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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오가피·홍삼·민들레…뭐가 제일 몸에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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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염소·오가피·홍삼·민들레…뭐가 제일 몸에 좋을까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건강식품 트렌드를 분석하다

"귀촌한 친구가 제가 맨날 골골하니까 염소를 달여서 보내서 왔는데 먹어도 될까요?"
"염소만 달이지는 않았을 테고, 뭘 넣고 달였다고 하세요?"
"그냥 몸에 좋다는 것들 넣고 달였다고 하는데, 모르겠어요."
"염소는 몸이 차고 마른 사람에게 좋은데, 환자분은 상초에 화가 있고 갱년기 증후도 있으니 맞지 않을듯 하고, 지난번 따님이 몸도 차고 생리통도 있다고 했으니 차라리 따님이 복용하는게 좋겠네요."

진료를 하다보면 건강을 위해서 뭘 먹으면 좋을지 묻는 분들이 자주 있습니다. 방송에 소개된 것이 자신에게도 맞는지 확인하는 분들이 대부분이고, 때론 나름대로 공부를 하셔서 약초들을 달여 먹고 있다고 하는 분들도 있지요. 내용을 들어보면 잘 맞는 경우도 있지만, 효능에 혹 하거나 잘 맞지 않는데도 드시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한의대에 다닐 때 처방 하나를 배우면 그것으로 모든 환자를 고칠 것 있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데, 환자분들도 방송이란 강력한 마력에 현혹되어 같은 실수를 범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전부터 먹으면 몸에 좋다는 것들은 참 많았습니다. 한참 유행할 때는 약재 시장에 품귀현상이 빚어진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열풍은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지고 또 다른 것이 유행하기를 반복합니다. 약초의 효능이 변한 것도 아니고 사람이 변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러한 현상은 처음에는 좋다고 하니까 너나 할 것 없이 사서 먹지만, 나중에는 별 효과를 못 본 대다수의 사람은 흥미를 잃고(때론 친구따라 복용했다가 몸을 상하기도 하지요), 자신에게 필요하고 효과를 본 일부만이 이용하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런데 유행하는 품목들을 가만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어서 꽤 흥미롭습니다.

먼저 몸에 좋다고 하면 뱀장어, 자라, 뱀, 가물치, 잉어, 오골계, 개 그리고 흑염소와 같은, 흔히 '스태미나 음식'으로 불리는 것들을 꼽던 때가 있었습니다. 대체로 먹을 것이 귀하고 단백질 섭취가 부족했던 시절에 필요한 것인데, 요즘에는 도리어 과도하고 불균형한 영양섭취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시들합니다. 하지만 육체노동이나 운동 때문에 체력의 소모가 절대적으로 많거나 부적절한 식이나 질병으로 몸이 많이 약해졌을 때 회복하는 단계에서는 일정부분 필요합니다.

한 때는 두충, 오가피와 같은 근골을 강화하는데 효과가 있는 약초가 유행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이것은 우리사회가 힘써 일하는 시대였다고 봅니다. 몸을 많이 써서 일하던 세대가 중년이후로 몸이 약해지고 관절에 무리가 오다 보니 이런 약초가 필요해진 것이지요.

다음으로 건강식품의 대명사가 된 홍삼이 있습니다. 홍삼은 말로는 인삼과 다르다고 하지만 삼을 찌고 말린 것이므로 그 본질은 삼과 같습니다. 삼은 기를 보하는 대표적인 약재인데, 많은 사람들이 홍삼을 먹는다는 것은 마케팅의 힘도 있겠지만 그만큼 현대인들이 기를 쓰고 살려고 애쓴다는 반증이 아닐까 합니다.

▲건강식품의 대명사가 된 홍삼은 기를 보하는 대표적인 약재입니다. ⓒ연합뉴스


민들레나 우엉을 끓여서 차처럼 드신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런 것들은 대체로 열을 내리고 혈액을 맑게 하고 소변을 통해 노폐물이 잘 빠져나가게 합니다. 말하자면 몸에 쌓인 독소의 배출을 돕는 것이지요. 환경도 독해지고 거기서 자란 것을 먹고 맘을 독하게 먹고 살다 보니 몸 속에 독소가 많이 쌓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약재들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울금이나 강황과 같이 뭉친 것을 풀고 기의 소통을 돕는 약재들은 운동부족이나 스트레스로 체액의 순환이 정체되는 사람들에게 유용한데, 요즘 이러한 약재가 부각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기 막힌 일들이 많이 발생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어떨까 생각해 보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몸과 마음에 가해지는 스트레스는 더욱 증가할 것 같습니다. 독하게 마음을 먹고 기를 쓰고 살아도 기가 막힌 일들을 자주 겪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불행하게도 지금 유행하는 식품들은 당분간 더 사랑받을 것입니다. 이와 함께 경쟁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정신적인 불안과 우울증상이 증가할 것이고, 고령화 현상이 심화되면서 퇴행성질환이나 암이나 치매와 같은 중증 질환도 더 문제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는 아마도 이런 부분에 효과가 있거나 예방하는데 좋은 것들이 유행하게 되겠지요.

이처럼 어떤 건강식품이 유행할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러한 유행은 우리가 사는 사회의 반영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만큼 애쓰고 살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조금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사는 세상이 조금만 더 느슨하고 느려진다면 어떨까 합니다. 조금 덜 일하고 조금 더 많이 놀고 생각하고 책 읽는 세상이 온다면 아마도 지금과 같은 건강식품의 유행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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