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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노동자 치유자의 해고, 누가 치유할 것인가

[김민웅의 인문정신] "마인드 프리즘", 그 보이지 않는 적외선(赤外線)

설야(雪夜)의 도시, 뉴욕

폭설경보가 내렸다. "윈터 스노우스톰 이머전시(winter snowstorm emergency)"란다. 우리와 비교해서는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하고 다소 호들갑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나라의 대응태세라는 점에서 그리 우습게 볼 일은 아니다.

2015년 1월 27일 오전 도착한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은 은색의 풍경이 되어 있었고, 오후에 들어서자 맨해튼 시내는 눈발이 날리면서 점차 비어가기 시작했다. 혈류처럼 빠르게 흐르던 차량행렬이 모두 다 어디론지 홀연히 사라진 밤, 가로등이 즐비한 브로드웨이 한 복판에 서서 스마트 폰의 카메라를 연신 찍어대며 설야(雪夜)의 도시를 담아내는 것은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거리에 주차해놓은 차들은 눈 속에 파묻혀가고 있었고, 내 눈 앞에는 아주 예쁜 사진엽서 한 장이 마술처럼 나타난 듯 했다.

이국(異國)의 도시에 잠시 머무는 순간은 내가 익숙했던 그 모든 것들이 신기루처럼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사실 이곳에 살았던 세월이 30년이 가까운데, 다시 와도 외국의 낯선 기분을 뜻하는 이른바 "이그조틱(exotic)"한 감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건 아마도 한국에서 겪는 것과 같은 정치적 긴장과 경제적 대치상황을 마주하지 않는 데서 오는 여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건 잠시의 해방이기도 하고, 거리를 둔 조망의 유리함일 수도 있겠다.

카페 "에무"에서

사실 지난 며칠 나는 오바마의 신년연설이 부자증세와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기조로 하는, 불평등의 현실을 강력하게 치고 들어가는 기세에 깊은 인상을 받고 우리는 대체 어찌해야 하는 거지 하고 내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던 참에 쌍용차 관련 국민대회가 있었던 지난 24일 오후, 나는 출판사 <사계절>이 운영하는 카페 "에무"에서 심리치유 기업 '마인드 프리즘' 해고자인 치유활동가 김미성, 노조 지부장 박세영, 사무장 노미선 등과 함께 자리를 같이 했다.

사계절 대표 강맑실이 따뜻하게 맞아준 "에무" 공간은 "에라스무스"의 "에"와 "무"를 따왔다는데, "에무"는 에라스무스를 "애무"하라, 뭐 그런 뜻은 아니겠으나 그 이름대로 인간의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만한 분위기였다. "에무"의 지하공간에서는 <세상물정사회학>의 저자 아주대 노명우 교수가 5-60년대 한국영화 읽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날 영화는 김승호가 주연한 1960년 상영작 <로맨스 빠빠>다. 아, 그 영화라면 나도 한 마디쯤 하고 싶은 게 있지, 하고 속으로 빙그레 웃었다. 그런데 세상에, 어쩜 이러냐. 이 영화는 보험회사에 다니던 가장(김승호 역)인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겪는 가정사의 이야기니, 해고자 문제로 자리를 한 그날의 모임을 미리 알고나 있기도 한 것처럼 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로맨스 빠빠>에서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김승호가 아침마다 집에서 나올 때 꽃다발 한 아름을 안고 직장에 가서, 직원들의 책상마다 꽃을 꽂아주는 당시로서는 보기 드믄 아주 다정한 중년남자의 모습이다.

1918년생이었던 그가 1968년 나이 50세에 타계했으니 지금으로 치면 아주 젊은 때인데, 그때는 그 정도의 나이가 꽤나 무거웠던 시절이었다. 영화에서는 40대 초반에 50대의 연기를 했는데, 가족경제를 책임지는 가장의 실직 내지 해고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족 모두에게 고통의 시작이다.

▲치유활동가 김미성(왼쪽) 씨와 필자 ⓒ김민웅

치유활동가 김미성

스무 명 이상의 자살자가 생겨난 쌍용차 해고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가족들은 모두 심리적인 탈진상태에, 재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난감한 처지와 깊은 상처로 아파하고 있다. 김미성은 이런 이들을 위한 치유작업에 나선 40대 중반의 활동가이다. 그리고 혼자서 두 딸을 기르는 싱글 맘 가장이기도 하다.

"제 자신, 정신적 상처로 고통스러워 할 때 치유를 받은 경험이 저를 이리로 이끌었어요."

해고자들의 심리치유 전문기업인 ‘마인드 프리즘’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기 전부터 김미성의 활동경력도 그렇고 역량도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은 위한 '와락'에서의 주목되는 활동만이 아니라 밀양, 강정 등을 비롯해서 사회적 위로와 치유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해고 소식이 알려지자 사방천지에서 그녀를 격려하고 있는 까닭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보건의료 노조에 속한 신생 '마인드 프리즘' 노조의 사무장 노미선이 옆에서 거든다.

"미성 언니는 한 사람 한 사람 그 개인에게 몰두해요. 집단치유의 과정에서도 그런 태도가 사람들에게 호감과 친밀감을 갖게 하는 것 같아요. '마인드 프리즘'에 입사했을 때 이미 프로였어요."

알고 보니 노미선은 김미성이 속한 팀의 팀장이었다. 김미성에 대한 피치유자들의 평가는 매우 높았다고 한다. 박세영과 노미선은 모두 정규직으로, 김미성 해고사건 이후 노조를 결성하고 계약직 보호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러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이들이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간 노조도 없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냐는 질문에, 말이 별로 없던 지부장 박세영이 조심스럽게 답한다.

"그러게요. 좋았던 시절에 도리어 노조를 만들었어야 하는데, 노조 없는 회사가 도리어 자랑스럽기도 했어요. 노조 없이도 노사 간에 모든 게 다 잘 굴러간다고 생각했던 거죠."

노미선이나 박세영 둘 다 노동운동은 처음이다. 자신들이 현실에 대해 너무 순진했다는 자성을 토로한다. 순진? 그럴까? 이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이들에게 책임이 있는 거지. 인간이 순진하면 순수한 거고 그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우리를 자꾸만 악다구니를 쓰게 만든다.

"그래서 노조결성 이후 사측과 대화하고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도 하나의 치유가 되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서로 더는 상처 입지 말구요."

이구동성(異口同聲)이었다. 그래, 그렇게 되어야지. 그러나 이것 역시 상대가 있는 법이니, 그 쪽이 어떻게 나오는 가에도 달려 있는 문제다. 사실 언제나 이게 더 문제였다.

보건의료노조의 슬로건은 "돈보다 생명을!"이다. 이윤을 앞세워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나 보건의료 노조가 요청하는 강연을 갈 때마다 나는 이걸 하려면 우리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들의 돈은 이윤을 앞세우는 탐욕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돈은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마인드 프리즘' 노조원들도 정신건강과 생명에 대한 치유활동을 하는 이들이지만 이들에게도 역시 돈은 소중한 권리문제가 된다. '마인드 프리즘' 노조도 이런 주장을 강하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집단 치유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사회

- 해고자들을 치유하는 치유자로서, 자신이 막상 해고자가 되니 어떠하든가요?

해고자가 된 상대에게 이게 맞는 질문인가? 그래도 알고 싶었다. 해고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해고자의 삶을 절실하게 격지 못했다면, 김미성이 그간 해왔다는 치유도 뭔가 현실과 괴리가 있지 않을까. 물론 해고자가 꼭 되어야만 해고자를 위한 치유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해고자분들을 보면서 저런 현실이 내게는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너무도 힘드니까요. 치유가 단지 심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구조적으로 풀리지 못하면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니까. 해고자가 된 후 더 절실하고 절박해졌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심리 치유자들의 역할이 보다 더 소중해지고 있다고 느껴요. 문제가 현실적으로 해결되기 전에도 여러 가지 극복하고 정리해나가야 할 바가 많으니까요. 이게 좀 더 제대로 인식되었더라면 쌍용차 해고자들의 자살도 막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을 거에요."

그렇다. 맞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이런 집단 심리 치유활동은 공적 기여의 가치를 갖는 일이다. 그런 역할을 하는 치유자를 경영상의 부담을 들어 일차적으로 해고해버리는 기업과 이를 방치하는 사회는 집단적 상처의 심화를 자초하는 곳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다가가나요?

이에 대한 대답이 이채로웠다.

"상대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우선 제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본래 한 공동체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하늘의 소리를 듣는 샤만도 이러했다. 자기 마음부터 열리지 못하면, 그 다음은 자칫 억지를 부리는 인위적 기술에 불과해진다. 사만의 공식적 자리가 사라진 오늘날, 치유로 번역되는 "힐링"은 많은 이들에게 절실한 위로의 손길이 가진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교황 프란치스코에 대한 존경과 열망은 그걸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요즘은 어떻게 생활을 해결하느냐고 묻자, 해고자가 된 처지의 김미성을 부르는 곳은 많은데 돈은 주려들지 않는단다. 물론 그녀의 자세한 사정을 몰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대부분 재능기부 요청이다. "재능기부"라는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 야박하고 약탈적인 느낌을 주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아픔을 나누고, 힘이 되어주고 그런 일들이 밥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기뻤어요. 생활에 불안을 느끼면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좋아하고 보람을 느끼면서 그것이 생활을 해결해주기도 한다면, 직업으로서는 최선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그런 상황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마인드 프리즘' 사측에서 협상을 위한 일종의 휴전을 제안했다고 한다.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아직 모든 것이 불투명하단다.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절감하게 된 것은 역시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함께 나서주는 이들의 존재가 갖는 귀중함이다.

마인드 프리즘의 비밀

-'마인드 프리즘'이라는 이름의 뜻이 뭔가요?

"마음을 그냥 보면 그 안에 담긴 다채로운 색깔들을 알 수 없잖아요. 빛을 프리즘을 통과시키면 굴절효과로 내면에 은폐되어 있던 색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거죠. 그처럼, 마음의 문제도 자신 스스로 그걸 보면서 치유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이 말에 담겨 있어요."

아, 그런 거로구나. 좋은 이름이네.

그렇다면, 그녀는 이번 일로 자기를 해고한 경영진, 그리고 자신과 함께 해주는 동료들의 마인드 프리즘에서 무슨 색깔을 보았을까?

김미성은 경영진이 책임져야 할 일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상황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왔다고 한다. 그녀의 해고는 이러한 태도에 대한 사측의 대답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제3자에게도 들 만 하다. 쌍용차 해고자들과 세월호 유가족들의 치유활동에 나선 정혜신 박사가 설립한 이 회사는 이제 그녀가 떠난 이후 그간의 경영문제누적, 새로운 경영진의 대응방식에 따라 유능한 치유활동가의 해고라는 사태 앞에서 흔들리고 있다. 치유활동가에게 상처를 주는 치유전문기업은 자기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역설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정혜신 박사도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긴 했으나, 이 사건에 대해 나름의 역할을 하면 어떨까? 치유사업의 윤리적 차원에서 말이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프리즘은 그걸 통과해도 보이지 않는 적외선과 자외선의 존재를 우리에게 일깨운다. 사측으로 보자면 치유활동가에 대한 해고는, '마인드 프리즘'의 보이지 않은 스펙트럼에 속한 본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이 단순히 계약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로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의 지속적인 주목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인간이 겪는 고통을 덜어주는 일에 역할을 하는 이들마저도 이런 식으로 잘려나간다면, 그런 사회는 날이 갈수록 야비해지거나 또는 황폐해질 따름이다.

그렇지 않아도 도처에서 정치-경제적 폭설 경계보가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도 소득불평등과 부당해고, 실직, 무직 등의 현실은 우리사회의 근저를 동요시키는 위기다.

그런데 아무런 조처도 제대로 취하고 있지 않은 정치와, 그걸 계속 악용하고 있는 경제의 주도세력은 한 가지 영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국민들의 마인드 프리즘에도 저들이 보지 못하고 있는 적외선, 자외선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온도까지 있어서 현실을 알게 모르게 변모시킨다.

봄이 되어도, 때로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있으니 그건 겨울이 봄을 시기해서 난데없이 침범해 들어왔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함이다. 그러고도 그 눈 더미를 헤쳐 나오는 봄이 진정 봄이렸다. 아닌가? 치유활동가 김미성과'마인드 프리즘' 노조도 그런 계절의 주인공들이 되기를 뜨거운 마음으로 기원하는 마음이다.

아, 아까 스타벅스 커피샵 아직 문 열지 않았던데, 지금쯤은 열었겠지?

눈발 좀 날렸다고 지하철까지 끊겼던 뉴욕의 아침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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