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삶까지 치료하는 의료, 그저 꿈일까요?"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삶까지 치료하는 의료, 그저 꿈일까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병보다 사람이다

아침에 나와서 진료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뭐 좀 물어볼 게 있다고 찾아온 분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동네분들이 지나는 길에 이런 저런 사소한 것들을 물으러 오는 경우가 잦아서 그런 분이겠거니 하고 나갔는데, 낯선 중년 남성분입니다. 뭔가 조금 망설이는 표정이어서 안쪽으로 들어오시라 해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원 진료를 계속 받아 오다가 어느날 갑자기 목에 혹 같은 것이 생겨서 물었더니,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으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검사를 받아보니 암이래요. 정확하게는 악성암이 되기 전 단계라고 하면서 수술을 하자고 해서, 다음 주에 날짜를 잡아 놨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하도 뭐가 좋다, 어딜 가봐라 하는데,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고, 저도 판단을 할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왔습니다."

위로와 함께 환자 분이 주변에서 들은 내용들을 정리해 드리고, 수술 이후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진단을 받고 난 후 나도 힘든데 아내의 태도가 이전과 달라 그것도 힘들고, 하던 일도 그만 둬야 할지 계속 해야 할지도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한꺼번에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하지 마시라고 했지요. 아내 분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 까지 기다려 주셔야 하고, 일은 수술 이후 경과를 봐서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처럼 힘들 때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가 힘들 것이라구요. 그리고 수술 전에는 뭘 많이 하기 보다는 많이 쉬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라고 했습니다. 1박 2일 정도 짧은 여행을 다녀올 것도 권했구요. 상담을 마치고는 수술 이후에 다시 보기로 했습니다.

▲암 진단을 받거나, 현대의학에서 고치기 힘들다는 여러 질병에 걸린 분들이 찾아오시면, 어떤 말을 해야할까요? ⓒ연합뉴스


진료를 하다보면 이 분처럼 암 진단을 받거나, 현대의학에서 고치기 힘들다는 여러 질병에 걸린 분들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의 지인 분들 중에도 이런 경우를 당해서 물어 오기도 하구요. 그런데 이런 분들의 공통적인 고민이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 사건이 터졌는데 다들 병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자신이 이것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주거나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병에 걸렸다는 진단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힘들고 불안하고 앞날이 막막한데, 자신이 살아온 인생마저 허물어지는 것 같다고들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을 오롯이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다구요.

살면서 다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병에 걸려 고생하는 것은 생물이 가진(게다가 사람은 오래살기까지 하지요) 어쩔수 없는 숙명입니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고통이 심하거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중한 병에 걸리지 않고 사는 것인데, 이 또한 내 맘대로 되지 않지요. 미래 의학에 관해서는 여러 장밋빛 청사진들이 제시 되지만, 그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지 그리고 그렇게까지 해서 인간이 병에 걸리지 않고 지금보다 오래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여하튼, 지금의 의학이 해결책을 찾지 못한 병에 걸리게 되면 치료과정도 힘들거니와(이런 병의 치료는 잘 모르는 어두운 길을 더듬어 가는 것과 같아 앞에 뭐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지 못합니다), 이로 인해 예상치 않았던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삶 자체가 힘들어 집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은 최신의 치료법과 약물들 그리고 좋은 시설과 그 병에 정통했다고 알려진 의사는 있지만, 아직 병으로 인해 발생한 환자의 삶을 위로해 주고 무너진 마음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도까지는 오지 못했습니다. 병을 나누어서 보는 분과시스템과 전문의 제도가 가진 한계일수도 있고, 질병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치료 행위에 대해 수가를 지불하지 않는 보험제도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없고 우리가 좀 더 나은 사회를 지향한다면, 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리적 충격을 위로하고 치료과정이나 치료이후 발생할 수 있는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좋은 방법을 모색해서 질병 뿐 아니라 환자와 그 삶을 함께 치유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치료 이후에도 단순한 정기검진 뿐만 아니라 다시 병이 재발하지 않도록 건강을 잘 관리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 또한 필요합니다. 병이 아니라 사람과 그 삶을 중심으로 의료라는 판을 재구성 하는 것이지요. 지금의 현실에서 참 요원한 이야기 일지도 모르지만 어디를 지향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긴장한 모습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으셨던 그 분이 수술도 성공적으로 마치고, 아내 분과도 화해하고 병으로 인해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수만 있다면 중년에 벼락처럼 찾아온 병이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