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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신자유주의의 종말, 시작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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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신자유주의의 종말, 시작되다

[주간 프레시안 뷰] 그리스 총선의 의미

40세의 젊은 정치지도자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유럽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습니다. 그가 이끄는 급진좌파연합 '시리자'는 지난 1월 25일 치러진 그리스 총선에서 과반에서 2석이 모자라는 149석(36.3% 득표)을 차지하며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시리자는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정당으로는 처음으로, 국가권력을 장악한 것입니다. 그동안 금융위기의 전통적 해법으로 애용되며 무수한 민중의 삶을 옥죄어온 긴축정책에 대한 반대를 명확히 함으로써 '돈보다 사람' '이윤보다 생명'을 중시하는 정치세력입니다. 정치가 경제세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거부하는 정당입니다. 이번 시리자의 승리로 기본소득 도입 등 유사한 정치노선을 추구하고 있는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올해 말 치러지는 총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지난 35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 독재에 일대 균열이 시작된 것입니다.

시리자의 승리는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그리스 국민들의 삶이 완전히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정권이 경제권력의 부채 상환 요구에 순종한 반면 시리자는 인간다운 삶을 열망하는 국민들을 대변했기 때문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막대한 외채를 안게 된 그리스는 이른바 트로이카, 즉 채권자인 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사회복지 등 국가 재정지출을 대폭 줄이고 그 재원을 외채 상환에 돌렸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의 실업률은 25퍼센트(%), 특히 20대 청년의 경우 50%, 그리고 자살률은 2배로 뛰어올랐습니다. 이에 대해 시리자는 "그리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서 "그리스 국민은 불공정한 긴축정책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총선에서 그리스 국민은 시리자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리스 근현대사상 최연소 총리가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 신임 총리가 26일(현지시간) 아테네의 대통령궁을 방문해 카를로스 파풀리아스 대통령 앞에서 선서하고 있다. 치프라스 신임 총리는 과거 총리들이 그리스정교회식 선서를 했던 것과 달리 세속주의 방식으로 취임 선서를 했다.ⓒAP=연합뉴스

시리자의 지도자 치프라스는 26일 신임 총리에 취임했습니다. 우파 성향이지만, 긴축정책에 반대하는 그리스독립당(13석)을 연정 파트너로 택했습니다. 1월 27일에는 공산당 출신의 야니스 드라카사키스를 부총리로, 좌파 경제학자 야니스 바루파키스를 재무장관에 임명하는 등 연립내각을 구성했습니다. 연정 파트너인 그리스독립당의 파노스 카메노스 대표는 국방장관을 맡았습니다. 유럽중앙은행 등 해외 채권단들과의 부채 협상을 맡게 될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긴축정책의 강요는 재정적 물고문"이라고 주장해온 좌파 경제학자로 앞으로 채권단과 불꽃 튀기는 협상을 벌일 전망입니다.

취임 이후 치프라스 총리는 유로존 탈퇴나 채무불이행 등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앞으로 부채 협상에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공정하며 현실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한도 내에서 부채를 갚아나가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채권단을 대표하는 독일의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는 "부채 탕감은 꿈도 꾸지 마라"며 강경 자세를 보였습니다. 앞으로 있을 부채 협상을 앞두고 신경전이 시작된 셈입니다.

현재 그리스의 외채는 3200억 유로(약 393조 원)로 GDP의 175%나 됩니다. 치프라스 정부는 상당한 정도의 상환 연기, 그리고 지금처럼 국가재정의 일정액을 무조건 부채 상환에 쓰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의 성과에 연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1,2차 대전 중 독일이 짊어진 외채의 절반을 탕감해준 1953년 런던부채회의의 전례에 따라 그리스에게도 이와 유사한 혜택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전후 독일의 경제 기적은 바로 부채 탕감으로 가능했으며, 그리스의 부채 상환에도 같은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2차 대전 중 그리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이 강제로 빌려 간 부채 110억 유로를 갚으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독립당은 2차 대전 중 나치 독일이 그리스에 입힌 전쟁피해를 배상할 것을 주장합니다. 이 같은 주장은 무리한 요구로 비칠 수 있으나, 부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카드로 보입니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시리자는 외채 문제 외에도 다음 네 가지 정책을 주요 목표로 추구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보장입니다. 정부, 민간, 사회 부문에서 30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며 월간 최저임금을 현재 580 유로(약 71만 원)에서 751 유로(약 92만 원)로 올리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실업률이 50%에 이르는 20대와 장기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는 55세 이상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합니다.

둘째, 빈곤선 이하의 30만 가구에게 월 300킬로와트(kWh)의 전력을 무상으로 공급하고, 소득이 전혀 없는 30만 가구에게는 식량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난방용 연료에 대한 세금을 폐지하고, 직업이 없거나 의료보험이 없는 가정에는 무상의료를 제공하겠다고 합니다. 이를 위한 재원은 약 113억 유로로 선박업자 등 부자들의 탈세를 적발해 충당할 계획입니다.

셋째, 중산층에 대한 재산세 폐지입니다. 지난 2011년 전임 그리스정부는 외채 상환을 위해 중산층 소유의 주택에 재산세를 부과하는 임시 조치를 시행했는데, 이를 폐지하겠다는 것입니다. 대신 호화주택이나 여러 채의 주택 소유자에게는 세금을 거둔다는 계획입니다.

넷째,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입니다. 치프라스 총리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 출신으로 지난 해 러시아의 크림 합병에 대한 대응으로 유럽이 러시아에 부과한 경제제재를 강력하게 비난했습니다. 제재 자체가 잘못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러시아는 그리스의 주요 교역상대로 유럽연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로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치프라스는 지난해 5월 러시아를 방문했으며,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이후 외국 대사로는 러시아 대사를 가장 먼저 만났을 정도로 러시아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BBC는 치프라스 정부가 (미국 주도의) 나토를 탈퇴하지는 않겠지만, 이스라엘과의 기존 군사 협력은 약화, 또는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시리자와 치프라스, 어떤 세력 어떤 인물인가?

이쯤 되면 시리자는 과연 어떤 정치세력이며, 치프라스는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시리자의 집권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10여 년에 걸친 새로운 노선 추구와 치프라스의 참신한 지도력이 어우러져 이뤄낸 결과입니다. 시리자는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생태주의자·공산주의자·마오이스트(모택동주의자) 단체의 느슨한 연결조직으로 탄생했습니다. 그해 3월 총선에서 총 300석의 의석 중 6석(3.26% 득표)을 얻었고, 2009년 총선에서는 14석(5.04%),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무려 71석(17%)을 얻으면서 5위 정당에서 2위 정당으로 떠올랐습니다. 유럽중앙은행, IMF의 무리한 긴축정책에 대한 명확한 반대 태도가 주효한 것입니다.

치프라스는 1974년 7월 아테네 출신으로 공청 활동 등을 통해 정치력을 쌓아왔습니다. 그는 고등학생 때인 1991년 당시 우파 정부의 이른바 ‘교육 개혁’에서 맞서 학교 내 점거 농성을 주도해 정부의 양보를 이끌어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아테네의 국립기술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으나, 정치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2004년 시리자 결성에 참여했습니다. 32세 때인 2006년 아테네 시장 선거에 출마해 3위를 기록하면서 정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2008년 시리자의 지도자가 됐습니다. 2009년 총선에서 의회에 진출해 신자주주의적 긴축 정책에 강력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면서 국민들의 지지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의 긴축정책에 대해 "그들은 곧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라고 명령할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결코 경제권력의 하수인이 되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습니다.

기존 정치인들과는 달리 넥타이를 매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시민들과 어울리는 치프라스는 "새로운 세대의 상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번 총리 취임식에도 그는 넥타이를 매지 않았습니다. 또한 취임 후 역대 총리들이 참배하는 무명용사들의 묘가 아닌 레지스탕스 묘소를 방문했습니다. 사실 2차 대전 당시 그리스에서는 레지스탕스들이 용감한 반(反)나치 투쟁을 벌이는 등 좌파 세력의 집권이 유력했으나 '전후 그리스를 영국 영향권 하에 둔다'는 처칠과 스탈린의 밀약에 의해 좌파 세력이 처참하게 패퇴했고, 이후 군사독재에 시달려야 했던 아픈 과거를 갖고 있습니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서양사)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민주정치에서는 부채 문제가 사회 안정을 해칠 정도로 심각해질 경우에는 부채를 탕감해주는 제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채권자의 이익보다는 시민들의 삶과 사회 전체의 안정을 중시했다는 얘기입니다. 시리자의 이번 집권은 어쩌면 이러한 고대 민주주의의 전통을 되살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치프라스 정권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에 대한 부채 탕감이 중요한 선례가 되는 것을 경계하는 독일 등 주요 채권국들과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선박업계 등 그리스 내 기득권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또한 정부 운영 경험을 가진 이는 드라카사키스 부총리 한 사람뿐일 정도 경험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번 시리자의 집권은 그동안 '다른 대안은 없다(TINA)'은 없다며 신자유주의를 강요해왔던 거대 금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입니다. 또한 경제권력의 하수인 역할을 해왔던 유럽의 기존 중도 좌파 및 중도 우파 정치세력에게도 일대 경종이 될 것입니다.

지난 25일 총선에 시리자를 응원하기 위해 그리스를 찾은 스페인 포데모스의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35)는 시리자의 승리에 대해 "희망이 다가오고 있고, 공포가 물러나고 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포데모스는 현재 스페인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당입니다. 오는 5월의 지방선거, 그리고 12월에 치러질 총선에서 포데모스가 승리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이하 '뷰)가 새단장을 합니다.

'뷰'는 그동안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조합원과 프레시앙(유료 회원)에게 우선 제공됐으나, 오는 2월 5일부터는 독자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관점이 있는 칼럼'으로 전환합니다.

분야 별 필진은 '정치'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경제' 정태인 칼폴라니 연구소 창립 준비위원(前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 박인규 프레시안 발행인(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 '생태'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세월호'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대학원 교수입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2월 5일부터 바뀌는 '뷰', 많이 기대해 주세요. ('주간 프레시안 뷰' 페이지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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