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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사지'에서 생명 구하고 돌아온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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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역만리 '사지'에서 생명 구하고 돌아온 사람들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 위해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다녀온 긴급구호대

"왜? 미쳤어? 죽고 싶어?"

민간 병원 간호사 홍나연 씨가 에볼라 긴급구호대에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남자 친구는 펄쩍 뛰며 이렇게 말했다. 남자 친구의 격한 반대에도 홍 씨는 결심을 꺾지 않았다. 꼭 가야겠느냐는 주변의 만류를 뒤로하고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4주 동안 환자들을 돌본 홍 씨는 한국에 무사히 돌아온 후 "남자 친구가 맛있는 것 사다 줬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에볼라 대응 해외긴급구호대 1진이 지난 15일, 에볼라 바이러스 최대 잠복기인 21일간의 격리 관찰을 마치고 무사히 일상으로 복귀했다. 구호대는 지난해 12월 말부터 시에라리온 수도인 프리타운 남쪽 가드리치 지역에 위치한 에볼라 응급 치료센터에서 이탈리아, 영국 및 아프리카 현지 의료진들과 4주 동안 치료 활동을 벌인 후 지난 1월 26일 귀국했다.

▲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남쪽 가드리치에 위치한 에볼라 응급 치료센터 전경. ⓒ외교부

이날 인천공항공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구호대 1진 대원들은 처음에 구호대에 지원했을 때 애인과 부모, 지인 등 여러 사람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 중 구호대에 합류한 이태헌 대위는 "제가 구호대에 지원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날, 지방에 살고 계시던 부모님이 바로 서울로 오셔서 '차마 내 자식은 못 보내겠다'며 우셨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이처럼 에볼라 구호대 지원을 말린 것은 내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을 '사지'(死地)로 보낼 수 없다는 '인지상정'(人之常情) 때문이었다. 실제 에볼라 바이러스의 치사율은 50%에 육박할 정도로 높고,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서아프리카에서는 여전히 에볼라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죽음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에 보낼 수 없다며 어떻게든 못 가게 막았던 것도, 그리고 건강하게 돌아온 이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들이었다. 민간 병원 간호사였던 박교연 씨는 "처음부터 부모님의 반대가 워낙 심했고 시에라리온에 있는 동안에도 하루라도 연락이 안 되면 굉장히 많이 걱정하셨다"며 "귀국 이후 어머님이 저를 보고 눈물을 흘리셨는데, 격리 기간 동안 스킨십을 할 수 없어서 손을 잡아보지는 못했지만 오늘은 꼭 안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환자, 숱하게 봐왔지만…

구호대원들은 시에라리온 현장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의 사망을 직접 지켜봤다. 박 씨는 "병원에서 근무할 때도 환자들이 죽어가는 상황을 많이 간호해봐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막상 현장에서 환자들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심적으로 충격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대위는 "두 살 난 알리마라는 아이가 있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이 아이가 의식이 돌아와서 먹을 것을 달라고 보채더라"며 "비록 아이는 며칠 뒤에 사망했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센터에 함께 입원해 있었던 것. 이 대위는 "아이의 죽음을 어머니에게 알리면서 위로를 해드리고 싶었지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대원들은 시에라리온 현장에서 에볼라 바이러스로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민간 병원 간호사 최우선 씨는 "에볼라가 완치돼서 퇴원하는 환자에게 축하하려는 말을 건네려고 했는데 표정이 좋지 않아서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아내와 아들, 부모님을 잃었다고 했다"며 "이들의 감정까지 어떻게 도와줄 수는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웠다"고 밝혔다.

홍 씨 역시 "치료센터를 떠나면서 그곳에서 근무하던 생존자를 만났는데 가족 6명 중 5명이 에볼라에 감염됐고 부모님, 형, 누나 모두 돌아가시고 본인만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라며 "치료센터가 에볼라 생존자들을 채용하고 있는데 단지 에볼라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자들을 위해 노력해주기까지 해서 고맙다고 했다"고 전했다.

▲ 치료센터에서 퇴원하는 환자(오른쪽)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는 긴급구호대 대원들. ⓒ외교부

이역만리의 낯선 현장에서 바이러스로 고통스럽게 죽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이들이 계속 구호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건 같은 뜻을 가지고 힘든 시간들을 함께 이겨낸 동료들이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홍 씨는 "처음 목격했던 사망 환자가 어린아이여서 심리적으로 약간 충격을 받았"지만 "의료진이 많이 도와줘서 극복할 수 있었다"고 밝혔고, 박 씨 역시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치유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구호 활동에서 얻는 보람이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육군 군의관 오대근 중령은 "처음에 센터에 갔을 때 입원 환자가 30명이 좀 넘었는데, 의료진이 환자 수보다 적은 상황에서(*WHO는 환자 1명당 의료진 2.5~5명을 권장하고 있다. '편집자') 환자들을 돌보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구호 활동 초기에는 환자들이 많이 사망했지만 날이 갈수록 사망 환자보다 퇴원 환자들이 많아져서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감염센터장 신형식 구호대 팀장은 "진료 중 세르비아 출신 간호사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됐었는데 치료센터 내에서 진료를 받고 회복해서 퇴원했다"며 이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1진 구호대원 중 한 명이 지난 1월 4일 사고로 인해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제기돼 구호대에서 중도 하차하게 됐던 때가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현장에서 배운 것, 한국에 적용해야

구호대원들은 이번 활동을 통해 에볼라 바이러스를 비롯한 전염병들에 어떻게 대처할지 경험을 쌓은 측면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신형식 팀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환자들이 어떻게 치료가 되는지, 고생은 했지만 힘들게 치료하는 것을 직접 경험했다"고 밝혔다.

최 씨는 간호사로서 감염을 관리하는 문제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에볼라가 접촉에 의해 감염되기 때문에 의료진이 보호복과 장비를 입고 벗는 것과 소독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면서 "소독제에 대한 연구가 현지 의료진에게 필요한 만큼 진행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 이런 감염 관리 부분을 어떻게 좀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중환자실 진료를 마치고 소독을 받고 있는 긴급구호대원(오른쪽). ⓒ외교부

오 중령은 "군인이다 보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생화학전 부분, 또 군에서 운영하는 이동식 병원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면서 구호 경험을 한국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돌아보게 됐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구호대원 중 한 명이 독일로 후송되는 과정을 보니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통제가 잘되고 있더라"라며 "세월호 사건 이후에 컨트롤 타워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생각하게 됐고, 앞으로 군과 민간 모두 상황에 대처하는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 등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에볼라 바이러스 유입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더 기여해야

지난해 에볼라 긴급구호대를 파견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발표된 후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에볼라 전문 의료 인력이 한 명도 없는 한국이 인력을 파견했다가 민폐만 끼치고 오는 것은 아니냐, 인적 지원 대신 물적 지원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것 아니냐 등등 다양한 의견들이 제기됐다.

하지만 현재 3진까지 파견된 에볼라 긴급구호대는 별다른 사고 없이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들 구호대는 한국이 어려움에 처한 다른 국가를 돕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에 퍼뜨렸을 뿐만 아니라, 에볼라 경험이 전무한 한국에서 대처 역량을 키우는 자양분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앞으로 에볼라와 같은 대규모 전염병이 생겼을 때 다시 긴급구호대를 투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신 팀장은 "우리가 단지 경험이 없었던 것뿐이다. 지금의 국력으로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한 지역에서 전염병이 생기면 바이러스가 어디로든 파급될 수 있기 때문에 남의 일이 아니"라면서 "우리나라에 바이러스가 들어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지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나라가 현장에서 진료를 하고 전염병 확산을 억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살피고 있는 긴급구호대원(왼쪽). ⓒ외교부

신 팀장은 "통상 전염병들은 경제적인 능력이 약한 나라에서 많이 발생하고 확산된다"며 "우리나라처럼 경제 능력이 되고 경험도 있고 의료 수준도 높은 곳에서 앞으로 유사한 일이 발생했을 때 좀 더 조직적으로 구호대를 파견한다면 세계 보건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난해 연말 부산에서 열린 ITU(국제전기통신연합)전권회의 총회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주요 지역인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대표가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던 일과 관련, 적절한 조치였느냐는 질문에 "에볼라가 아주 적은 양의 바이러스만으로도 전염되긴 하지만 증상이 없을 때, 즉 잠복기에 전염되는 것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신 팀장은 "대표단이 한국에 왔어도 보건팀이 적극적으로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을 통해 국내에 질병이 확산, 유입되지 않을 수 있는 대응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한국 의료 체계가 에볼라 바이러스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오 중령은 발전된 한국의 통신기술을 에볼라 현장에 접목하면 효율적인 진료가 가능할 것이라며 한국이 어떻게 에볼라 치료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도 내놓았다. 오 중령은 "무전기로 위험 지역과 비(非)위험 지역의 상황을 전파했는데 여기에 한국의 네트워크 기술을 이용한다면 실시간으로, 컴퓨터로 몇 번 두들기기만 하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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