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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조롱당하는 시대, 김대중에게 배워야 할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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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청와대가 조롱당하는 시대, 김대중에게 배워야 할 것들

[프레시안 books] 김하중 <증언>

김하중, 김대중에 대한 생각이 바뀌다

외무부 관료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의전비서관에 발탁된 이후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지켜보고 보좌했던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의 책 <증언>(비전과리더십, 2015년 1월 펴냄)은 비망록이 태부족인 우리의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더군다나 이 책에 적힌 내용들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이 한국과 세계에 새겨놓은 인간적, 외교적 족적이라는 점에서도 후대를 위한 하나의 교과서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나는 공무원이었으며, 기득권층이었고 제도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그분에 대해 들리는 것은 항상 부정적인 이야기뿐이었다. (중략)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으로 보아 떠도는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했다."

김대중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김하중의 선입관과 인식은 애초에 이런 수준이었다. 그랬던 그가 책의 말미에서는 이런 고백을 공개적으로 하게 된다.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증언을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가 김 대통령을 공격하고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그분을 알고 사랑하며 존경하는 수많은 지도자들과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분명 영웅이었으며 그렇게 기억될 것입니다. (중략) 제가 본 김 대통령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었으며 용서와 관용과 겸손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에 기초한 진실임을 말씀드리며 저의 증언을 끝내고자 합니다."

김하중이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점으로 해서 종교적 고백의 성격이 짙은 증언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라도, 김대중에 대한 생각의 변화와 존경, 그리고 애정은 이 책 곳곳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권력자에 대한 미화나 아부가 아니라, 진정성을 가진 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자부심과 자랑 그리고 넘치는 존경심의 표현이다.

김대중의 인간에 대한 자세

ⓒ비전과리더십
김하중이 김대중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주중대사관 정무공사로 일하고 있었던 1994년 봄이었다. 당시 김대중은 정계 은퇴 이후 만든 아태평화재단의 이사장이었는데, 그의 중국 방문 전 김하중은 중국에 대한 브리핑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때 김대중에 대한 김하중의 인상기는 이렇게 요약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내 설명을 깨알같이 적었다. 김 이사장은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고, 설명을 적다가 종이가 부족하면 다시 복사지를 꺼내 네 겹으로 접은 다음 적기를 계속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거대한 정치인이 대사관의 일개 공사의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적는다는 그 정신과 자세가 너무 놀라웠다."

이러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김대중에게 의전비서관으로 호출된 김하중은 대통령 의전 문화가 권위주의에서 민주적으로 바뀌어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김하중은 단지 의전비서관의 역할만이 아니라, 본래 그의 특장인 외교 문제와 중국 문제에 대해 대통령과 깊은 소통을 하는 기회와 훈련을 아울러 갖는 행운을 누린다. 이것은 일단 인재로 보면 그의 재능을 최대한 길러내 언젠가는 그에 맞는 자리에 앉혀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김대중의 인간관과 인사 정책을 그대로 보여준 보기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일단 믿고 맡겼으면, 자신의 의사에 대해 반대를 하더라도 그 반대의 의미를 경청하고 주장이 옳다고 여기면 그걸 적극 받아들이고 격려하는 모습도 김하중은 경험하게 된다. 대통령이 어느 외국 인사와 식사를 하고자 하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는 점을 주시한 김하중은 여러 차례 반대를 한다. 그러자 대통령은 당시 임동원 외교안보수석비서관에게 의전비서관인 김하중의 반대로 이를 못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이에 임동원은 김하중에게 사실을 파악하는 전화를 건다. 그러자 김하중은 젊은 비서관의 주장이 강해 대통령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때 대통령과 김하중의 대화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김 비서관."
"네."
"김 비서관은 아주 훌륭한 사람이에요."
"네?"
"지금 누가 나한테 와서 내가 지시한 것을 몇 번이나 반대하겠어요? 나는 김 비서관이 나한테 그렇게 해줘서 너무 고마워요. (중략) 앞으로도 무슨 일이 있으면 꼭 그렇게 해줘요. 아니면 아니라고,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라고. 그래야 내가 알 거 아니에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 하는 게 중요하니까. 말하기 좀 어렵더라도 꼭 이야기해주기 바라요."

대통령으로서 김대중의 회의를 주재하는 방식도 사뭇 달랐음을 김하중은 증언하고 있다. 그는 고위직 관료들이 부하 직원들이 만들어준 자료는 제대로 보지 않고 질문만 하고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수없이 보았다면서 김대중의 경우는 이와는 완전히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이미 자료를 다 읽고 내용도 알고 있었지만 절대로 보고를 끊는 법이 없었다. 보고하는 사람이 아무리 잡다한 이야기를 많이 해도 아무 말 하지 않고 계속 들었다. (중략) 보고를 끝까지 다 듣고 난 다음, 결정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그 자리에서 간단히 결정을 해주거나, 당부 사항이나 훈시할 내용이 있으면 간단히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러한 김대중의 태도는 사람들이 자신과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는 국가의 동력 그 자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김대중의 자세는 그가 민주화 투쟁의 상징이자 실제로 오랜 고난을 겪은 인물이라는 사실과 하나가 되어 국제 사회에서 그에 대한 인식과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는 김대중의 대통령 취임 당시 외환 위기에 처해 있던 상황에서 한국의 입지를 세우는 데 기여하게 된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김대중의 인간됨, 그리고 역사성

일본의 황후가 김대중을 만나 하는 이야기는 그러한 면모를 보여준다.

"대통령께서는 많은 고난의 세월을 보내셨는데도 아주 온화한 철학과 강한 신앙과 희망을 잃지 않는 생활 태도를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본래 용기가 있다기보다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중략) 그러나 저에게 용기를 준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입니다. 진정한 예수의 제자는 고통을 받는 사람을 위해 억압자와 싸우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처럼 이 사회의 불의와 독재, 부패와 싸우는 사람입니다. 둘째는 역사에 대한 신앙입니다. 역사를 보면 악을 행한 사람이 당대에는 벌을 받지 않는 경우가 있지만, 후세에는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됩니다. 반면 바르게 산 사람이 당대에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만 후세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러한 김대중의 신앙과 역사관은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대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결국에는 남북 정상회담과 노벨 평화상 수상에 이르게 한다. 김하중의 <증언>에는 이러한 김대중의 외교적 면모와 국제 사회의 존경에 얽힌 일화가 그득하다. 그건 우리 사회가 미처 깊이 염두에 두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세계사적 장면들이라는 점에서 깊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체코의 바츨라프 하벨이라든가 남아공의 만델라, 브라질 대통령 룰라 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 외교나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으로서, 한 국가의 외교력이라는 것에서 단지 그 나라의 정치와 경제, 문화 등의 요소들만이 아니라 그 나라 지도자의 인간성과 역사성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북 정상회담의 장면들은 이제 많이 알려진 것들이기는 하지만, 남과 북의 정치 문화의 차이나 지도자들의 성격적 특성, 협상 과정에서 신뢰 구축 등에 관한 대목들은 여전히 소중한 기록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를 풀어가는 것이 곧바로 국내 정치의 반응에 직결되는 상황에서 얼마나 조심스럽고 전략적 판단을 해야 하는지도 새삼 주목하게 한다. 당시 상황에 대한 김하중의 증언을 읽으면서 내내 아쉽게 여겨지는 것은 그런 김대중의 기여가 오늘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그 명맥이 거의 완전히 끊어져버린 현실이다. 좋은 관계의 축적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이루어나가야 하는 권력의 의지가 소멸되어버린 상황은 김대중에 대한 그리움을 더하게 한다.

설득의 중요성을 아는 김대중

김대중과 관련해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바는 그가 난제 앞에서 관계 당사자에 대한 설득을 끈질기게 하는 정치력을 가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민주적 리더십인 동시에 지도자적 책임감에서 나오는 태도라고 하겠다. 그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를 제대로 풀어나가기 위해 했던 생각의 요체는 그런 차원에서 너무도 소중하다. 그는 미국의 대북 정책을 전환시켜나가기 위한 방책으로 다음과 같은 핵심을 미국에 전달하고자 노력한다. 여기서 그의 상대는 대북 관계에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부시 미국 대통령이었다.

"본인이 보기에 북한은 진심으로 미국과 관계 개선을 희망하고 있으며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살길은 미국과의 대화를 통해 경제 회복과 안보를 보장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원하는 것은 미국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대화를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우리와의 긴밀한 공조 하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 2008년 6월 12일 여의도에서 열린 '6.15 남북 정상회담과 그 이후' 행사에 참석해 나란히 앉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김대중을 다시 배워야

오늘날 우리는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가? 권력은 다시 민주화 이전의 시대로 회귀해버렸고, 남북 관계는 새로운 전망이 없는 상태다. 역사에 대한 신념은 훼손되었고, 세계적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외교 역량은 피폐한 처지이다. 박근혜로 대표되는 국가 지도력의 수준은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어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야당에서 고난의 역정을 거치면서 미래의 희망이 되는 지도자가 발견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현실에서 김하중의 김대중에 대한 증언은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워야 할 바는 단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부터가 더 중요함을 일깨운다. 이미 고인이 된 대통령에 대한 헌사라는 점에서 비판적 성찰의 대목이 부재할 수 있음을 전제로 하고라도, 김하중의 책은 최근거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한 관료 출신의 한 인물이 깊은 존경과 사랑을 담아 내놓은 일종의 간증이라는 점에서 깊이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것은 자신의 인격과 삶을 걸고 누군가에 대한 증언을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난마처럼 얽히고 파산 직전으로 가고 있는 정치는 김대중으로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 그의 삶은 이 나라 역사의 고난 그 자체이자, 희망이 태어난 순간의 환희를 절절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증언>에 담긴 김하중의 진솔한 기록과 토로, 그리고 증언이 지금 이러한 때에 이토록 고마운 까닭은 그래서 하나둘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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