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미국이 쐐기를 박는 느낌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거론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는 22일 유튜브 운영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시간이 지나면 북한 정권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가 북한 붕괴를, 그것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그 파장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그가 북한 붕괴의 수단으로 강조한 것은 인터넷을 비롯한 정보 침투이다. "인터넷이 그 나라에 침투할 것이고 그러면 잔혹한 독재정권이 이런 세상에서 유지되기 어렵다"며 "이것이 우리가 가속화할 수단으로 끊임없이 찾아온 방법"이라는 것이다. 군사적 해법이나 제재보다는 정보 침투가 북한 붕괴를 유도할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의미이다.
다섯 가지 우려 사항
이러한 오바마의 발언은 다섯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먼저 남은 임기 2년간 북한에 대한 '악의적 무시'가 계속될 공산이 커졌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전략적 인내'로 표현되어왔다. 그런데 그 의도가 북한 붕괴에 있다는 점을 오바마가 밝힘으로써 대화와 협상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진 것이다.
이는 부시 행정부 2기 때와도 명확히 비교된다. 임기 2년을 앞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변화에는 전쟁광으로 역사에 기록되길 원치 않았던 부시 자신의 생각의 변화가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대통령의 인식 변화가 네오콘의 몰락 및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를 중심으로 한 대북 협상파의 부상과 맞물리면서 제2의 북·미 관계 황금기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오늘날 오바마 행정부에게는 이러한 변화의 씨앗을 발견하기 힘들다. 오히려 종말론적인 대북 인식에 함몰돼 대북 강경 자세를 보다 분명하게 하고 있다.
둘째 북한이 '남방 정책'에 흥미를 잃게 될 공산이 커졌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남한은 물론이고 미국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해왔다. 그런데 남북대화는 여러 가지 악재 및 양측의 기 싸움과 맞물려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적대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표출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동기가 위축될 전망이다. 미국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박근혜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별로 없다고 여기면서 말이다. 대신 러시아와의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한편, 냉각기로 접어든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셋째 박근혜 정부의 운신 폭도 좁아질 전망이다. 당장 남북관계의 최대 걸림돌인 5.24조치 및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박근혜 정부는 명확한 신호를 보내기보다는 좌고우면(左顧右眄)을 계속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대북 제재 및 압박 의사를 보다 분명히 밝힘으로써, 한미공조를 가장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하기가 더욱 힘들어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넷째 대북 전단 살포가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최근 국내 일부 탈북자 단체는 미국의 인권재단과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 살포 계획을 분명히 하고 있다. 무인기까지 동원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대통령이 북한 내에 정보를 침투시켜야 할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섰다. 대북 전단 살포를 둘러싼 남남갈등, 남북갈등, 북·미 갈등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음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끝으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중 간의 갈등도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안 그래도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e) 전략이 자신을 봉쇄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의심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한편으로는 한미일 3각 동맹에 박차를 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붕괴를 유도하려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국의 대미 불신은 더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미국의 북한 붕괴 유도가 가장 큰 전쟁 위험
안타깝게도 오바마의 대북 인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기보다는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더욱 안 좋은 방향으로 굳어지고 있다. 북한에게 개혁개방을 요구하면서 그 결과 늘어나게 될 정보 유입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곧 개혁개방을 하지 말라는 말과 마찬가지이다.
오바마는 "군사적 해법"을 반대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한미 양국은 북한 정권 붕괴 시 한미연합군을 투입해 무력 흡수통일을 달성한다는 작전계획 5029를 갖고 있다. 이건 곧 북한에게 핵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대통령이 북한 붕괴를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더욱 난망한 일이 아니겠는가?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발언은 한국 국민을 포함한 한반도 주민의 안전과 생명을 아랑곳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군사적 해법은 답이 아니"라고 하면서 "한국이 옆에 있으니 전쟁이 나면 심각하게 피해를 입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유도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전쟁 위험이다. 미국 정보기관조차도 북한 정권이 붕괴 위험에 처할 때,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지 않던가?
결국 미국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과 정책을 바꿔야 할 주체는 남북한이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 붕괴론'의 비현실성과 위험성을 오바마 행정부에게 분명히 전해야 한다. 대북 삐라 살포 규제 및 금강산 관광 재개, 그리고 5.24조치 해제와 관련해서도 용단을 내려야 한다. 북한 역시 이런저런 조건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남북대화에 적극 임해야 한다. 앞선 글에서 권고한 것처럼 무조건적인 핵실험 유예 선언으로 스스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 (☞관련기사 : 북한이 '신의 한 수'를 둔다면…)
이제는 남북한이 미국의 분할통치(divide and rule) 구도에서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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