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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윤석민'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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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윤석민'은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다

[베이스볼 Lab.] 역전패 막자고 리드를 포기하나?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서 더 ‘공평한’ 종목이다.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 하더라도 타순이 돌아오지 않고선 타석에 들어설 수 없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잘 던지는 투수라도 혼자 모든 이닝을 소화할 수는 없다. 이는 다른 종목과 야구가 차별화되는 부분으로 농구에서는 에이스가 4쿼터 중요한 상황 내내 혼자서만 계속 슛을 던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으며, 배구는 아예 ‘몰빵배구’라는 용어가 있을 정도다. 더 잘하는 선수가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종목을 불문하고 팀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규정상 ‘몰빵’이 쉽지 않은 야구는 다른 종목에 비해 한 선수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영웅적인 면이 나오기가 더 힘들다.

그나마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투수 운용이다. 잘 던지는 투수가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마운드에 올라있어야 팀의 실점이 줄어들고 승리할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투수진을 운영하는 것이 팀 입장에선 당연히 더 좋은 일이다. 문제는 중력만큼이나 당연한 이 법칙을 많은 사람들이 종종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팀이 가장 잘 던지는 투수를 잠깐 동안 마운드에 세우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심지어 그 투수가 등판할 기회를 최소화하려고 든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에서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 리그에서 가장 몸값 비싼 투수를 선발이 아닌 마무리로 기용하려고 한다는 어이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선발투수와 불펜투수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마운드에 올라있는지는 굳이 기록을 찾아보지 않더라도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다. 2014년 KBO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선발등판한 밴헤켄(넥센)은 31경기에서 187이닝을 던졌다. 반면 같은 시즌 최다경기(75경기)에 구원으로 등판한 진해수(SK)는 49이닝을 투구하는 데 그쳤다. 10세이브 이상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던진 손승락(넥센)의 투구이닝도 62.1이닝으로 밴헤켄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최고 연봉을 받는 ‘90억짜리 팔’ 윤석민을 마무리투수로 기용하는 건, 윤석민이 마운드에 있는 시간을 선발일 때에 비해 1/3 내지는 1/4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팀 사정을 이야기한다. KIA타이거즈가 선발진에 비해 불펜이 부족한 만큼 어쩔 수 없다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우리에게도 친숙한 미 프로야구 팀 LA 다저스의 가장 큰 불안요소는 불펜이다. 안 그래도 약한 불펜에 특급 마무리 켄리 얀센마저 발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며 언제 복귀할지 기약이 없는 상황. 팀내에 얀센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도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ESPN 선정 리그 2위 선발투수진에서 한 명을 빼서 마무리투수로 쓰자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칼럼니스트나 기자가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 류현진 중 하나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다시는 누구도 그의 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 한국에서도 야구는 여전히 똑같은 야구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헛소리로 여겨질 에이스의 마무리 기용이 국내에서는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건 코미디 같은 일이다.

사실 팀 사정을 고려한다면 KIA는 에이스급의 투수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할 이유가 전혀 없는 팀이다. 지난해 KIA 타이거즈는 0.422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9개 팀 중 8위를 차지했다. 7위 롯데와 4.5게임차, 9위 한화와는 4게임 차로 꼴찌를 면한 게 다행인 시즌을 보냈다. 그나마 야수 중 가장 높은 생산력을 보여줬던 안치홍(WAR 3.5)은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곳으로 떠났다. 현실적으로 올해에도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려볼만한 전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리빌딩팀에 수준급 마무리는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다. 있어 봐야 어차피 나올 기회가 드물다. 윤석민을 마무리로 기용한다면 머지않아 ‘90억짜리 벤치 장식품’이라는 놀림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다. 그나마 벤치의 장식품이라도 된다면 이는 최악의 수는 아니다. 멀티이닝 소화가 되는 투수라고 ‘중무리(중간계투 겸 마무리)’로 기용하는 경우가 나온다면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서너 경기 정도 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하위권 팀이 3~4승 정도 더 따내는 게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게다가 윤석민은 금강불괴가 아니다. 이미 여러 차례 부상을 겪었던 윤석민에게 무리한 기용이 가져올 결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길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이기고 싶은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역전패를 반기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역전패가 두렵다고 더 중요한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역전패를 당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아예 처음부터 리드를 잡지 않는 것이다. 세상에 역전패가 싫다고 이런 해결책을 택하는 바보가 있을까? 있을지도 모른다. 에이스를 마무리투수로 기용한다면, 역전패를 당하지 않기 위해 처음부터 이길 기회를 줄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은 2015년이다. 팬들에게도 80년대 야구는 그만 볼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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