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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꿈을 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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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체투지, 가장 낮은 곳에서 높은 꿈을 보는 사람들

[기고] SK-LG 비정규직 1000명, 정리해고·비정규직 법제도 폐기 3차 행진

3차 오체투지 준비에 함께 하고 있다. 1차 때는 5일 동안 아무 말 없이 기륭전자 분회원들을 따라 땅바닥을 기었다. 첫 출발은 눈물겨웠다. 10년 싸움을 한차례 정리하고 1년 넘게 농성을 하던 농성장을 스스로 철수하고, 길거리로 나오는 날이었다. 몇 번의 고공농성, 또 몇 번의 단식, 또 몇 번의 점거농성을 했는지 모른다. 국회에서 사회적 합의라는 조인식까지도 해봤다. 그렇게 싸우고도 돌아갈 일자리 하나 없었다. 그런 노동자들의 설움이 사회 도처에 깔려 있었다. 이렇게 정리할 수는 없다고 기륭전자 분회원들은 마지막 투쟁으로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사회적 행진'에 나서기로 했다. 그 선포 행진으로 오체투지를 선택했다.

첫 출발은 나 포함 10명이었다. 기륭 조합원들만 가게 놔두면 그렇지 않느냐고, 연대를 왔던 기아자동차비정규직 김수억과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박점규 집행위원, 그리고 당시 민주노총 직선제 선거에 출마해 있던 현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이 남은 민복을 주워 입었다.

첫 발을 떼고 온 몸을 차가운 땅바닥에 눕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가'. 나도 기륭전자 투쟁 10여 년간 포클레인 점거농성 2번에, 국회 점거농성 2회, 연행이 2번이었고, 포클레인 점거농성 중 떨어져 다쳐 병원 수술을 두 번 받아야 했다. 나뿐이었는가. 얼마나 많은 이들이 기륭전자에서 희망을 만들어보기 위해 온몸을 바쳤던가. 그 과정에 연대하다 지금은 마석 모란공원에 누워 있는 벗들만 셋이다. 그러고 보니 2008년 투쟁 때 민주노동당 비정규특위 위원장으로 단식을 함께 했던 이해삼 선배도 마석에 누워 있고, 당시 광우병촛불항쟁 시 촛불시민으로 '안티MB' 까페지기였던 윤활유도 마석모란공원에 누워 있다. 그는 망루농성 당시 경찰 폭행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기도 했었다. 그런 모든 사람들과 세월이 떠올라 정말이지 피눈물이 솟구쳤다.

ⓒ프레시안(선명수)

눈물과 함께 분노도 끓어올랐다. 그 뜨거운 분노에 영하 8도의 맨바닥도 춥지가 않았다. 지난 몇 년 대한민국 사회 노동자 민중들에게는 계속되는 절망의 소식들 뿐이었다. 다국적 전쟁기지가 될 것이 뻔한 해군기지를 막아보자고 강정으로도 몰려가보고, 핵 없는 세상을 꿈꾸며 송전탑 건설을 저지해보기 위해 이치우, 유한숙 어르신이 자결하신 밀양으로도 몰려가보고, 울산 현대차공장 앞 철탑 농성장으로도 몰려가보고, 평택으로 몰려가보기도 하고, 멀리 옥천나들목 광고탑에서 고공 농성하는 유성기업을 찾아가보기도 하고, 다시 지금 고공농성 250일차인 구미 스타케미칼 굴뚝 밑을 가보기도, 다시 작년 한해는 세월호에서 죽어간 이웃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안 마련을 위해 나서보기도 했지만 어느 곳 하나 진실이, 정의가 승리해 볼 수 없었다. 이렇게 투쟁이라도, 연대라도 해볼 수 있는 이들은 행복했다. 1000만에 육박한 비정규직 노동자 가족들의 삶은 철저히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2차 행진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앞장섰다. '해고는 살인이다'라던 2009년의 외침을 증명이라도 하듯,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중 지금껏 유명을 달리한 분만 스물여섯 명이다. 대통령이 되면 국정감사를 하겠다던 약속도, 고법 승소 판결도 대법원이 나서서 모두 다 뒤집어놓았다. 그런 불의들이 김정욱과 이창근 두 해고노동자들을 다시 세 번째 고공농성으로 몰아붙였다. 그 누구도 생사를 걸고 그 험한 수직 굴뚝을 오르고 싶지 않다. 살 수 없는 평지의 일들이 백척간두의 삶들을 선택하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부당한 현장을 만나면 누운 채 일어나지를 않았다.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3시간을 누워 있어야 했다. 공당에 면담하자는 요구 정도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결의가 끝내 새누리당사 앞 경찰벽을 허물고, 처음으로 면담단이 새누리 당사를 들어가는 일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대법원 앞 횡단보도로 지나가는 행렬을 갑자기 막아선 경찰들에 항의해서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들에 의해 공중부양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런 충돌이 있은 후 강남에서는 교통신호기를 조작하면서까지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행진을 보장하더니, 또 어떤 기준인지도 모르게 사대문 안으로 진입해서는 막무가내 탄압이었다. 을지로 롯데백화점 건너편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는 데는 장장 5시간이 넘게 걸렸다. 5분이면 건너갈 길이었다. 오체투지라는 가장 낮고 평화롭고 비폭력인 행진이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 걸까. 광화문 네거리와 세종문화회관 앞 횡단보도는 이 합법적이고 평화롭고 비폭력의 행진단을 방해하기 위해 차도로 뛰어든 수백 명의 경찰들로 아비규환이 되기도 했다. 결국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다시 길을 막아선 경찰들에 의해 겨울 한 밤을 꼬박 누워서 지내야 하기도 했다.

그런 오체투지 행진단 한 사람 한 사람들이 나는 어떤 비수 같다는 생각도 했다. 무도한 정권과 자본, 그리고 대통령을 향한 곧은 분노의 화살들 같다고도 생각했다. 실제가 그러하기도 했다. 행진단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사업장이나 일들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현재 박근혜 정부가 사활을 걸고 추진하려는 '해고는 더 쉽게, 임금은 더 적게, 비정규직은 더 많이'의 노동시장 종합대책 분쇄라는 한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폐지라는 근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누구에게 읍소하거나 청원하기 위한 '절'이 아니다. 한국사회의 맨바닥을 똑바로 보자는 상징적 표현이다. 이 처참한 민주주의의 바닥에서부터 다시 한국사회는 뒤집어지고, 일어서야 한다는 외침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분명한 목표를 향해 함께 가자는 연대의 행진이기도 하다. 뜬구름 잡는 공중에만 있지 말고 이 노동자민중의 바닥으로 함께 내려와 다시 시작해보자는 거대한 제안이기도 하다. 성찰하며 겸허한 자세로 다시 한 발 한 발을 떼더라도 제대로 떼어보자는 각오들이기도 하다. 모두가 함께 주체가 되어 나아가는 수평적인 연대의 행진이기도 하다.

지난 연말과 연초에 있었던 1차와 2차 때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우정과 연대, 그리고 감동의 순간들을 모두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가장 낮게 엎드려 있었지만 가장 높은 꿈들을 보았다. 우리는 말할 수 없이 느렸지만 금세 반민주 반노동자민중의 핵심에 도달했다. 하루하루가 더해가며 육체적 고통을 잊고 모두의 얼굴들이 환해지고 해맑아지던 비결들이었다.

그리곤 이제 다시 3차 행진에 나선다. 2월 5일부터 7일까지 국회에서 청와대로 향하는 2박 3일의 행진이다. 3차 행진에서는 어제부로 무기한 집단 노숙농성에 돌입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노동자 1000여 명이 앞장을 선다고 한다. 열 명으로 시작했던 행진이 금세 백배로 진화 발전했다. 민복을 다 구할 수가 없어 걱정이라고 한다. 밥은 어떻게 먹을지 걱정이라고 한다. 북소리가 안 들리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이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떨쳐 일어설 수라도 있으니 좋다고 한다. 무어라도 하지 않으면 끌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는데 잘됐다고 한다.

행진에 참여하는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은 대한민국 제일의 재벌들이다. 자본이 없어, 경영상의 위기가 있어 온갖 편법으로 비정규직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를 침몰시켰던 제1원인 중의 하나인 더 많은 이윤을 위한 사람 장사일 뿐이다. 하여 행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은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 재벌들은 모든 사내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라.' '대한민국 재벌이 보유한 사내유보금 800조 원을 사회에 환원하라.' '1% 자본가들만을 위한 박근혜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하라."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투쟁 승리를 위한 행진만 하는 것은 아니다. 2차에 함께 했던 쌍용차와 스타케미칼, 콜트콜텍 등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5일 오전 10시 목동 스타케미칼 본사 앞에서 별도의 행진을 해서 국회로 온다. 정리해고-비정규직 법제도 폐기를 위한 두 갈래의 행진이 국회에서 모여 청와대를 향한다. 경찰들은 아무런 기준도 없이 이 평화로운 행진을 막기 위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일 뿐인 집회 행진신고서마저 불허 통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경찰은 민복을 입는 게 왜 안되느냐 했더니, '민복은 과거 민란을 연상'케 해서 안 된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유일한 통보사유는 거리행진 시 교통방해라고 하는데, 그 까닭이라면 집회시위의 자유라는 헌법상의 권리는 그 어떤 도심에서도 존재할 수가 없다. 2차 행진 시에는 사복경찰들이 합법적인 행진 대열에 끼어 불법채증을 하다 발각되자 '오마이뉴스' 기자라고 사칭하는 무법도 있었다. 결국 서울경찰청장이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하기도 했다. 왜 이 정부는 이토록 평화롭고, 느리고, 비폭력적이며, 문화적이기까지 하는 이 오체투지 행진을 막지 못해 안달일까. 1000만에 다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로 조금은 안정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그토록 싫은 걸까. 굴뚝에 올라가 있는 노동자들이 내려오고, 정리해고제가 폐지되어 누구나 평범하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이 그렇게 두려운 걸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이며, 국가일까.

답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답을 내줄 사람들은 아무래도 우리 자신들뿐이다. 답이 없기 때문에 멈춰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답이 없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 함께 나서야 한다. 답은 절대 저들이 윤리적 차원에서, 시혜처럼 주지 않는다. 답은 우리가 만들고, 그 답의 주인도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 다시 한 점의 화살이 되어 이 부패한 사회의 핵심을 향해 나아가자. 시원을 찾아 솟구쳐 오르는 연어들처럼 저 근본을 향해 느리지만 정확히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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