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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민은 '땅굴'에서나 살라는 말인가?

[초록發光] 우리에게 지상을 돌려다오

우리에게 지상을 돌려다오

터키에는 수많은 지하도시가 있다. 그 중 데린쿠유(Derinkuyu)가 압도적인 규모로 주목을 받고 있는 지하도시다.

지하 8층 규모인 깊이 85미터에 최대 5만 명 수용이 가능했고, 학교와 종교 시설, 침실, 부엌, 우물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시설도 있었다. 심지어 최초 시설은 기원전 8~7세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전해지는 시설은 대부분 5~10세기 사이의 것이라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조성 시기만 따지자면 또 하나의 불가사의인 페루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보다 앞선다.

데린쿠유는 종교적 박해를 피하거나 외부의 침입에 대비하고자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비상 시 통로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돌덩이가 설치되어 있다. 또 길은 모두 미로처럼 얼기설기 뚫어놓은 다음, 자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기호를 표시해 놨다. 데린쿠유가 1960년 한 농부가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알려졌다는 건 지하도시 특유의 폐쇄성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방증이다.

그런데 종교적 박해나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피하기 위해 조성됐던 지하도시가 이제는 관광을 위해, 생활편의를 위해 조성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몬트리올의 지하도시(Montreal's Underground City)다. 이 지하도시는 1960년대에 몬트리올 시내의 쇼핑 지구로 처음 조성되었는데, 지금은 총 길이 32킬로미터에, 지하철 7개역과 연결되어 있다. 면적은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고, 외부 연결 통로가 천 수백여 세대의 아파트와 연결되기 때문에 굳이 지상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다. 2006년에 일이 있어서 방문했을 때 길눈이 밝기로 소문난 나도 한참을 헤매야 할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몬트리올 지하도시가 조성된 이유는 혹독한 북미 지역의 기상 특성 때문이었다. 몬트리올은 12~1월 사이에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고, 최저 기온 평균이 영하 20도에 육박한다. 지상에서의 생활이 불가능하니 이를 극복하고자 지하도시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추운 날에는 몬트리올 지상에서 사람을 보기 쉽지 않다. 대부분 지하도시에 머물기 때문이다. 자연환경과 오랜 문화가 새로운 생활환경을 만들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환경이 빚어낸 어쩔 수 없는 산물이라고 해도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 있는 건 아니다. 몬트리올 지하도시 역시 조성 초기에 상하수도, 환기, 조명, 안전 문제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났다. 지금은 안정화되었다지만, 이는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쏟아 부어 문제를 해결했다. 그나마 에너지를 더 소비하더라도 겨울철 생활공간 확보 등 사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그런 판단이나 근거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될까?

▲ 터키의 고대 지하도시 '데린쿠유'. ⓒwikimedia.org

서울시와 종로구는 광화문과 종각역을 잇는 지하 연결 통로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광화문 4거리에서 종로구청, 종각역까지 지하로 도보 이동이 가능하다. 아직 언급이 되고 있지는 않지만, 인근에 도보로 이동 가능한 역사만 해도 경복궁역, 종로3가역, 안국역 등이 더 있다는 걸 감안하면 왠지 계획이 여기서 끝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실제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몬트리올의 언더그라운드 시티에 버금가는 지하도시를 구상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막대한 추진 비용과 함께 안전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오면서 계획은 백지화됐지만, 어째 이게 전면 백지화가 된 것은 아니란 느낌이 든다. 개미굴처럼 조금 조금씩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서울 전역의 지하상가 규모는 14만6646제곱미터에 달한다. 국제 규격 축구장 면적(7140제곱미터)의 20배가 넘는다. 서울 302개 지하철역 및 민간 건물까지 포함하면 전체 지하상권 면적은 30만 제곱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거기에 현재 제2롯데월드를 중심으로 잠실역 부근의 지하 구역은 여전히 넓어지고 있고, 양천구청은 목동 재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재개발 지역 거의 대부분을 지하공간으로 잇는 지하도시 구축 계획을 포함시켰다.

서울 중구 역시 세운상가 일대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하 7층 깊이의 공간 활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계획은 이혜훈 서울시장 예비후보 공약에도 등장했던 것이다. 또 서초구가 2호선 강남역과 9호선 신논현역 사이를 이으며 축구장 5배 크기의 지하도시 건설을 표방했고, 지금은 무산됐지만 용산 국제 업무 지구에도 지하도시를 만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서울이 지하에 위치한 도시가 되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지하도시의 필요성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우리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건 아닐까 생각해볼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지나치게 넓은 지하 공간 개발에 따른 안전성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지하도시를 추진하는 필요성에 설득력이 부족하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광화문 일대 지하도시를 추진하는 건 "도시 공간 활용도와 시민의 보행 편의도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세종대로 일대 역사 문화 특화 공간 수립"을 위해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사업 추진을 위한 변명이 되고 말 것이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 문화 공간이 모두 지상에 있는 상태에서 굳이 지하로 들어가 시설물 관람을 할 사람은 많지 않고, 그 지하 공간은 상업 시설로 지정되어 소비를 위한 공간이 되고 말 가능성이 높다. 또 시민의 보행 편의도를 높이겠다고 하지만, 지상에는 차가 다녀야 하니 사람은 지하로 다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왜 내가 햇빛 드는 지상은 자동차한테 양보하고, 굳이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 발길을 재촉해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다.

몬트리올 언더그라운드 시티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혹독한 날씨 때문이었다. 또 지하 공간을 만들면서 채광 시설이나 에너지 문제를 충분히 고려하여 이를 적용하였다. 하지만, 이미 지상 개발이 끝난 서울은 채광창 하나 놓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인적 물적 포화 상태여서 최악의 에너지 소비량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막대한 에너지와 비용이 필요한 지하 공간을 더 만든다는 건 소비 지향적인 사회 문화에 대한 반성이 없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조잔한 분함도 한 몫 한다. 왜 내가 금전적으로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지상을 양보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차량 이용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왜 교통권과 보행권까지 양보해야 하는지 나는 백 년 가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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