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 세미나에서 미국 국무부 웬디 셔먼 정무차관이 연설한 내용을 듣고 당혹감을 넘어 분노를 느낀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 연설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중일 역사 논쟁에 대한 미국의 외교정책을 완전히 뒤엎는 발언이기 때문이다. (☞연설 전문 보기)
미국의 정체성은 '독재에 맞서 싸운 나라'라는 자부심 위에 서 있다. 영국의 식민통치에 저항하여 세운 나라라는 자의식이 첫 번째이며, 파시즘 국가에 맞서 세계를 구했다는 것이 두 번째다. 그래서 한일 간 과거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미국 정부는 최소한 공식적으로 일본 편에 서지는 못했으며, 한국 정부를 지지했던 때도 많았다. '과거보다는 미래가 더 중요하다' 정도의 발언이야 있었지만, 반일 민족주의를 매개로 형성된 한중간 커넥션을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나름 조심스러운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 셔먼 정무차관은 지금까지의 금기를 정면으로 무시했다. 한일 과거사 논쟁 중 미국 정부가 가장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사안은 단연 위안부 문제다. 사건의 반인권적인 성격도 그렇지만 한국, 중국, 필리핀 등 아시아 여성뿐만 아니라 전쟁 포로였던 네덜란드 여군까지 위안부로 동원했던 사실이 드러나, 이미 세계적인 사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미국 상원위원들까지 이 문제를 위해 나섰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연설에서 셔먼은 위안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한국인들과 특별히 중국인들은 일본의 국방정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은 일본과 2차 세계대전 당시 소위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논쟁을 벌여왔다. 역사책의 내용이나 심지어는 바다의 이름(동해-일본해)에 대해서도 불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이것들은 모두 이해할만하지만 한편으로는 좀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오늘날 세계 안보, 번영, 평화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한 설계자라면 당연히 조화롭고 협력하는 동아시아를 그 청사진에 포함시키려고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교과서 갈등이나 심지어 동해-일본해 논쟁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하시킨 것이다. 이건 단순히 기존의 입장을 뒤집는 것을 넘어서 미국 사회 내에서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 만한 사건이다. 셔먼이 '학살과 국제 분쟁을 막기 위한 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이라고 평가했던 유엔조차 위안부를 '성노예'라고 규정해야 한다는 인권보고서까지 채택한 바 있다. 이걸 국가 사이의 여러 논쟁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해석한 것은 '인권'과 '반파시즘'의 기치 아래 구축해온 미국의 역사적 정통성과 상반된다.
셔먼의 발언에서 또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 앞뒤 맥락이다. 위에서 인용한, 아시아의 역사적 갈등에 대해 지적하는 부분 바로 앞에서 셔먼은 "이라크와 이란에서 일본군의 병참지원이 확대되어 왔고 (…) 이란 핵무기 협상 또한 일본의 큰 관심사이며 이 문제에 대해서 일본이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는 아베 일본 총리가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정상국가화'와 같은 맥락의 발언이며, 일본의 군사적 침략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 대한 사과조차 받지 못했던 한국과 중국의 입장에서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내용이다.
게다가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이후 셔먼은 한국과 중국의 정치가에 대비난을 공개적으로 언급한다.
"물론, 민족주의자들(미국 사회에서 nationalist란 매우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 단어임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은 여전히 침략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어디에서건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손쉽게 박수를 얻어낸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보가 아니라 정체를 가져올 뿐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국가의 민족주의가 동아시아 평화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셔먼의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애초에 한국과 중국의 대중들이 민족주의적 선동에 박수를 치게 된 원인은 첫째 일본의 침략이며, 둘째 소련과 중공을 견제하기 위해 피해 당사국(대한민국, 중화인민공화국, 중화민국) 뿐만 아니라 유엔조차 무시하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밀어붙여 일본의 침략행위에 면죄부를 준 미국의 오만이다.
게다가 9.11 이후, 자국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자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했던 것은 미국의 정치가들도 동일했다. 나아가 국제법적 논란이 있었음에도 현지의 타국 정부까지 무시한 채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뿐만 아니라 이를 국민적으로 자축할 만큼 '복수에 철저한'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반면 1947년 팔레스타인 강제 분할과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지금까지 자행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횡포가 이슬람인들의 분노의 원인이었으며, 중동의 평화를 위해선 이슬람에 대한 미국의 뿌리 깊은 반감을 먼저 반성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은 줄곧 무시되었다. 누가 미국에게 잊어야 할 과거와 잊을 수 없는 과거를 규정할 권리를 주었는가?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의 고통이 반드시 보상받아야만 하는 것이라면 위안부, 학도병, 731, 남경은 왜 잊혀야 하는가? 이는 탄압받은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는 부도덕한 언사다.
셔먼이 연설의 초반에서 "나의 아버지도 태평양전쟁 당시 과달카날 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워 부상을 당했으며 (…) 그때의 트라우마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라고 어처구니없이 피해자 연기한 것도, '과거를 잊고 미래를 지향하자'는 미국의 주장이 얼마나 얄팍한 자기 인식 속에서 나온 것인지 보여준다. 아무 이유 없이 학살당하고 유린당한 민간인의 고통과 전투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병사의 그것을 동일시하는 것은, 남경에서 학살된 중국인이나 아시아 각지에서 희생당한 위안부들뿐만 아니라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조차 욕되게 하는 일이다. 태평양전쟁 이후 60년이 지났음에도, 아니 아시아 진출 후 160년이 지났음에도 미국은 여전히 아시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증가하는 북핵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아시아 삼국이 갈등을 일으킬 경우 발생할 수밖에 없는 지구적 군사위기를 피하기 위해서 아시아의 민족주의가 적절히 '조절'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한·중·일·미가 협력해야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셔먼의 말도 옳다. 그러나 진정한 협력은 상대에 대한 성실한 이해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중 민족주의가 각국의 정치가들에 의해 악용되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민족적 경험, 즉 타민족(일본)에 의해 침략당하고 타민족(미국)에 의해 소외당한 경험이 국민들에게 깊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임을 셔먼은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한·중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아시아의 미래를 제창하는 아베 내각이 전후 일본에서 민족주의적인 성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내각이라는 역설도 셔먼은 외면하고 있다. 그 결과, 한·중의 정치가들이 반일 민족주의를 악용하고 있다는 미국 외교관의 발언 때문에 한·중의 반일 민족주의가 오히려 더 확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동북아시아 외교관계를 악화시키려는 모종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닌 바에야, 대북 압박에 역량을 집중시켜야 할 시기에 이 정도의 외교적 실수도 드물다고 하겠다. 미국이 제시한 '미래'는 아시아를 설득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것이 임기 종료를 앞둔 오바마의 초조함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이 '군사적 정상국가화'의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한 아베의 집요함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현재의 태도가 계속되는 한 아시아 3국의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임은 분명하다. 자국의 민족주의부터 자성할 수 있는 일본 사회의 성찰과 아시아 민족주의에 대한 미국 사회의 겸손한 경청이 필요한 때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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