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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는 되고, 대기업 노동자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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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는 되고, 대기업 노동자는 안 돼?"

[윤효원의 노동과 세계] "기득권층, 제 눈의 들보부터 봐야"

대한민국은 세습의 나라다. 재벌들은 3세를 넘어 4세로 세습이 넘어가는 추세다. 수천억을 넘어 수조 원에 달하는 재산만 세습하는 게 아니다. 재벌 회장이라는 일자리도 세습한다. 자리를 세습하면 권력은 저절로 세습된다. 한 세대 25년. 네 세대를 합치면 100년이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며 본격 등장한 대한민국 자본주의 역사와 일치한다.

성직이라 세금 안 내는 교회에서도 세습은 대세다. 돈 많은 대형 교회일수록 세습이 "하나님의 뜻"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3세나 4세가 대세인 재벌과 달리, 교회는 2세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라지고 돈과 권력의 주변만 맴도는 한국 교회의 현실을 볼 때 3대 세습이라는 "하나님의 은사"는 곧 일어날 것이다.

재벌 회장과 교회 목사 자리의 세습을 두고 목에 핏대를 올리는 언론은 별로 없다. '조중동' 같은 주류 언론은 북한 정권의 3대 세습은 욕하면서도 재벌과 교회의 세습에는 침묵한다. 하기야 언론사 사주 세습 문제는 머리에서 지운 듯하다. 재산과 자리를 거리낌 없이 자손에게 세습하는 재벌 회장이나 교회 목사, 그리고 언론사 사주가 북한 정치체제를 '왕조'라고 비웃는 걸 보면 '누워 침 뱉는 꼴' 같아 우습기 짝이 없다.

주말에 고향에 갔다. 고향에는 댐이 두 개 있다. 댐이 서면 수몰민이 생긴다. 수몰지역 이장을 만나니,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수몰을 주민들이 열렬히 원한다 했다. "저는 28억, 우리 형제 모두 합하면 60억을 수자원공사에서 받았어요." 진짜 그랬는지 몰라도 이장이 한 말이다. 이 사람은 수몰 전엔 대기업에서 일했다고 했다.

세금 낭비를 말하는 게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 토지와 아무런 상관없는 일을 했던 사람에게도 토지가 세습된다는 점을 말하려는 게다. 물론 농민 자리도 세습될 수 있지만, 농업이 배척당하고 농민이 무시당하는 대한민국에서, 토지는 뺀 채 농민이라는 일자리만 세습하려는 이는 별로 없다.

한 번 더 고향 이야기를 하자. 고향에 가면 "기업인을 왕으로 모십니다"라는 표어가 붙어 있다. 왕좌는 세습된다. 지방 정부, 나아가 중앙 정부까지도 기업인을 왕으로 모셔서인지 대한민국 기업인 중 스스로를 왕으로, 노동자를 종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땅콩회항' 사태에서 드러난 회장 따님의 행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일터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노동 착취와 임금 체불, 그리고 저(低)임금-고(高)이윤을 노린 비정규직화는 기업인(자본가)과 노동자는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주인님'과 '노비'의 관계에 있음을 잘 보여준다.

진짜로 기업인들은 왕이다. 근로기준법 같은 노동법을 위반하는 기업인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불법을 저지른 기업인이 감옥에 간 경우는 건국 이래 손꼽힌다. 노동-자본 관계에서 '법치 the rule of law'는 작동하지 않는다. 영어로 뭐라는 지 모르나, 'the rule by law'가 작동한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 정부는 자본과 결탁하여 스스로 단결해 자기 권리와 이익을 도모하려는 노동자들을 범죄자로 몰았다. 노동법을 넘어 형법과 민법을 동원해 감옥에 보내고,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려 가족과 친지의 목구멍마저 옥죈다.

노비 사회였던 왕조 시절 마당쇠와 곱단이를 착취하고 때렸다고 옥에 갇힌 양반나리 이야기를 들은 적 있던가. 노비는 억울하게 죽어나가도 어디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를 착취하고 때렸다고 옥에 갇힌 기업인(왕)을 들은 적 있던가.

대한민국 특권층은 부와 권력의 세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자신은 "간단치 않은" 사람이라며 온갖 잘난 척 하다 망신창이가 된 이완구 씨를 보라. 처세를 위해선 처가 쪽 상가조차 안 갔던 사람이 처가 재산은 잽싸게 자식에게 세습시켰다. 본인은 물론 자식도 세금 특혜를 받았다.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행위조차 세습했다. '푸른 제복'을 입고 썩힌 2년이라는 시간이 없어서였을까. 이완구와 그의 자제는 1%의 재산은 물론 1%의 일자리까지 세습하였다.

대한민국이 세습 국가라는 증거는 신문을 조금만 뒤적거려도 무수히 발견된다. 토지와 건물 같은 부동산 재산, 예금과 주식 같은 현금성 재산은 기본이다. 재벌 회장, 기업인, 금융인, 교회 목사, 판사, 의사, 변호사, 교수, 언론인, 예술인, 전문직 일자리가 세습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선거라는 형식을 거치기는 하지만 국회의원과 대통령 같은 정치인 자리까지 세습되고 있다.

교육상의 특혜, 병역상의 특혜까지 세습되면서 기득권층의 핏줄들은 '노비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필요가 없어졌다. 공정한 경쟁은 신기루가 된 지 오래다. 우스갯소리지만 노비 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선거가 있었다면, 노비들은 노비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고 자신들이 모시는 '주인마님'이나 '도령님' 후보에게 표를 주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조선왕조 시절로 후퇴시킨 자신들의 세습 문제엔 눈감은 기득권층은 장만 서면 나타나는 약장수처럼 "대기업 귀족 노조의 일자리 세습" 곡조에 핏대를 올리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노동연구원이 단체협약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 600여 곳 중 180여 곳(29%)에서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직원 가족에게 채용 특혜를 보장하고 있"다며 난리다.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을 팔아 일하는 사기업에서 "정년 퇴직자 직계가족에 대해 우선 채용 조항을 단체협약에 못 박"은 게 무슨 잘못인가. 대한민국 헌법을 비롯해 어느 법이 "대기업 귀족 노조의 일자리 세습"을 불법으로 규정하는가. 노동법은 물론 형법과 민법 어디에서 "업무와 상관없이 생긴 부상이나 질병으로 퇴직한 근로자의 가족을 우선 채용하기로 한 약속"을 불법이라 선언하는가. "청년 실업률이 9.2%로 사상 최고를 기록하고, 웬만한 기업의 입사 경쟁률은 100대 1을 넘는" 현실과 "대기업 귀족 노조의 일자리 세습"이 무슨 상관인가.

회사를 위해 청춘을 바쳐 일한 노동자가 나이 먹고 병들어 일자리를 그만두면서 사장에게 자기 가족 좀 챙겨 달라 요구하고, 이를 회사가 단체협약으로 합의해 준 게 뭐가 문제인가. 대한민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지배해온 기득권층이 저질러놓은 청년실업 문제의 책임을 왜 뼈 빠지게 일해 온 노동자들에게 지우려 하는가.

"대기업 귀족 노조 일자리 세습"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재벌 회장이나 교회 목사의 세습 문제를 거론할 필요도 없다. 16일 총리 인준 투표가 이뤄지는 이완구 후보자 일가의 세습 문제부터 법제도로 풀면 된다. "평생 국가와 국민을 봉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약속한 공직자 이완구 일가의 세습 문제가 해결되면 "대기업 귀족 노조 일자리" 세습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

대한민국은 '세습 공화국'이다. 대기업 회장의 일자리가 세습되는 사회에서 대기업 노동자의 일자리가 세습되는 건 당연하다. 정부·기업·언론·학계·법조·언론 등에 또아리 틀고 불로소득으로 살쪄가는 대한민국의 기득권층들은 남 눈에 낀 티끌을 욕하기 앞서 제 눈에 들어선 들보부터 돌아보기 바란다.

▲"평생 국가와 국민을 봉사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다" 약속한 공직자 이완구 일가의 세습 문제가 해결되면 "대기업 귀족 노조 일자리" 세습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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