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야당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통령 후보는 과연 누가 될까요? 아마도 설날 연휴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앉아 나누었을 화젯거리였을 것입니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 후보감으로 여겨지는 유력 정치인의 보유 여부는 정당 선택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이 자산을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남부럽지 않게 갖고 있습니다. 설 연휴 직후인 오늘은 그런 이유들로 새정치민주연합 대권 주자들의 현재와 향후 과제 등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문재인 대표가 있습니다. 대표 취임 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취임 일성으로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논란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을 때에도, 이완구 총리 후보 인준 여부를 여론조사로 정하자 했다가 비판이 일자 바로 입장을 수정했을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보수 혹은 진보라는 진영의 관점과 논리를 떠나서, 또 사안 대응의 잘잘못을 떠나서 아주 오랫만에 국민의 눈과 귀를 끌어 당기는 제1야당 대표가 등장한 것입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는 60%가 훨씬 넘는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든 아니든 간에, 국민 다수가 제1야당의 대표로서 입장이 다른 세력과 사람들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행보라고 여긴 것입니다. 덩달아 20%대에 머물던 새정치민주연합의 지지율도 30%대로 올라섰습니다. 취임 직후인지라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일각에선 벌써 메시지의 일관성이 없다며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기도 합니다.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도 불사하겠다고 해놓고선 박정희 전 대통령 묘소 참배를 하는 것은 도대체 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1야당의 대표로서 정권교체의 길에 매진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관성의 결핍이라기보다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처지를 헤아리는 '광폭 행보'를 선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 결의에 바탕해 당내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의 삶을 살피고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면, 가슴 찢어지게 아프다 해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태생적 연원에 대한 공격과 시비를 꾹 참고 무시하면서 그리 한다면, '유러피안 드림'이라는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노선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못다 이룬 염원임을 알려낸다면, 그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문재인 자신의 이름으로 실현해내고자 한다는 의지를 확인시킨다면, 그래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민생정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면, 지난 대선 때 얻었던 48% 지지를 점차 회복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탄탄한 48%, 더 나아가 과반의 지지 확보도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다음으로 최근에 들어 부쩍 '뉴스메이커'가 된 박원순 서울 시장이 있습니다. 박 시장은 최근 서울역 고가 공원화, 시장 관저, 인권헌장, 세운상가 활성화 문제 등을 둘러싸고 논란을 일으키면서 시정 정책과 성과를 가시화하고 있습니다. 인지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표의 등장 이전까지는 차기 대권 주자 중에서 제일 높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물론 인지도 상승이 긍정적 평가와 지지로 이어질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합니다. 박 시장은 문재인 호의 순항 여부 그리고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정 사업들의 수행과 성공 여부에 따라 선두 자리를 탈환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면 서울 시장으로서 본격적인 대선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약점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전략적 의도 여부를 떠나 이래저래 하는 일마다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견제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서울시장→청계천 복원 업적→진취성과 능력 인정→대선 경쟁력 확보'라는 '이명박식 경로'를 넘어선 박원순 식 행보를 보여 낸다면, 박 시장은 이러 저러한 상황 변수와 견제를 제어하고 명실상부한 야권의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논란'을 얼마나 긍정적인 것으로 관리하느냐도 관건일 것입니다. 자칫하면 성과의 유무를 떠나 논란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높이면서 회피 심리가 퍼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대권 도전 의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숙제도 있습니다. 때를 잘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너무 재지 말고 '서울과 대한민국을 잇는 비전'을 갖고 호민관으로서 책임을 다하겠다며 문재인 대표 등과 선의의 경쟁에 나서는 것이 야권 전체는 물론, 한국 정치 전반에 가장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경쟁을 통해서만 보다 좋은 정책, 보다 좋은 인물, 보다 많은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로 안희정 충남 지사가 있습니다. 재선 이후 언론 노출 빈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지방선거 때 '충청인물론', '충청대망론'을 앞세워 호응을 얻었습니다. 대권 도전 의사를 숨기지 않아 왔던 것입니다. 안 지사는 문 대표에 앞서서 정적을 포용하는 행보를 이미 보여 왔던 터였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통해 그리 하였습니다. 안 지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 모두 우리가 짊어져야 할 것으로서 미래의 자산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해 왔습니다. 이를 필자는 대권을 꿈꾸는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태도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경제가 오랫동안 침체상태에 있고 빈부격차가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시대에 살고 있는 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방책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념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이들이 각기 제일 소중하게 여기는 상징과 그것을 지켜내려는 신념체계를 두고 싸우는 것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치는 현안을 해결하면서 미래를 열어야 하는 행위입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키 위한 삶의 필요성 때문에 좋은 가치이고 이념이며 체제이지, 엄존하는 과거사를 두고 서로의 믿음을 전파하고 관철시키기 위한 도구도 수단도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안 지사는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현명한'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고 있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앙정치에서 벗어나 도정을 이끌어야 하는 지자체장으로서의 한계, 그래서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스스로 말한 바와 같이 아직은 도민들이 체감할 만한 뚜렷한 업적을 쌓지도 못했습니다. 문 대표와 마찬가지로 '친노'라는 한계도 있습니다. 최근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기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한참 앞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 지사가 얻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어 국정을 잘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감입니다. 이를 어찌 극대화할 것인지가 관건인 것입니다.
필자가 볼 때, 안 지사는 충청 대망론을 자산으로 삼아 대한민국 전체의 관점에서 지역균형발전을 중심으로 비전과 정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청년빈곤과 실업을 해결할 일자리 창출을 지역균형발전과 연결시켜내야 합니다. 이 아젠다를 갖고 도정 네트워크도 꾸려야 합니다. 아칸소 주지사였던 클린턴이 전국 주지사회 의장을 지내고 교육개혁을 이끌면서 전국적 입지를 확보한 사례를 참조해야 합니다. 1992년 대선 당시 클린턴은 걸프전쟁 승리로 지지율이 급상승한 (아버지) 부시의 재선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대권 도전을 포기한 민주당 내 유력 대선 주자들의 '비겁함'이 내준 공간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안 지사에게는 그런 공간은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차원에서의 인지도와 리더십 없이는 대권 도전이 불가능하다는 것, 어떤 사례든 그 관점에서 정치적 행보를 기획하고 집행해야 할 것입니다. 설사 2017년 대선에 도전하지 않는다 해도 그러합니다.
끝으로 안철수 의원이 있습니다. 혹자는 안철수 의원은 이제 가망이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지금껏 해온 것을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남들 다 알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말만 해오지 않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력 대선 (예비) 후보는 물론, 제1야당 공동대표까지 지냈으면서도 아직 자신만의 정치적 언어와 행동 방식을 갖지 못한 정치인, 그저 299명의 국회의원 중 한 명일 따름 아니냐는 것입니다. 상당 부분 맞는 이야기입니다.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분명 안 의원은 '정치 천재'는 아닙니다. 대인관계는 물론, 지지층 간수에 능수능란하지도 않습니다. '안철수 현상'에 매력을 느껴 모여들었던 인재들도 대부분 곁을 떠났다고 합니다. 머리도 손도 발도 친구도 없는 형색인 것입니다.
이런 중에 눈길을 끄는 기사 하나를 봤습니다. '안철수 재기 가능성'을 타진하는 기사였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경제에 올인 '안철수의 재기'"입니다. 경향신문의 기사입니다. 왜 이런 기사가 지금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또 '재기' 운운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대선 후보가 되지 못한 것, 그리고 당 공동대표에서 물러난 것이 지고지난한 정치의 길에서 재기라는 말을 쓸 정도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저 정치하면서 겪는 경험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정치에 관한, 국민에 관한, 나라에 관한 사색의 깊이를 더할 경험 말입니다.
우리는 아주 쉽게 특정 정치인에 대한 자신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하여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런 언사들을 들으면 한 귀로 흘려보냅니다. 맞는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개인의 행위를 품에 안고 있으되, 개인의 힘만으로 치러낼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비아냥거렸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처럼 머리는 빌리면 됩니다. 아니 그렇게 누군가는 머리가 되고, 누군가는 손이 되고, 누군가는 발이 되어 서로 서로 힘을 빌려주고 빌리며 한 몸을 만들어 실천하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팀'이라고 하는 정당이 정치, 특히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주체의 기본 단위인 이유입니다. 즉 안 의원 개인의 한계는 있으되, 그것을 뛰어넘지 못할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안철수 현상을 일궈낸 새정치에 대한 열망이 그저 투표행위와 저명 인사들의 말과 기성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정도에 국한되었음을 떠올릴 때 특히 그러합니다. 기사에 나온 것처럼 재벌개혁과 같은 경제 민주화 문제를 중심에 두는 행보를 이어간다면, 그 과정에서 서민들의 한과 설움을 풀어줄 수 있는 정책들을 제시한다면, 그리고 그 정책을 지지하고 업그레이드 시켜줄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시민들의 대오를 꾸려낸다면, 그래서 국민들이 어제와 오늘이 아닌 '내일'을 꿈꿀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준다면, 그야말로 자신이 만든 정책연구집단 '내일'이 이름대로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면 안 의원은 허명이 아닌 실체를 지닌 대선 후보감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한나 아렌트는 정치를 '가면극 놀이'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든 간에 맡고 있는 '공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착함보다 유능함이, 신념윤리보다 책임윤리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물론 나쁜 일과 나쁜 역할을 잘 해내려고 해서는 대선 후보가 될 수 없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허위의식에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런 저런 해외 국가의 제도 몇 개 가지고 정치가 좋아지고, 삶이 좋아질 것처럼 이야기하는 허위의식, 즉 대한민국 실정에 맞지 않는 추상적 관념과 그것에 기댄 정책들의 껍데기를 벗겨내고 무엇이 보통사람들의 삶을 덜 힘들게 하거나 더 좋게 만들지 진솔하고 대담하게 보여줘야 합니다. 선거법 고쳐 비례대표 몇 석을 늘린다고 정치가 정책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는 것이 아니며, 정책에 밝은 진보정치인이 국회에 더 많이 들어간다고 정치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다수 국민이 할 때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설이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된 2015년 대한민국 정치, 아무쪼록 문재인, 박원순, 안희정, 안철수와 같은 분들이 대한민국 정치라는 가면극에서 맡은 배역을 잘 소화해내길 바랍니다. 건투와 건승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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