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격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보육 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연일 뉴스를 오르내리고 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주먹구구식 대책 내놓기'가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에 할머니들을 배치해서 감시하게 한다는 창조 경제급 대책도 나왔다. 며칠째 인천 지역 엄마들이 거리 시위를 하고, 부모, 보육 교사, 각 분야 전문가 등이 어린이집 폭력 근절을 위한 대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관련 기사 : 복지의 공공성 : '처벌'과 '시장'을 넘어)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질 높은 돌봄을 받는 것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이것이 가능할까? 완벽한 답안은 아니겠지만, 실마리를 제공하는 연구 결과를 소개해볼까 한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멜버른 대학교 코르 교수 팀은 <국제정신건강증진학회지(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Promotion)> 2014년 16권 4호에 아동 돌봄 제공자의 정신 건강과 보육의 질을 다룬 연구들을 종합한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 팀은 1980년부터 2012년까지 발표된 총 390편의 논문을 살펴본 후, 질과 적합성을 고려하여 최종 18편의 논문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분석 결과, 전반적으로 어린이 돌봄 제공자 중에서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비율은 낮았지만 직무 스트레스는 매우 중요한 문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의 노동 조건은 정신 건강 상태와 깊은 관련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료나 어린이, 어린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전문적인 지원이나 올바른 인식이 부족한 경우, 고립되거나 저임금인 상황이 정신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당연히 동료, 어린이, 부모들과 양질의 지지 관계를 가지고 있을 때 정신 건강 상태가 좋았다. 한편, 돌봄 제공자들의 정신 건강은 보육 서비스 질과 관련이 있었는데, 연구 자체가 충분치 않아서 뚜렷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분명한 것은, 돌봄의 질이 높은 경우에 돌봄 제공자들의 정신 건강도 좋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론이다. 소위 '멘탈 갑'이 아닌 이상,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사랑만으로 다른 이들을 돌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돌봄 제공자들에게도 고통이다.
이런 면에서, 정부가 CCTV 설치를 확대하고 보육 교사의 인성/적성 검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려스럽다. 검사만으로 누가 아동 학대를 저지를지 미리 알 수만 있다면, 부모들도 다들 검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아동 학대가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곳이 가정이니 말이다. 또 CCTV가 그렇게 효과적인 예방 수단이라면 담당 공무원의 책상 위, 국회 의원실, 정치인의 집무실에도 CCTV를 설치해서 그들이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시민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하자. 잘못한 게 없으면 눈치 볼 것 없다며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강심장은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 사회는 구조적 문제를 예외적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그 '예외'를 색출해내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2013년 보육 통계에 따르면, 2013년까지 발급된 보육 교사 자격증은 총 91만3409건인데, 실제 보육 교사 종사자는 21만2332명에 불과했다. (재)한국보육진흥원은 2014년 현재 보육 교사 자격증 소지자 중 현직에 종사하는 사람의 비율이 1급 27.0%, 2급 23.3%, 3급 31.8% 라고 밝혔다. 허술한 양성 과정을 통해 자격증을 남발해 놓고, 열악한 노동 환경은 방치한 채 그저 CCTV 설치를 확대한다는 것은 예방책이라기보다 덫을 놓고 처벌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모양새다.
작년 말,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보육 교사 부당 임금 지급과 관련한 무죄 판결 사례가 있었다. 보육노조(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성명에 의하면 대구 'ㅁ' 어린이집이 보육 교사를 서류상으로만 채용하고 임금을 지급한 것처럼 해서 정부의 지원금을 착복한 사건이었다.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적발해서 이를 고발했는데, 1심 재판부가 벌금 150만 원을 선고했음에도 2심에서 무죄 판결이 났다. 교사 수가 허위로 보고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일하는 교사들은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은 어린이들을 돌보아야 했고, 당연히 보육 교사와 어린이 모두에게 고통이 전가되었지만 이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판례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일부 보육 시설에 준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린이에게 안전하고 질 좋은 보육 환경을 제공하고 싶다면 보육 교사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이 폭력적이어서는 안 된다.
참고 자료
Corr L, Davis E, Lamontagne AD, Waters E, Steele E. (2014). "Childcare providers' mental health: a systematic review of its prevalence, determinants and relationship to care quality". International Journal of Mental Health Promotion. 16:4. 231-263.
2013년도 4사분기 보육교직원 국가자격통계, (재)한국보육진흥원.
2014년도 4사분기 보육교직원 국가자격통계, (재)한국보육진흥원.
2013년 보육통계, 보건복지부.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 성명서, 2014년 12월 21일, "비리와 불법으로 국민의 세금이 줄줄이 세고 있다"
'서리풀 논평', 2015년 1월 19일, "복지의 공공성 : '처벌'과 '시장'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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