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설날에 먹은 따뜻한 떡국처럼 새해에는 남북관계도 따뜻해질 수 있을까? 한반도에도 동북아의 신냉전 기류를 녹일 수 있는 훈풍이 불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하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조만간 시작되는 한미군사훈련을 두고 남북관계가 얼어붙겠지만, 그 이후에는 변화가 올 수도 있다는 희망적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는 근거이다. 그래서 통일부 장관의 교체에 관심이 모아지기도 한다.
홍용표 장관 후보자는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일들을 할 수 있을까? 현 상황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남북관계의 경색이 오래 간 만큼 변화에 대한 기대도 크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 보다는 어떤 원칙에 따라서 어떠한 방향으로 하느냐가 더 본질적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반면교사다.
지난해 대북외교라인을 교체한 오바마 정부는 북과의 협상을 모색하는 듯이 보였다.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대화의 문을 항상 열어놓고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했다. 그 전에 시드니 사일러 6자회담 특사도 지난해 10월 "미국은 한 번도 회담 재개에 있어 비핵화를 반드시 선결조건으로 얘기한 적은 없다"며 대화 재개에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물론 지난해 11월에는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 국장이 억류 미국인 석방을 위해 직접 평양에 가서 당국자들과 직접 대면하기까지 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썸'을 탈 것만 같던 관계는 더 진전하지 못했다. 거기서부터 북미관계는 다시 추락을 시작했다. 이후 2월 초 북 국방위원회는 성명을 발표, "미국의 시대착오적인 대조선적대정책"운운하며 미국과는 "마주앉을 필요도, 상종할 용의도 없다"고 선언하기에 나섰다. 최근 보라는 듯이 군사훈련을 강행하고, 미 국회의사당을 격파하는 영상을 매체에 내보내는 것은 그 선언이 실행단계에 들어갔다는 시위이다.
그러면 왜 그렇게 됐을까? 무엇인가 될 듯하던 북·미 관계가 결국 아무 것도 되지 않는 상황으로 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을 배울 것인가?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의 원칙을 6자회담 9.19공동성명의 수준으로 되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미 양국은 공동성명 2항에서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적으로 공존하며 각자의 정책에 따라 관계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공약한 바 있다. 이는 1993년 북·미 공동성명에서 합의된 상호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 평화 공존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었고, '한반도 비핵화' 과정을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큰 정치적 원칙이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는 이 원칙을 재확인하기를 거부했다. 심지어는 오바마 대통령의 입에서 "이런 정권(북한)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폭탄선언'이 나오기까지 했다.
협상은커녕 대화의 기초 자체가 허물어진 것이다. 물론 어느 국가든 상대국가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상대국가의 체제와 최고지도자를 혐오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국가와도 외교를 하기 위한 최소조건은 상호 주권 존중, 내정 불간섭, 평화 공존 아닌가. 그 최소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싸우겠다'는 의지만 남는 셈이다.
오바마 정부가 작년 말 보여주었던 대화 모색 움직임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싸우면서 대화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서 '싸움'과 '대화'는 동격이 아니다. 전자가 정책의 기조이고, 후자는 그 원칙을 이행하는 도구이다. 북과 적대관계는 유지하되, '전략적 인내'라는 도구에는 변화를 모색해보자는 것이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 도구는 전략적 손실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은 핵능력을 계속 질적·양적으로 발전시키고, 경제도 재생국면으로 전환시키고, 외교도 공세적으로 다변화하고 있다. 미국에서 '적국'의 전략적 능력 신장세를 조절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 '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이유다.
이는 또한 북이 "상종할 용의도 없다"고 강경하게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적국'이 '계속 싸우자. 단 무기 개발만 제한하라'고 나서는데 여기에 응할 국가는 없다. 더구나 그 '무기'가 '적국'을 가장 아프게 하는 도구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면 말이다.
해서 오바마 정부는 반면교사다. 대화를 재개하고 관계개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조건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국가 대 국가의 관계일뿐더러,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을 잊지 않으면 된다. 남북대화와 화해교류를 위한 기초는 이미 다져져 있다. 그리로 돌아가면 된다.
이미 예정된 연례군사훈련을 지금 와서 취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미군사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지금 흔드는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불가능한 것을 고민할 필요는 없다. 원칙을 바로 세우면 된다.
남과 북, 북과 미국이 이제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겠다는 결심만 한다면, 길은 만들어질 것이다. 할 일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결국 문제는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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