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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차떼기 파동' vs. 2015년 '성완종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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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차떼기 파동' vs.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전망] '물타기 공세'와 '면죄부 수사' 경계해야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2012년 새누리당 대선 자금 의혹으로 번졌다. 그러나 수사의 단서는 부실하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면 돌파' 선언을 할 만하다는 말도 나온다. 사건 자체는 충격적이지만 호들갑을 떨 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2일 "검찰이 법과 원칙에 따라 성역 없이 엄정히 대처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13일 "검찰 수사에서 비리가 드러나면 측근이든 누구든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에 대한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나 다름없다. 누군가는 다친다. 그러나 정권은 유지돼야 한다. 검찰이 대선 자금 수사에 손을 대더라도 상관없다는 메시지가 읽힌다.

다만 문제는 지지율이다. 정권의 존립 근거는 유권자에 있다. '성완종 리스트'는 수사의 파장보다 정치적 파장이 더 주목받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어쨌거나 박근혜 정부는 도덕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됐다. 수사 결과와 별도로 여권 입장에서는 내년 총선 등 정치 일정에 악재가 될 게 분명하다.

여당도 야당도 대선 자금이 문제?본질은 '새누리당 대선 자금'

현재로서는 이 사건의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수많은 변수들을 미리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대형 스캔들'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정치권 인사들은 2003년 노무현 정부 초반 대선 자금 수사와 비교하기도 한다. 검찰이 SK그룹 일개 계열사의 부당 거래를 조사하던 중 '비자금 사용 내역서'가 발견돼 헌정 사상 초유의 '차떼기' 스캔들로 번졌던 일이다. 기업 비리 수사의 불씨가 대선 자금 수사로 옮겨 붙었다는 것은 현재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2003년과 2015년은 다르다. 당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사에 부담을 느낀 여권(현재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측근'에 메스를 들이대면서까지 밝혔던 게 차떼기 사건이다. 즉, 2003년에는 야권(새누리당의 전신)에 대한 수사가 여권(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으로 불똥이 튄 것인데, 지금은 여권 내부에서 불이 붙었다.

2003년은 '앙시앙레짐(구체제)'의 '끝물'이었다. 지금은 '오세훈 법' 등 정치자금법 정비와 함께 자정 노력이 진행돼 왔다. 금융 시장이 투명해진 것도 한 몫 했다. 최소한 정치권에서 '차떼기'나 '기업 털기'는 어려워진 셈이다. '구체제의 끝물'에 특수통 검사들은 전성기를 누렸다. SK그룹 측의 100억 원대 대선 자금 제공에 대한 자백이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물증'의 힘이 있었다. 불법 자금 유통망은 허술했고, 검찰은 이를 기술적으로 잘 이용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기업으로부터 대선 자금을 받는 게 관행처럼 돼 있었다. 특히 수십 년 여당 생활을 해왔던 한나라당은 '관성'처럼 여겼다. 기업에서 나온 '자백'은 한나라당 실세 최돈웅 의원 등의 입을 움직였다. 당시 야권 인사들은 불법 자금을 모금해 대선에 사용했다고 불었다. 검찰은 대기업을 압박했다. '순순히 자수하면 참작해 주겠다'고 했다. 기업들의 제보가 줄을 이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목 아래까지 칼이 들어왔다.

야당 탄압이라는 인상을 피하기 위해 당시 여권은 대통령의 측근(안희정)을 구속시키는 출혈까지 감내했다. 당시 한나라당의 비리를 성역 없이 파헤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정경 유착'을 근절한다는 정치 개혁의 '명분'도 살렸다. 결국 2003년 대선 자금 수사는 2004년 정치 자금 모집 및 정당 운영의 투명성을 강조한 '오세훈 법'의 산파 역할까지 한다. 요컨대 여권이 야권 수사를 하며 제 살을 내준 것이다.

이런 배경을 감안하면, 김무성 대표가 "야당의 대선 자금도 같이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나도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건가. 성완종이 새정치에 대선 자금 제공했다고 했어. 무슨 엉뚱한 소리야"라고 불쾌한 감을 내비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물타기'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현재 야권에 제기된 의혹은 성 전 회장의 2007년 특별사면 의혹이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이날 대정부 질문에서 성 전 회장이 노무현 정부 때 두 차례 사면을 받은 것과 관련해 "드문 일"이라며 의혹에 군불을 지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그래서 여권의 문제다. 거기에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자금' 문제다.

태산이 떠나갈 듯 시작된 수사, 쥐 한마리 잡고 끝난다면?

사안 자체는 충격적이다. 전직 국회의원이 '사정 정국'에 휘말리더니,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스스로 목을 맸다. 그가 돈을 건넨 것으로 지목한 인사들은 대부분 친박계 거물급 실세다. 심지어 "회계 처리 되지 않은" 대선 자금까지 제공했다고 폭로했다.

수사 전망은 밝지 않다. 박근혜 캠프 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의원이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전 새누리당 의원)으로부터 2억 원을 받았다는 '죽은 자의 진술'이 전부다. 검찰이 입증해야 하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검찰은 숨겨진 장부, 목격자 등의 확보에 나섰지만, 성 전 회장 유족이나 주변 인사, 혹은 경남기업 내부 인사들이 협조적일지 여부도 불투명하다. 경남기업은 워크아웃 중이다. 정부에 협력해야 하는 상황인데, 여권 실세들이 얽힌 대선 자금 수사에 휘말린다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악재다.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했던 유정복 인천시장이나 서병수 부산시장에 대한 수사의 전망은 더 어둡다. 이름과 금액만 언급됐을 뿐, 추가 단서가 없다. 결국 대선 자금 수사는 홍 의원을 수사하는 데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검찰은 곤혹스럽다. '호랑이 등'에 떼밀려 올라탄 형국이지만,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청와대가 "(수사 대상에서) 측근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한 것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놓아야 하는 부담감도 있다. 홍 의원 등에 대한 수사가 면죄부식으로 끝날 경우 역풍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을 믿을 수 없다는 여론도 거세다. 검찰은 <경향신문> 인터뷰가 공개된 후에야 성 전 회장의 메모를 전격 공개했다. 과연 수사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수사는 화려하다. "성역 없는 수사", "나를 조사하라" 식의 말들이 연일 보도된다. 심지어 "대선 자금 조사"라는 말은 청와대나 검찰이 아니라 여당 대표 입에서 먼저 나왔다. '우리는 떳떳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미디어 기획'으로 보인다. 검찰에 대한 압박이기도 하다. 한 정치권 인사는 "실세 중 누군가는 다칠수밖에 없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수사했더니 문제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촌평했다. 검찰은 '특수통 전성시대'를 재현할 수 있을까? '면죄부 수사'로 귀결될 경우 여론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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