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사진이 걸린 '기억의 문'을 통과하면, 커다란 종이배 모형의 조형물이 사람들을 맞는다. 희생자 304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진 유리 모형 안엔, 노란 색종이로 접은 작은 종이배들이 담겼다. 그 뒤로는, 다시 희생자들의 분향소가 들어섰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5일 앞둔 11일. 온전히 '추모'만 하기에도 힘들었던 1년을 지나, 서울 광화문광장에 다시 분향소가 설치됐다.
자식의 영정 앞에 다시 향을 피우고, 국화꽃을 올리는 부모의 마음도 그랬다. 1주기가 다 되어가도록 참사의 진실만이라도 밝혀 달라고 삭발을 하고, 다시 행진을 하고, 거리에서 농성을 해야 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세월호 1주기 역시 '추모 주간'이 아닌 '행동 주간'으로 잡았다. 온전히 슬퍼하는 것만으로도 힘겨웠을 1년, 누더기가 된 특별법과 시행령, 지지부진한 진상 규명 작업은 유족들에게 온전히 애도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다시 거리로 이들을 내몰았다.
분향소 뒤로는, 4.16기억저장소와 사진가들이 작업한 '아이들의 빈 방' 사진전이 열렸다. 수학여행 때 가지고 간 예진이의 보라색 캐리어 가방, 역시 바다에서 올라온 정인이의 신발 한 짝과 지갑, 액정이 완전히 깨진 건우의 휴대전화, 물에 젖어 너덜너덜해진 제주도 수학여행 가정통신문까지. 바닷물에 삭아 옷깃이 헤진 아이의 교복이, 광화문광장에서 사람들과 만난다. 그렇게 참사를 증명한다.
'희생자 304명'이란 차가운 숫자가 아니라 저마다 꿈이 있었고 수백, 수천가지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아이들의 빈 방 사진을 보며, 관람객들의 눈시울이 빨개졌다.
오후 5시30분, 시민 70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세월호의 온전한 선체 인양과 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촉구하는 총력 행동이 열렸다. 유가족들은 전날 이완구 국무총리와 유족들의 면담이 무산되고, 304명의 국민이 바다에서 희생된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이 남미 순방을 떠나는 것에 분개했다.
단원고 2학년7반 고(故) 전찬호 학생의 아버지 전명선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1주년이 다 되도록 자식의 사인도 찾지 못한 억울함으로 삭발을 하고, 아이 영정을 품은 채 이곳까지 걸어왔었던 부모들이다. 정부에 바라는 것은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 두 가지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유가족은 거리에서 걷는 것조차 방해받고 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유가족을 만나겠다고 해놓고 경찰이 막는 것이 현 정부의 현실"이라며 "청와대 앞엔 하루에도 멀다하고 수백 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드나드는데, 대한민국 국민이 청와대 앞에 가는 것을 왜 이렇게나 많은 공권력을 동원해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집회가 끝난 뒤, 참가자들은 대통령과의 면담을 촉구하며 청와대까지 행진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경찰이 전경버스 3대를 동원해 행진을 막아서면서 대치를 이어갔다. 장시간 대치가 이어지자 참가자들은 종각 방향으로 우회했다가 오후 9시 현재 다시 광화문 쪽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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