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재와 한나라당 주변에서는 '7일 한나라당 탈당, 8일 출마선언' 설이 상당히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주 초 만해도 "명확한 것은 없다. 고민 중이다" 수준에 불과했지만 불과 3, 4일 만에 상황이 급속도로 진척된 것.
상황이 이처럼 급변한데는 언론사의 여론조사가 단단히 한 몫 했다. 한 라디오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 13% 대를 기록한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은 이어진 신문사와 방송사의 여론조사에서 15%, 20% 대를 차례로 돌파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 마저도 따돌리는 기염을 토했다.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에 이 전 총재 측은 크게 고무됐고, 당황한 한나라당 측의 '대선 차떼기' 압박 등도 오히려 결심을 굳히는데 보탬이 됐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출마선언을 통해 이 전 총재가 대선판에 나선다고 해도 그의 앞에는 몇 가지 갈림길이 놓여있다. 또한 현재와 같은 파죽지세가 실제 투표로 이어지느냐 여부는 '또 다른 이야기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물론 현재의 분위기와 달리 전격적인 불출마 선언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돌아온 이회창'의 선택지에 따라 대선구도는 물론이고 정치지형 자체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거론되는 몇가지 시나리오를 짚어본다.
#시나리오 1. 이명박-이회창 단일화
'보수진영의 분열, 제2의 이인제'라는 비판을 가장 뼈아파하는 이 전 총재 측은 자신들의 출마가 궁극적으로 정권교체에 보탬이 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검증공세로 타격을 받을 경우부터 시작해 심지어 테러 가능성 까지 제기하고 있는 일부 강경 보수 세력들은 '스페어 후보론'을 주장하기도 한다.
이같은 주장들은 결국 후보 단일화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명박 캠프의 좌장 격인 박희태 의원조차도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전 총재 출마 시) 단일화를 위해서 저희들이 총력을 다해서 국민들이 보더라도 '참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그런 모습이 보이도록 하겠다"면서 "막판까지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명박 후보 측에서도 "이 전 총재가 완주야 하겠냐"며 희망 섞인 관측이 높은 편이다. 막판에 이명박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사퇴하지 않겠냐는 것.
하지만 단일화가 이뤄질 때 이뤄지더라도 이 전 총재가 출마선언을 강행하게 되면 당분간 그 이야기가 쑥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누가 스페어 후보한테 표를 던지겠냐'는 현실론 때문이다. 단일화에 목 매고 있는 여권에서조차 저마다 '나를 중심으로 단일화'를 외치고 있는 마당에 '어차피 이명박 후보한테 흡수 될 것'이라는 이미지를 시급히 탈피하는 것만이 이 전 총재의 파괴력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길이라는 이야기다.
이로 인해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결심할 경우, 이명박 후보의 '이념적 불분명성'을 지적하며 예각을 그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많다.
#시나리오 2. 지분협상-중도포기
"단일화까지도 못가고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이 전 총재의 대언론 창구인 이흥주 특보는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도 서너 차례 했고, 검찰에 자진 출두해서 강도 높은 조사도 자청해 받은 상황에서 그게 무슨 이회창의 걸림돌이고 족쇄냐.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대선 차떼기'는 가장 큰 족쇄다.
정치 보복 논란, 동정여론 등으로 인해 사실상 '사면 아닌 사면'을 받은 상황일 뿐 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이명박 후보 측은 자신들의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이 문제를 재점화시킬 태세다. 만약 대선자금 잔금 문제로까지 확산되면 이 전 총재가 받게 될 타격은 예측키도 힘들다.
또한 최근 이 전 총재가 기세를 높이는 배경에는 자체동력 뿐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의 침묵이 큰 몫을 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명박 후보가 박 전 대표와 전격적 관계 개선에 성공할 경우 이 전 총재의 공간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박 전 대표 진영의 좌장 격인 김무성 최고위원인 이날 라디오 방송에서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충청권, 보수층, 노년층에 소구력이 높은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서 이 전 총재를 비난하고 이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경우 이 전 총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그리 많지 않다. 이회창 지지층과 박근혜 지지층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에 박근혜-이회창 대립 구도는 이 전 총재로선 치명적이다.
굳이 드러난 대립이 아니어도 박 전 대표가 '이회창 출마' 자체에 대해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경우에도 원외 인사, 노년층, 극우적 성격의 보수 진영 등만 가동해 이 전 총재가 대선을 독자적으로 완주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명박-이회창 갈등 국면에서 상종가를 치고 있는 박 전 대표가 섣불리 어느 쪽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많지 않다. 오히려 박 전 대표는 양쪽의 협상을 주도하며 지분을 극대화시키고 대선 이후의 당 장악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키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로 인해 박 전 대표를 중심에 두고 이회창, 이명박 진영 사이에는 부단한 지분협상이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 협상의 성패 여부가 이회창의 대선 완주냐 중도 포기냐를 결정할 것이라는 얘기다.
#시나리오 3. 독자완주-선명보수당 건설
익명을 요구한 이 전 총재의 한 측근은 <평화방송>을 통해 "이 전 총재는 기존의 깨끗한 정당을 흡수해 출마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기존의 국민중심당을 흡수해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후보를 교체하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이 방안이 현실적으로 유력하지 않겠나"고 내다봤다.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도 이날 국회 기자실에 나와 박근혜 대표, 고 건 전 총리와 더불어 이 전 총재를 호명했다. 그는 "도둑맞은 10년 좌파무능정권의 확실한 종식과 법과 원칙이 살아 숨 쉬는 부강한 대한민국을 염원하는 용기와 소신과 의지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라고 극찬하며 "대의의 큰 정치에 함께 할 것을 간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을 통해 독자생존의 기반을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총선에서 충청권 맹주 자리를 확인하고 싶어하는 국민중심당과 마땅한 조직이 없는 이 전 총재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잘 알려진 바대로 이 전 총재의 고향도 충남 예산이다.
이들이 손을 잡을 경우 완주의 동력은 충분하고 '이회창 국민중심당'은 총선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가 선점하고 있는 '노무현 심판론'에 힘을 보태기보다 '원조 보수'를 자임하며 이 후보의 실용적 면모를 공격하고 나서는 것이 오히려 더 짭짤할 수 있다.
이는 대선 패배 이후 점점 우향 우 하고 있는 이 전 총재 본인의 이념적 좌표와도 일치하는 행보다. 뿐만 아니라 '1등 후보를 공격하라'는 것은 선거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물론 이는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경우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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