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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KTX 논란이 지역 갈등?…국토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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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KTX 논란이 지역 갈등?…국토부의 문제다

[기고] 이용객만 배제된 '서대전 경유' 논란

2월 5일 국토부는 새로 개통되는 호남선 KTX(고속철도) 노선의 열차 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호남권과 충남권의 지역 간 갈등으로까지 번진 고속철도 운영 계획은 당초 코레일이 제출했던, 호남선 KTX 운행 편수 중 22%가 서대전을 경유해 기존 선을 운행하게 되는 안이 폐기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서울발(發) 호남선 KTX는 호남 고속선 분기점인 오송역을 지나 광주와 목포, 여수를 운행하게 된다.

국토부는 고속철도의 건설 목적에 합당한 결정이었으며, 호남권으로의 고속열차 직행, 그리고 서대전 경유 논산-익산 구간의 열차 증편을 통해, 호남권과 충청권의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켰다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양측의 입장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는 피고인이 재판장을 맡은 꼴이다. 국토부는 대국민 사과부터 했어야 했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발생시킨 당사자가 그동안 철도 정책을 좌지우지한 국토부였기 때문이다. 국토부의 정책 실패가 지역 간 갈등을 부채질한 것이었다.

요컨대 이 논란의 핵심은 서대전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철도 정책 당국이 스스로 쌓아왔던 오랜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다.

애초에 잘못 낀 단추, 광명역 탄생이 비극

이번에 발생한 충남권과 호남권의 갈등은 고속선 설계와 건설 단계에서부터 잉태된 것으로, 철도에 대한 철학 부재와 정책 구현의 무원칙이 결합되어 나타난 결과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속철도 건설에 나선 나라들은 두 가지 당면한 과제로부터 출발한다. 하나는 기존선의 용량 포화로 신선 건설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미래지향적 대안 교통수단으로서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높이고자 하는 경우다.

철도는 편리한 접근성을 갖는 도로와 빠른 속도를 장점으로 내세운 항공의 발전으로 한때 사양 산업으로까지 치부되었었다. 그러나 고속철도의 등장으로 속도에서의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 여기에 편리한 접근성을 갖게 되면 철도의 경쟁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철도의 수송 분담률이 증가할수록 얻어지는 사회적 이득은 적자로 치부되는 철도에 대한 투자비를 상회한다.

따라서 고속철도를 비롯한 철도망의 신설과 개량은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과 성장이라는 종합계획 아래 심도 있게 논의되고 결정되어야 한다. 특히 철도 정책은 철도 노선이라는 비탄력적이고 고정화된 인프라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한 번 잘못되면 영구적으로 그 질곡을 떠안아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빼서 다시 채울 수도 있지만, 이미 콘크리트로 고정된 철도망은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속철도 정책에서 나타난 문제들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노정해 왔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중심주의,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결정, 관료들의 전시성 행정, 철도 전문가 집단의 관료 종속이 하나로 결집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고속철도를 건설하면서 내세운 것 중의 하나가 반나절 생활권이었다. 서울-부산 간 두 시간대, 혹은 두 시간 이내 주파라는 선전은 고속철도의 효용성을 잘 드러내 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같은 두 시간대라 해도 정책당국이 주목해야 할 점은 철도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서 이동 시간의 단축을 꾀해야 하는 것이었다. 기존 철도 노선과의 상호 보완 부분을 충족시키고, 상호 협력의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 극단의 신기록 달성에만 주안점을 둔 한국의 고속철도 노선은 중간 지역의 열차 이용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한국은 세계 최장이나 최고, 국내 최대, 그리고 최단 시간 등 상징적 성과에만 집착, 내실을 잃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올바른 정책적 판단과 사업 수행의 결과로 축적된 성과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성과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다른 중요한 가치들은 하위 종속변수가 되거나 폐기되어 버린다. 눈에 보이는 성과 때문에 숨겨진 폐단은, 이번 고속철도의 서대전역 통과를 둘러싼 갈등처럼 오래가지 않아 드러난다.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고속철도 노선은 도쿄-나고야-오사카를 잇는 도카이도선이다. 고속철도는 대도시 인구 밀집 지역을 거점으로 운행하면서 속도 향상이라는 과제를 달성해야 한다. 기존 선과의 연계 및 환승 또한 중요하다. 고속선과 일반선의 상호 호환과 접속은 철도 이용률을 높이는 기본 전제가 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고속철도역이 기존선의 주요 역과 나란히 건설되거나 가까운 거리에서 도시철도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설계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속철도 노선은 철도 이용수요를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무시한 채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일본에서 도카이도 신간센을 건설하면서 나고야를 빼는 노선을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호남 고속철도 건설 과정에서는 대도시 거점역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전을 우회하도록 노선이 결정되면서 고속철도 활용률을 높일 방안이 무시되었다. 허허벌판에 세운 공주역은 한국 철도 정책의 현주소이다.

결국 중요한 이용객이 배제된 '정치적 타협'의 산물

고속철도 및 일반철도 노선 설정의 잘못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대표적인 곳이 수원이다. 수도권 최대 인구 밀집 지역인 수원을 배제함으로써 철도 이용 환경의 대폭적인 개선 기회를 놓친 것이다. 수원은 12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인구 밀집 도시다. 수원 주변의 안양, 군포, 의왕, 병점, 오산, 동탄, 판교 등의 인구를 감안한다면 철도 이용률을 크게 높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원을 통과하는 고속철도 건설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 반박 논리는 '속도'였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속도를 올리기도 전에 정차하게 되어 고속철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반박된 것이다. 속도가 생명인 고속철도에 정차역을 많이 만드는 것은 고속철도의 기능을 훼손한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철도 운영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서울에서 대구보다 약간 먼 거리 정도의 도쿄-나고야 구간 고속철도 역은 13개나 된다. 반면 서울에서 대구까지는 7개의 역이 존재한다. 일본의 신간센은 한국의 고속철도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정차역이 있기에 고속철도로서의 기능성이 떨어질까? 그렇지 않다. 열차 운영 단계에서 교차 정차역을 정하고 특정 역에서의 출발 열차를 지정하여 운행하게 되면 중간 정차역 수에 제한받지 않고 고속 운행을 할 수 있다. 도카이도 신간센 도쿄역의 다음 역은 서울역에서 영등포역 거리도 안 되는 6.8킬로미터(Km)의 아주 짧은 구간인 시나가와 역이다. 그 다음은 안양역 정도 거리의 신요코하마 역이다. 이렇게 짧은 역 간격을 갖고 있지만 열차 등급과 러시아워 등 시간대별 운행 조건 조정으로 전체 총구간인 도쿄-오사카 구간의 이용시간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수원역 반대를 외쳤던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결과는 서울시 외곽 산중에 수천억을 들여 광명역을 만들어 단순 통과역으로 전락시킨 것이었다.

국토부는 장관까지 나서 고속철도 수혜 지역을 넓히겠다고 호언한다. 하지만 철새들만 선회하는 허허벌판 위의 그 많은 고속철도역의 수혜자는 노선 유치를 성과로 포장해 표를 얻은 정치인들과 노선 결정과 설계에 참여한 자칭 철도 전문가들, 건설비를 챙긴 토건족들이지 국민이 아니다. 철도이용의 최대 단점인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역의 설치는 혈세만 낭비할 뿐이다.

1988년 고속철도역으로 개통된 일본 서남부 히로시마현 오노미치시 신오노미치역은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지차체의 요청으로 건설됐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 예산과 시민 기부금 120억 엔도 투입됐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역이 시 외곽에서 3킬로미터 가량 떨어져 접근성이 나빠진 게 원인 중 하나였다. 신오노미치역의 1일 이용객 수는 1000여 명에 불과한 데 더 늘어날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철도역만 들어오면 부동산이 개발되고 경제가 살아날 것 같이 말하는 것은 개발업자들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국토부는 호남 지역의 입장을 반영한 듯한 열차 운영 안을 내놨지만, 신선 개통이 됐는데도 획기적으로 운행 편수를 늘리지 못했다. 서울-호남 간 운행시간만 단축되었을 뿐 호남 지역 이용객들의 열차 이용 환경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현재 경부선 중심 운영 구조를 갖고 있는 한국철도의 현실상, 수서발 KTX 개통으로 수도권의 철도 용량 확보가 되기 전까지는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다.

국토부가 진정으로 국가의 균형 발전과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이고자 한다면, 철도에 대한 인식의 각성 등 대전환을 먼저 달성해야 한다. 철도 민영화와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신기루에 갇혀 계속 좌충우돌한다면 한국철도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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