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최근 들어 급증하는 동북아 각국의 역사 인식 차이로 인한 갈등을 해소하고자 만든 기관이다. 해마다 다양한 활동과 연구를 통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또 일본과 중국의 뒤를 이어 지금이라도 역사지도를 편찬하고자 야심차게 '동북아역사지도'(이하 역사지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지도의 내용 중 특히 고대사에 관한 내용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여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동북아역사지도에 대한 비난의 핵심 : 한군현(漢郡縣)
비판의 핵심은 한 무제(武帝, BC 156-BC 87)가 설치한 한군현(漢郡縣, BC 108-314)의 위치 때문이다. '한사군'(漢四郡) 이라고도 불리는 한군현은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의 통치를 위해 설치한 낙랑(樂浪)·현도(玄菟)·진번(眞番)·임둔(臨屯)의 4군을 가리킨다. 하지만, 4군이 동시에 존재했던 기간은 겨우 25년이고, 거의 낙랑만 존재했기에 한사군보다는 한군현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이번 역사지도에서 문제가 된 한군현은 이미 예전부터 국내뿐만 아니라 한중일 학계에서도 논쟁의 쟁점이었다. 한군현의 위치에 따라 한국 고대 국가의 영역이 달라지고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유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즉, 일본과 중국은 "한군현의 영역은 남한에까지 이르고, 그 영향력 역시 한반도 전체에 달한다"라고 주장하는 반면, 한국은 "그 영역이 적으며, 도시국가의 성격이 강해 한반도와 교류한 정도"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한군현, 불순한 탄생 배경
역사를 공부하면서 가끔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역사학은 과거에 발생한 사실을 연구하여 현재 혹은 미래에 도움이 되게 하는 학문이지만, 이것이 종종 정치적 이익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으로 전락되기 때문이다. 한군현 역시 마찬가지 이유에서 제기되었다.
처음 한군현을 언급한 사람들은 일제의 어용 학자(御用學者) 즉, 식민사관(植民史觀)에 찌든 자들이었다. 잘 알다시피 식민사관은 일제가 한반도의 영구한 통치를 위해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려는 의도로 등장했다. 특히 식민사관의 '타율성론'(他律性論) 은 한민족의 역사는 스스로 이끌어온 것이 아니라 항상 강대국에 의해 이끌려왔다고 강조하였다. 다시 말하면 "과거 한민족은 중국에게 이끌려왔다. 현재는 중국이 쇠퇴했고 우리 일본이 강성해졌으니까 우리의 지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인 것이다.
한군현은 바로 이런 타율성론을 강조하기 위해 이마니시 류(今西龍, 1875-1932)의 저서 <조선사의 길잡이>(朝鮮史の栞)에 처음 등장한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군현이 설치됨에 따라 한반도는 거의 모든 부분이 중국의 통제 하에 있게 되었고, 조선의 역사 역시 그 시작부터가 강대국 중국에 의해 이끌려왔다"라는 것이다. 일제의 이러한 주장에 중국으로서는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고, '동아시아의 모든 것은 중국에서'라고 여기는 '중화주의'(中華主義)에도 부합하니 딱히 일제의 왜곡된 주장을 반박할 필요가 없었다.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동북아역사지도
현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역사지도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일제의 어용학자들에 의해 제기되고, 중국에 의해 수용된 한군현의 영역 표시를 우리 역사지도가 그대로 따라 했다는 것이다.
역사지도편찬위원회가 참고한 연구 자료 67건 중 35건이 고(故) 이병도 전 서울대 교수의 자료이다. 이 전 교수는 앞서 언급한 이마니시 류와 함께 한국사 왜곡의 선봉인 '조선총독부 조선사 편수회'에서 수사관보로 일했던 인사로, 이때의 경력으로 인해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또한 광복 후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 시, 일제의 황국사관(皇國史觀, 만세일계(萬歲一系)를 주장하는 일본 천황 중심의 국가주의적이며, 일제 77년을 상징하는 역사관)을 신봉하는 덴리대학교(天理大學)에 가서 신도의 도복을 입고 예식에 참석하기도 했다고 한다.
비록 수많은 연구 성과를 이룩해 한국 역사학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의 위와 같은 친일 행적으로 많은 이들에게 일제 식민사학자들보다 더 식민사관을 뿌리 깊게 심어두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성향과 배경을 가진 이 전 교수의 주장을 대부분 수용했다는 것은 분명히 큰 문제가 있다. 또한 한군현의 위치가 중국의 <중국역사지도집>과 거의 비슷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친일 성향 학자의 의견을 대폭 수렴하다보니 알게 모르게 중국의 동북공정의 내용과 일치하게 된 것이다.
동북공정과 한국사의 재정립
다행히 동북아역사재단에서도 역사지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본래 올해 종료될 계획을 학계, 언론계 등의 공개 검증을 위해 2018년까지 연장하였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42억 원의 혈세를 쏟아 붓고 올해에도 5억 원을 책정한 대형 사업이 하마터면 일제의 망령을 위한 '진혼곡'(鎭魂曲)이 될 뻔한 것이다. 앞으로 역사학자들의 책임 있는 연구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사실 중국의 동북공정은 순수한 역사 연구로 보기는 힘들다. 수많은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은 지금도 이웃 나라와 영토 문제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 우리 역시 그중 하나다.
예를 들어 우리와 북한의 통일로 인한 급격한 변화, 그리고 중국 내의 조선족의 귀속 문제, 간도 문제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사태에 미리 '이론적으로 무장'하기 위해, 즉 농후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실시된 것이 바로 중국의 동북공정이다. 그리고 동북공정이라는 '창'을 막는 '방패'를 만들기 위한 작업 중 하나가 바로 동북아역사지도이다. 그런데 현실은 식민사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도리어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 전 교수를 중심으로 자칭 '실증 역사학'을 중시한다는 역사학계의 '주류'들은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멋대로 '재야'라고 규정지은 학자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며, 함께 심하게 뒤틀린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절대로 역사를 심각하게 왜곡한 동북공정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식민사관에 휩싸여 스스로 자신을 옭아매는 우리와 비교할 때, 국익과 민족을 위해 자신감 있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중국이 가끔 부럽긴 하다.
(임상훈 교수는 현재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역사문화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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