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정기국회는 방산비리 폭로 경연장으로 불릴 만큼, 충격적이고 어이없는 각종 비리가 줄줄이 나왔다. 방산비리를 4대강 비리, 자원외교 비리와 합쳐 '사자방'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그러자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 예산 연설에서 방산비리를 "이적 행위"로 규정하고 "일벌백계"를 다짐했다.
대통령의 연설 직후에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합동수사단이 발족됐다. 검찰과 경찰, 국방부,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사정업무와 관련된 정부기관이 총동원되었고, 그 규모도 105명에 이른다. 얼핏 방산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정권의 의지가 읽히지만, 깃털만 건들고 끝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군피아와 업체 관계자 몇 명을 구속하는 등 보여주기식 수사로 끝나고, 정작 소요제기와 같은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건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산비리 백태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방산비리를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공무원과 군인의 개인 비리이다. 이들이 방산업체와 유착돼 군사기밀 유출, 문서 위조, 뇌물 수수 등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군의 통영함이었다.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구조함이라는 통영함에는 1600억 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정작 세월호 침몰 때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해 국민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문제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통영함 도입 과정에서 공문서를 위변조하고 기밀이 유출되었으며 2억 원에 불과한 '저성능' 음파탐지기가 41억 원에 달하는 '고성능' 탐지기로 둔갑해 납품되었다. 이러한 비리에 5명의 전·현직 관리들이 연루된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쯤 되면 방산비리 종합세트라고 할 법하다.
둘째는 방산업체 및 중개업체의 비리이다. 방산업체가 시험성적표를 위변조해 불량 무기나 부품을 납품하거나 원가를 부풀려 부당 이익을 취하는 방식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2006년 방위사업청이 개청한 이후 원가부정으로 모두 50개 업체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또한 2014년 한해에만도 241개 업체가 시험성적서 위조로 적발됐다. 방산업체 전반에 독버섯처럼 비리 관행이 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가 아닐 수 없다.
무기중개업체의 비리도 만만치 않다. 최근 구속된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이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한국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를 터키 무기업체 하벨산에서 도입하는 사업을 중개했다. 이 과정에서 573억 원 규모의 사업비를 1078억 원으로 부풀려 연구개발비 명목으로 505억 원을 가로챈 것으로 합수단은 보고 있다. 무기 단가를 부풀려 일종의 리베이트를 조성한 셈인데, 이는 무기 사업 전반에 만연해 있다. 이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리베이트만 없애도 무기 구매 비용의 20%를 줄일 수 있다"고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셋째는 사업 관리 부실이다. 획득이 완료되어 실전 배치된 무기와 장비에 잦은 고장이 발생하거나 성능이 크게 미흡한 사례들이 연이어 보도되고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면 이렇다. 국방부는 K-21 수륙양용장갑차가 적의 전차뿐만 아니라 헬기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췄다고 자랑했다. 그런데 수중 기동훈련 상황에서 장갑차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바람에 병사가 익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파워팩(엔진과 변속기가 결합된 핵심 부품)이 군이 당초 요구했던 것보다 무거운 제품이 장착되면서 전방 부력이 부족하고, 파도막이 및 엔진실 배수펌프 기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군이 '명품 무기'라고 홍보한 K-11 복합소총도 연이은 폭발 사고로 전력화에 차질을 빚고 있다. 복합소총은 일반적인 소총에 더해 적군 인근 공중에서 터지는 20mm 폭발탄을 장착한 무기이다. 그런데 2010년에 이어 2014년에도 탄환이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해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렇듯 성능 부실로 사고가 발생해 병사 피해가 발생하면서 '아군 잡는 무기'라는 오명을 안게 됐다. 이 밖에도 장보고급 잠수함의 연료전지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되거나 광개토대왕급 한국형 구축함에 486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시스템이 다운되는 일도 있었다.
이처럼 최근 국회와 언론을 통해 확인된 방산 비리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군의 특수성을 앞세운 폐쇄성, 군사기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정보의 독점성, 군피아라고 불리는 전현직 일부 군인들의 불법적 행태, 방산업체 및 중계업체의 비리 등이 종합적으로 맞물린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비리는 부실한 무기획득체계에 있어서 '깃털'에 불과하다. 몸통은 바로 무기 소요제기 결정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요무기체계는 국내 생산보다는 해외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또 그 금액도 훨씬 많다.
북한 위협이라는 '전가의 보도'
한국군의 폐쇄성은 북한의 폐쇄성과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다. 북한 군사력의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 한국군의 마구잡이식 무기 도입의 근거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인 메커니즘은 이렇다. 한국군이나 미군이 북한의 특정 위협을 제기한다. 국방부가 발표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군 소식통'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흘리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언론이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하거나 소설을 가미한다. 가상의 북한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이 위협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 도입 요구가 커진다. 대표적인 예 몇 가지만 들어보자.
먼저 작년 봄 한국을 강타한 '무인기 파동'이다. 3월 말 들어 파주, 삼척, 백령도 등에서 정체불명의 무인기가 발견되면서 소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군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다가, 일부 언론이 호들갑을 떨면서 "심각한 위협"으로 둔갑됐다.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에도 불구하고 북한 무인기로 단정 짓고는 "북한이 무인기에 생화학무기를 장착해 공격해 온다면", "핵폭탄을 장착한다면"과 같은 종말론적 위협론이 판을 쳤다.
이 과정에 간첩증거 조작 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국가정보원이 깊숙이 개입했다. 그리고 남재준 당시 원장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면서 북한 무인기를 언급하며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또한 국방부는 북한 무인기에 대응한다는 이유로 이스라엘로부터 저고도 레이더를 도입하고 요격망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서해의 군사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10년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전이 발생하면서 한국군은 서해5도를 급격히 군사화하기 시작했다. 서해5도방어사령부를 창설하고는 각종 미사일, 자주포, 레이더, 항공 지원 전력을 대거 배치한 것이다. 고속함과 대잠수함 무기 체계도 대폭 증강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끔찍한 시나리오도 언급되었다. 북한 특수부대가 공기부양정을 이용해 서해5도를 기습 점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미 양국이 실시간으로 북한군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군이 공기부양정을 타고 대거 침투할 수 있겠느냐는 반론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리적인 문제제기는 '북방한계선(NLL)을 사수하라'는 구호에 묻혀버렸다.
패트리엇 도입 사업도 문제투성이이다. 한국군은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이 증대되었다는 이유로 패트리엇 시리즈를 도입하고 있다. 처음에는 구형 패트리엇인 PAC-2였다. 그러면서 1991년 걸프전 때 미사일 요격율이 70% 안팎에 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상당수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스커드 잡는 미사일'이라는 애칭을 붙여주었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달랐다. 미국 펜타곤은 요격율이 높았다고 주장했지만, 정작 이 시스템이 배치된 이스라엘 국방부는 요격율이 제로에 가까웠다고 실토했다. 미국 의회 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국방부는 이러한 지적을 '근거 없는 것'으로 치부하고선 PAC-2 도입을 강행했다. 그리고선 PAC-2로는 부족하다며 최신형인 PAC-3 구매를 결정했다. 구매 결정이 이뤄지자 이번에는 이것으로도 부족하다며 패트리엇보다 요격 고도가 높은 사드(THAAD)와 스탄다드 미사일-3(SM-3) 도입 필요성을 언론에 흘리고 있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보유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말이다.
정권의 정치적 고려가 무기 획득을 오염시킨 사례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스텔스 전투기인 F-35 도입 결정이 대표적이다. 당초 이 전투기는 너무 고가여서 입찰 단계에서 탈락했었다. 그런데 2013년 9월 갑자기 되살아났다. 박근혜 정부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재연기를 미국에 타진하면서 이뤄진 일이다. 앞서 언급한 PAC-3 도입 결정도 2014년 10월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서 전작권 환수를 사실상 무기한 연기하기로 합의한 직후에 나왔다. 이 과정에서 비리가 명백히 드러난 것은 아직 없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무기 도입가만도 10조 원에 육박한다. 비싼 무기일수록 운영유지비도 많이 들어간다. 전작권 환수 재연기라는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렇게 국민 혈세가 펑펑 쓰여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다.
대형 무기 도입은 주로 해외, 특히 미국 무기 도입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외 업체와 국내 군피아의 결탁이 무기 획득을 오염시킨다. 해외 업체는 국내 지사를 두거나 에이전트를 고용하는데, 군 고위장교 출신이 주된 대상이다. 예비역 장성들이 군사 기밀에 비교적 밝고, 대개 후배들인 현직 장교들 및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들과도 친분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노린 것이다.
이들은 무기 소요제기 과정부터 정책 결정에 관여하려고 한다. 문민 권력이라면 이들의 영향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지만, 주요 무기 체계 도입 결정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각 군 본부 등 '군사 권력'에서 결정된다. 이 폐해를 줄이기 위해 노무현 정부 때 만들어진 방위사업청은 결정 주체라기보다는 구매나 계약을 담당하는 하위 기관으로 전락해버렸다. 정치권력의 묵인 내지 비호 아래, '해외 군산복합체-군 고위장교 출신의 군피아-현존하는 군사 권력' 사이에 유무형의 유착관계가 형성되면서 대형 무기 도입이 이뤄지는 것이다. 북한 위협을 꽃놀이패로 이용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군은 북한군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북한 급변사태 발생 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는 군사 계획을 설명할 때에는 북한군을 '오합지졸'로 묘사한다. 북한군의 저항 능력이 별로 없는 것처럼 말하면서 흡수통일 전략을 합리화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도 꼼수가 숨어 있다. 한국군 주도로 흡수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지상군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마련된 '국방개혁 2020'에는 2020년까지 군 병력을 50만으로 줄인다는 계획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흡수통일을 추구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군복무기간을 18개월로 단축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없던 일이 되었다. 병력이 줄어들면 장교뿐만 아니라 각종 무기와 장비와 부대도 줄어들게 된다. 이를 우려한 육군 기득권 세력이 병력 감축을 저지한 것이다.
반대로 무기 구매를 할 때에는 북한군이 신출귀몰한 군대로 바뀌고 북한의 무기 체계도 세계 최강인 것처럼 묘사된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으로 결론지을 때, 북한의 두 가지 새로운 무기가 등장했다. 하나는 연어급 잠수함이고, 또 하나는 여기에 장착되었다는 중어뢰였다. 그러나 북한 해군이 이러한 능력을 갖고 있다는 근거는 아무것도 제시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군은 이를 이유로 대잠수함 능력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2014년 국방백서>에도 북한군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력 증강을 이뤄낸 것으로 기술되었다. 그런데 군 스스로 북한의 군사비는 남한의 3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북한에 '알라딘의 램프'가 있는 것도 아닐진대, 이 정도의 군사비로 엄청난 군사력 건설이 가능한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책의 본말이 전도된다는 점에 있다. 군이 국내외 방산업체와 결탁해 북한 위협을 근거로 무기 구매에 혈안이 되면,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 위협을 관리하고 해결하겠다는 인식과 정책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이를 제어하고 견제하고 통제해야 할 문민 권력엔 의지도 능력도 없다. 서해의 군사화는 'NLL 파동'까지 일으키면서 서해평화협력지대 창설을 백지화한 것과 동시에 이뤄졌다. 한국이 미·일 동맹의 MD에 편입되는 과정도 6자회담 등 북핵 협상을 중단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그 결과 한반도 군비경쟁은 격화되고 국내외 무기 업체 및 이와 결탁된 군피아의 호주머니만 두둑해지고 있다. 그 대가는 평화의 희생이고 국민 혈세의 낭비이다.
* 위 글은 <황해문화> 2015년 봄호에 기고한 글을 일부 발췌·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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