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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개의 고통, 304개의 역사…'부넝쒀'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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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개의 고통, 304개의 역사…'부넝쒀' 세월호

[프레시안 books]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꿈을 꿨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듯 '풋기'를 떨치지 못한 늘씬하고 예쁜 아가씨가 나를 보고 환하게 웃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 아이가 '지현이'라는 걸 직감했다. 지현이가 내 팔을 잡고는 말했다. "서 기자님, 얘기 많이 들었어요"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물에 많이 불었을 텐데 살이 탱탱하네.' 어쨌거나 살아 있다니, 건강하다니 너무나 다행이었다. '아가씨가 다 되었네.'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지었다. 지현이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꼭 껴안았다. "정말 고마웠어요." 내 등을 다독이는 손길이 부드러워 흐느꼈다. "응, 나도 고마워. 지현아."

베갯잇이 젖어 있었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꺽꺽대느라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침대를 더듬거렸다. 눈을 살짝 떠보니 베개 옆에 책 한 권이 보였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창비, 2015년 1월 펴냄)이었다. '이 책을 읽다 깜빡 잠들었구나,' 그때야 정신이 들었다. 누운 채로 생각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이었다. 지현이가 왜 내 꿈에 나왔을까. 어째서 나에게 그렇게 화사한 웃음을 짓고 "고맙다"고 했을까.

'단원고 황지현'을 기록하다

ⓒ창비
출생 1997년 10월 29일. 사망 확인 2014년 10월 29일.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의 295번째 희생자.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3반 고(故) 황지현….

수학여행을 떠난 지현이가 197일 만에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오던 날, 나는 종일 지현이 부모님 옆을 지켰다. 생일을 맞은 지현이 먹으라며 바다 위로 케이크 조각을 던지는 지현이 어머니의 모습을, 지현이가 흰 천에 덮여 나오던 순간 억눌린 울음을 터뜨리는 지현이 아버지의 모습을 모두 보았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글로 담았다. (☞ 관련 기사 : 엄마 품에 돌아온 지현이 "생일날 와줘 고마워")

지현이 부모님 곁에 있었지만, 난 맴돌 뿐이었다. 그들의 고통 무엇 하나 덜어드리지 못했다. 도리어 죄송한 일뿐이었다. 감정을 추스르기 힘든 그들의 매 순간을 기록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최대한 말소리를 낮추고 눈물을 꾹 참았다. 진도에서 눈물은 내 것이 아니었다. 진도에서 곧바로 안산 장례식장에 달려갔을 때, "늦었는데 여기까지 왔느냐"며 가볍게 타박하는 어머니를 보며 그제야 살짝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러니 내가 지현이를 위해 운 건 실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의 울음은, 아마 복잡한 감정에서 터진 것이었을 게다. 꿈에서나마 아가씨가 된 지현이를 보아 반갑고, 그러나 현실은 다르니 그런 꿈을 꾸어 미안하고….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무엇보다도 내 등을 도닥여주던 그 손길에 울음이 났던 것 같다, 그 손길의 의미를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위로'였다. 지현이의 마지막을, 지현이 부모님의 고통을 기록한 데 대해 죄책감을 갖던 내게 지현이가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는 것 같았다.

"떨리는 숨소리까지 기록하는 이유가 뭡니까"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두 겹의 고통으로 싸인 책이다. 제일 안쪽에는 전대미문의 참사로 사랑하는 혈육을 잃은 가족의 고통이, 그리고 그 바로 바깥에는 유가족들의 고통을 글로 옮기는 '기록자'들의 고통이 한 꺼풀 한 꺼풀 배어 있다. 그래서 책은 시종일관 무겁고 아프다. 읽다 덮었다 다시 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책 속에 짙게 묻어나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기록단의 고뇌가 번갈아가며 나를 쿡쿡 쑤셔댔다. (☞ 관련 기사 : "지옥 같던 날들의 기록…그러나 진실이 이 책에 있다")

"딸이 네 살 때부터 저 혼자 키웠시유. IMF 때 월급이 많이 깎여버렸어유. 100만 원밖에 못 받았죠. 그걸로 살림허기 힘들었나, 애엄마가 아이 키우는 걸 포기허고 어디론가 가버렸시유. 세상에 소연이허고 나 둘만 남은 거잖어유. 안 혀본 일이 없었죠. 소연이를 위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만유. (…) 세상에 딸하고 나 둘만 남겨졌는듸 그 아이를 잃었어유." (유가족 유해종)

"하루에도 수번씩 감정을 우겨넣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 감정을 어떤 활자로도 새길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군가의 언어와 감정을 책으로 만들겠다고 달려들었던 건 호기 같았다. 그러나 '딸은 그렇게 됐어도 딸이 한 일은 알려야 되지 않겠냐'던 아버지의 말씀을 저버리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펼치게 되었다." (기록단 정미현)

고통을 발설하는 것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고통을 기록하는 것은 고통에 고통을 얹는 일이다. 집필 작업을 총괄한 김순천 작가 역시 "인터뷰 내내 울다가 한 글자도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고 돌아온 적이 많았다"고 했다. 진도에서 김순천 작가를 만난 적이 있다. 지현이를 찾은 그날이었다. 그때도 그는 기록하는 일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다. 힘든 일을 왜 하시느냐고, 희생자 가족들의 아픔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게 어떤 큰 의미가 있느냐고.

처음엔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 기록'이라기에, 사고 이후 유가족이 겪은 일들을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한 '투쟁 일지'일 줄 알았다. 하지만 책장을 열고 보니 13명 유가족 이야기를 묶은 인터뷰 모음이었다. 나는 책을 통해 김 작가를 만나며 다시금 묻고 싶어졌다. "부모들이 자식을 잃은 후 그 순간순간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그 떨리는 숨소리까지 기록하려 노력"하는 게 그들에게나 이 사회에나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까. 이 사회에서 '유가족'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는 이들의 아픔과 분노는 다 비슷비슷할 텐데. 진도에 있을 당시 나 스스로 해명하지 못해 손톱만 깨물어야 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304개의 고통과 304개의 역사

책을 읽는 동안에도 고민은 계속됐다. 그러다, 항암 치료를 받던 중 딸 길채원 양을 잃은 허영무 씨의 이야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딸을 걱정했는데 딸을 먼저 보냈어요. (…) 제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 저희는 가족 셋 추스르는 것만으로도 너무 버거워, 나가서 가족대책위 같은 활동을 하고 그러질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는 존재감이 없잖아요. 여기서라도 우리 아이가 이렇게 살다 갔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요."

그는 채원이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고, 아픈 엄마를 걱정해주는 착한 딸이라 했다. 어차피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에게 '채원이를 잃어버린 일'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다.

고통은 이렇듯 개별적으로 다가온다. 똑같은 사고를 겪었지만 고통의 형태와 크기는 저마다 다르다. 언젠가부터 '유가족'이라는 한 덩어리의 집단으로 묶였지만, 유가족이 되기 이전에 그들은 '세희 아버지'였고, '준우 어머니'였다. 각각의 삶을 짊어지고 사는 개별 존재들이니 고통을 견디는 방식도 달랐다. 잃어버린 아이 생각이 나 예전 집을 버리고 이사를 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가족이 있었다. 남은 자녀를 어떻게 돌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제각각이었다.

'유가족'이라는 집단이 아닌, 누구누구의 부모에게서 듣는 세월호 사건의 의미는 그래서 더욱 생생하고 명료하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었다. 바로 그것이 인터뷰, 증언이 갖는 힘이라는 걸 비로소 알았다.


'부넝쒀', 말로 다 못하는 이야기

작가 김연수의 단편 <부넝쒀>에 등장하는 소설가는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 매몰된 한 노전사(老戰士)의 개인사를 우연히 듣게 된다. 절망 끝에 손가락을 자르고 점쟁이가 된 노전사는 작중 소설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부넝쒀(不能說)', 말로 다 할 수 없는 절절한 이야기를 쓰라고 충고한다.

"역사라는 건 책이나 기념비에 기록되는 게 아니야. 인간의 역사는 인간의 몸에 기록되는 거야. 그것만이 진짜야. 떨리는 몸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말해주는 게 바로 역사야. 이 손,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잘려나간 이 손이 진짜 역사인 거야…."

부넝쒀. 세월호 희생자 가족의 심정이야말로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텅 빈 아이의 방, 시도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온갖 집회에 다니느라 검게 그은 피부가 말해주는 게 바로 그들의 진짜 '역사'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누가 뭐라든. 유가족이 보상금에 눈먼 정치 집단이라고 누가 떠들든. 그리고 그들의 떨리는 숨소리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그들이 토해내는 분노를 기록하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기록자들의 역할일 터이다.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는 모두 304명. 이 책에는 고작 열세 명의 이야기만이 실렸다. 나머지 가족들의 이야기가 새로 갈무리될 무렵엔 열세 가족의 이야기가 새로 추가될 것이다. 그렇게 역사는 계속된다. 세월호 사건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여전히 나를 다독이는 지현이의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 따스한 느낌이 나를 채찍질한다. 지난 10개월간 꿋꿋하게 버텨온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기록단에 박수를 보내며, 나 역시 또 한 명의 기록자로서 분발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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