략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게 되었다.
북극진출을 위한 과제
하지만 북극으로의 진출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국제법적인 쟁점이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우선, '국제공유지'로 인정되고 있는 남극과는 달리 북극 지역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극은 개별 국가들의 영유권 주장이 동결된 상태로 어떤 국가든 군사적으로 이용하거나 천연자원의 개발을 제외한 과학 연구 활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동토, 차가운 공해, 대륙붕 위의 얕은 해수지역으로 구성된 북극의 경우, 1982년 제정된 유엔해양법에 따라 개별 국가의 주권이 인정되지 않고 다만, 미국,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러시아 등 북극해 연안 5개국의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만 인정되고 있다. 또한 대륙붕이 뻗어 있을 경우 예외적으로 수역 확장을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연안국 간 여전히 영토분쟁에 대한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북극의 활용도가 높아지자 북극항로의 법적 지위 등에 대해 연안국과 비 연안국 간 갈등 양상을 보이는 추세이다.
현재 북극과 관련된 의제는 5개 북극해 연안국과 주변국, 핀란드 스웨덴 아이슬란드 3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북극이사회(The Arctic Council) 체제를 통해 논의되고 있다. 북극과 관련된 사항은 이 8개국에게만 의결권이 주어지고, 연안국 이외 국가의 개입은 용납되지 않고 있다. 의결권이 없는 중국이 북극 연안 및 주변국에 오랜 기간 공을 들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국은 2013년 북극이사회 각료회의에서 상시 옵서버 지위를 획득한 이후 북극 주변국과의 외교를 통해 북극 참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1925년 발효된 스발바르조약(Svalbard Treaty)을 근거로 북극 관련국임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스발바르조약은 노르웨이 북단 5개 섬을 조약국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중국을 포함하여 39개국이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1905년 을사늑약 체결로 일본에 외교권이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에 가입할 수 없었다. 또한 북극의 기후변화가 중국의 농업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근거로 북극권 진출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북극 거버넌스 참여기회를 엿보고 있다.
북극에 대한 한중 간 새로운 협력체계 필요
북극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욕망은 한국도 중국 못지않다. 올해 하반기 국내 기업의 북극항로 상업 운항 추진을 위해 해양수산부는 ‘2015년 북극정책 시행계획’을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보고하기도 하였다. 한국도 중국처럼 북극이사회 상시 옵서버로서 활동하면서 북극 개발 프로젝트 수행을 위한 재정 후원자, 지역 협력자로 북극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처럼 북극해 연안국뿐 아니라 북극의 영향권에 있는 모든 국가가 북극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북극 연안국을 중심으로 하는 북극이사회의 독점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성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북극은 지구 전체로 볼 때 단순 해양으로 볼 수 없다. 북극의 기후변화는 어떻게 보면 새로운 경제적 기회가 열리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개별국의 생태환경이 파괴될 수도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영토가 줄어드는 등의 부정적인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북극이사회를 중심으로 북극에 대한 중요 현안이 독단적으로 결정되고, 북극의 기후변화에 직접적 영향권 안에 있는 국가들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재의 협력체계에 대해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북극해 환경과 지구 환경의 연관성을 고려한다면, 북극해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은 북극에 대해 같은 처지에 있고, 최근 타결한 FTA를 통해 보다 긴밀한 협력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양국이 협력을 통해 북극 현안에 대한 다자간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데 선두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국제질서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는데 소극적이었다. 북극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과 연합하여 적극적으로 이끌어 가보는 건 어떨까.
(윤성혜 교수는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한중법률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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