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아빠는 이제 집에서 출퇴근 한다. 전에는 직장 근처에 방을 따로 얻어 지냈었다. 출퇴근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긴 탓이다.
제때 퇴근해도, 집에 오면 한밤중이다. 그러나 정시 퇴근하는 날이 어디 흔한가. 일에 지치고, 출퇴근길에 진을 빼고. 그래도 집에 들어오는 까닭은, 아이의 빈자리 때문이다. 가족을 잃고 나니 가족의 소중함이 더 사무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중동 일자리'를 이야기한다. 국내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라는 주문이다. 굳이 '중동'을 언급하는 건, 과거 고도성장기의 기억을 불러내려는 의도일 게다. 아울러 젊은이들이 좀 거친 일자리에도 관심을 가지라는 뜻도 있으리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직난을 겪는 젊은이들에게 '눈을 낮추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일 터다. 이에 대해선 이미 다양한 비판이 나왔다.
중동 파견 노동자의 가족은 어떻게 지냈나
다만 좀 다른 지적을 하고 싶다. '중동 일자리'에 대한 강조가 우려스러운 건, 그게 매력 없는 일자리여서만이 아니다. 과거 '중동 건설 붐' 당시, 숱한 아이들이 아빠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자랐다. 그 기간이 길다보니, 가정이 깨지는 일도 있었다. 일터와 집의 거리가 너무 멀어 생긴 일이다. 급여가 높고 근무 여건이 좋아도, 가정을 꾸리기 어렵다면, 좋은 일자리는 아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나온 게 지난 대선이었다. '가장의 노동'을 위한 '가족의 희생'이 당연했던 시절에 대한 반성이 담긴 구호이기도 했다. 희생을 전제로 작동하는 체제는 지속할 수 없다. '가족의 희생'을 전제로 한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일과 가정의 양립은 지속 가능한 사회의 필수 요건이다.
'중동 일자리'를 거듭 강조하는 박 대통령이 과거 고도성장기 중동 파견 노동자 가족이 겪었던 사연에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다.
'따뜻한 가정'을 강조하는 담론은 보통 우파의 몫이다. 그래서 진보, 좌파 쪽에선 마뜩찮아 한다. '복지 안전망을 마련할 책임을 사회 대신 가정에 떠넘긴다', '남녀 부모로 구성돼 있고 남성 가장이 주도하는 가정만 정상으로 취급한다' 등의 비판이다.
박 대통령이 이런 좌파적 시각까지 아우르길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따뜻한 가정'을 꾸리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보통 사람들의 소망은 챙겼으면 한다. '중동 취업'에 대한 독려에선 이런 소망에 대한 고려가 읽히지 않는다. 그게 아쉽다.
노동의 '지산지소(地産地消)'
요즘은 대형 마트에서도 '로컬 푸드'를 판매한다. 지역에서 생산한 걸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地産地消)' 개념이 꼭 식품에만 적용돼야 할 이유는 없다. 일자리 역시 지역에서 생산되는 게 좋다. 일터와 집이 가깝고, 이웃과 자연스레 일터 고민을 나누는 삶. 그게 바로 공동체 아닌가. 세월호 참사로 아들, 딸을 잃은 부모들이 요즘 하는 고민과도 닿아 있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노동의 '지산지소' 개념이 자리 잡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실 역대 정부가 했던 고민들이다. 지역의 인재가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고 지역에 취업해서 지역에서 소비하며 사는 것. 지방 분권이라고도 했고, 수도권 집중 방지라고도 했다. 이런 시도 가운데 성공적인 정책은 계승하고, 실패한 정책은 교정하면 된다. 박 대통령 역시 소중한 가족을 잃고 외롭게 지낸 경험이 있다. 외면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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