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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의 섬' 제주의 비법이 궁금하신가요?

[박진현의 제주살이]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텃밭 가꾸기

제주도에 와서 평생 처음 텃밭을 했다. 지난해 봄, '한살림'에서 텃밭 참가자를 모집했다. 한살림 생산자가 직접 와서 텃밭 초보자에게 친환경 유기농법을 실습위주로 가르쳐 준다고 했다. 나도 거기에 참여했다. 제주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교육을 하지만, 주로 이론 교육이다 보니 농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듣고도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살림'은 생산자가 실습 위주로 친환경유기농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딱 이거야!'라면서 참가했다.

직접 해보니, 친환경 유기농법은 땅을 오염시키는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것은 물론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옛날 농부들처럼 골갱이(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고 부른다) 하나 달랑 들고 검질(제주말로 잡초)을 매는, 몸으로 때우는 '전통' 농사였다.

자급자족(自給自足)의 로망을 안고 텃밭에 뛰어들지만, 로망과 현실은 언제나 다른 법. 사계절이 지나 다시 봄이 왔다. 지난해 봄, 텃밭을 시작한 사람 중 올해까지 '한살림' 텃밭을 하는 사람은 달랑 나 혼자뿐이다. 물론 어떤 사람은 '한살림' 텃밭까지 합쳐 공동 텃밭 가꾸기 4년의 수련 끝에 독립한 경우도 있다. 직업상 일정한 시간에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아 끝까지 함께하지 못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농작물을 키우러 온 많은 사람들은 검질(잡초)을 뽑다 뽑다, 자기가 텃밭에서 뽑혔다. 거짓말 좀 보태면, 한쪽 이랑에서 검질(잡초)을 매고 나면 다른 쪽에서는 이미 검질이 자라고 있었다.

시골에서 농약을 쓰지 않고 텃밭을 하면, 지나가던 농부가 곳곳에 자란 검질을 보고 매우 안타까워하면서 제초제를 쓱쓱 뿌리고 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는 '한살림' 매장 옆 공터에서 도시 텃밭을 하다 보니, 무성한 검질을 안타까워하는 농부가 없었는지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 지난 3월 중순, 텃밭 참가자들과 이랑을 만드는 모습. ⓒ박진현

골갱이만으로는 '검질과의 전쟁'이 만만치 않다 보니, 멀칭(잡초가 자라지 못하도록 땅을 덮어주는 것)을 한다. 농사에서 비닐 멀칭은 거의 필수다. 비닐 멀칭은 유기농으로 농사짓는 밭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태풍이라도 온 다음 날에는 제주 시골 곳곳이 검은 폐비닐로 몸살을 앓는다. 우리는 석유로 만든 비닐 대신, 박스종이나 신문지로 땅을 덮거나 밭에서 맨 검질 또는 수확 후 남은 부산물로 땅을 덮었다. 농작물을 이용한 방법도 썼다. 예를 들어 밀을 뿌려 검질이 잘 못 자라게 하다가, 다른 작물을 심기 전에 갈아엎어 퇴비와 제초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방법들은 모두 선구적인 '한살림' 생산자들이나 유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이 해 왔다. '한살림' 제주 텃밭 선생님인 오연숙 씨는 본인의 농장인 '자연친구 생태텃밭'에서 비닐을 쓰지 않는 소박하고 지속가능한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2009년 '한살림'에서는 비닐 멀칭을 하지 않고 기른 호박고구마가 소비자에게 첫선을 보이기도 했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의 최영만 생산자가 길러 낸 고구마였다. 애초부터 비닐을 쓰지 않는 농부도 있었다. 전북 부안 '산들바다 공동체'의 조찬준 씨는 20년 넘게 땅에 비닐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텃밭을 하면 사계절 내내 쌈채소와 생야채를 밥상에 올릴 수 있다. 온화한 날씨 때문이다. 나도 이번 겨울에 텃밭을 하면서 갖가지 쌈채소와 브로콜리, 콜라비, 시금치, 월동배추, 월동무 등을 수확해서 먹었다. 육지에서는 겨울에는 추운 날씨 때문에 쌈채소와 야채를 재배할 수 없다. 현동관 제주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사무국장은 "제주에서는 몸만 부지런하면 사시사철 텃밭을 일굴 수 있기 때문에 자기 먹을 것은 자기가 키워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에서는 텃밭을 '우영팟'이라고 부른다. 땅에 돌이 많다 보니, 흙을 돋아서 텃밭을 일궜다. 집 가장 안쪽에 텃밭을 만든다. 그만큼 제주사람에게는 텃밭이 중요했다. 우영팟의 채소는 가족 이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손대지 못했다. 제주에서는 우영팟에서 딴 채소를 사계절 내내 밥상에 올렸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존연구원장은 "고대 이집트에서 귀족들이 채소에 소금을 쳐서 먹는 게 샐러드의 기원이 됐다. 서양 사람들도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샐러드를 먹는 게 얼마 되지 않았다"며 "수백 년 전부터 제주도 사람들은 끼니마다 생채소를 먹었다. 제주도 음식문화에서 자랑만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쌀이 귀했던 제주에서는 잡곡에 생채소와 된장으로 구성한 투박한 식단을 즐겼다. 건강식이었다. 그래서 제주는 '장수의 섬'이었다.

▲ 지난해 여름, 아들 윤슬이가 가지와 애호박을 따고 즐거워하는 모습. ⓒ박진현

올해 6살이 된 아들은 지난해부터 어린이집이 끝나기가 무섭게 텃밭에 가자고 졸랐다. 텃밭에 가면 가지, 오이, 토마토 같은 야채뿐만 아니라 수박, 참외와 같은 과일도 볼 수 있다. 지난 봄, 텃밭에 심은 옥수수는 대가 굵었고 알이 실하게 열렸다. 아들은 따는 재미, 보는 재미로 텃밭에 가는 것을 '키즈놀이터'보다 더 즐겼다. 나중에는 아예 어린이집 차가 텃밭으로 바로 왔다. 아들은 야채나 과일을 먹으면서 씨를 보면 꼭 심자고 했다.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이라고 신나게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 엄마가 "그 씨는 개량종이라서 심더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말했다. 물론 아내는 아이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가 내 뒷머리를 세게 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종자회사가 만든 개량종 종가 'F1'은 씨앗을 받아서 키워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오연숙 씨는 "농부들이 씨앗을 받아서 작물을 키우면 돈벌이가 안 되니까 채종을 할 수 없도록 개량이 되어서 나온다"며 "병충해에 약하고 지역에 토착화된 종자가 아니기 때문에 화학비료와 농약이 있어야만 잘 자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우리나라 종자회사의 70%가 다국적 기업에 넘어간 상태. 농민들은 다국적 종자회사에 비싼 로얄티를 지불하며 씨앗을 심고 있다. '농사 주권'이 없어져 버린 시대, 다국적 종자회사는 거대자본을 기반으로 종자와 농약, 화학비료를 하나로 묶어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고 있다.

지난해 제주 한살림 생산자들이 정성 들여 키운 모종을 흔쾌히 텃밭 모임에 흔쾌히 줬다. 그리고 모종과 오연숙 씨가 구해온 제주 토종 씨앗을 텃밭에 심었다. 가지, 호박, 고추, 오이, 옥수수, 수박, 참외, 시금치 등. 크기는 작고 모양은 울퉁불퉁했지만, 아주 맛있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텃밭 농사라면, 씨앗도 당연히 토종이 어울린다. 이 당연한 깨우침을 얻는데, 부끄럽지만 한 해가 걸렸다.

얼마 전 '한살림' 텃밭 3기를 시작했다. 18명의 도시 농부가 모였다. 혼자서 텃밭을 3년 동안 해온 고수도 있었다. 이들과 함께 모든 작물을 당장 토종씨앗으로 심을 수는 없겠지만 점차 넓혀 볼 생각이다.

소농이 중심이 된 유기농과 토종씨앗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는 안전한 먹을거리에만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돈벌이가 중심이 된 산업농을 폐지하지 않으면, 농업의 미래와 및류의 미래는 없다'고 경고하고 있다. 단일작물을 대규모로 재배하는 산업농법은 병충해와 자연재해 등에 취약하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과도하게 사용하며, 화석연료에도 크게 의존한다. 에너지 고갈, 지구온난화, 물 부족, 토양 및 해양오염, 유전자 교란도 대규모 산업농과 무관하지 않다. 화석연료의 고갈에 대비하고,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해서 농업과 밥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 텃밭 참가자가 제주여성농민회에 가서 직접 토종 씨앗을 받아 왔다. ⓒ박진현

종자회사 대부분이 다국적 기업에 넘어가고 정부가 토종씨앗 보전에 무관심한 사이, 대물림해왔던 토종 씨앗은 찾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토종씨앗을 되찾고자 하는 노력이 전국 곳곳에서 벌어졌다. '제주도 여성농민회'는 농부의 집을 직접 방문해 남아 있는 토종씨앗을 찾고 기록했다. 그 기록이 <제주도 우영엔 토종이 자란다>이다. 또 '제주씨앗도서관'도 있다. 물리적 공간이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 온라인 공간의 모임이다. 매월 봄이면 토종씨앗 나눔을 하고 있다. 텃밭 선생님인 오연숙 씨는 토종 옥수수를 복원해 올해부터 종자를 퍼뜨리기 위해 나눔 판매도 한다. 한살림 생산자인 홍진희 씨는 토종씨앗으로 키운 물외와 재래종파를 '한살림'에 공급하고 있다. 소비자의 선택이 토종씨앗을 살릴 수 있다.

봄이 제일 먼저 오는 제주에서 올해도 좋은 사람들과 텃밭을 시작했다. 텃밭을 하면서 오는 즐거움은 건강한 먹거리에만 있지 않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땀 흘리는 관계 속에서 오는 즐거움도 큰 기쁨이다. 텃밭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을 느낀다. 소위 '텃밭 힐링'이다. 텃밭 참가자 중에 한 분은 외동딸이 대학을 가 제주를 떠난데다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우울감에 시달렸지만, 텃밭을 하면서 치유가 됐다고 한다.

텃밭을 하면서 드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이 텃밭을 많이 하면 할수록 농부들이 농산물을 팔아 얻는 수익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텃밭 선생님께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저는 오히려 농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많이 생겨 우리 농산물 소비를 더 많이 할 것이라고 본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마트에 가서 외국 농산물을 샀다면, 이렇게 직접 농사를 해본 사람은 '푸드 마일리지'를 생각하고 '로컬 푸드'를 떠올리며, 우리 농산물을 구입할 것이다. '살림의 농사'를 짓는 농부와 손잡고 상생을 길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 우리 올봄은 토종 씨앗으로 텃밭 가꾸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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