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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서 보낸 SOS…쌍용차 해고자들의 '프리클라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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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서 보낸 SOS…쌍용차 해고자들의 '프리클라이밍'

[기자의 눈] '밥줄'까지 끊어낸 굴뚝 농성, 해고자들 '맨손' 잡아야

한국시간으로 15일 오전, 두 사내가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수직암벽 엘 캐피턴(El Capitan)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들이 오른 '돈월(Dawn Wall·새벽 직벽)'은 해발 2300미터의 엘 캐피턴봉에서도 최고난도로 꼽히는 곳으로, 이들은 도구의 도움없이 맨 손으로 암벽을 타기 시작해 19일 만에 등정에 성공했다.

그들이 '프리클라이밍(맨손 등정)'을 시작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달 13일 새벽, 또 다른 두 명의 사내가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안 70미터 굴뚝 위에 올랐다. 6년 전까지 이 공장 안에서 일했던 이들이다. 그리고 두 명의 미국 청년이 맨손 암벽 등반에 성공한 날, 이들은 굴뚝 밑과 연결된 '밥줄'을 묶었다. 줄은 식사와 물, 비상약과 방한용품 등을 고립된 굴뚝 위로 올려주는 유일한 선이었다. 이제 70미터 굴뚝 아래와 연결된 어떤 끈도 없다. 이들 역시 '맨손'이다.

ⓒ굴뚝일보

"그런 경험 있어요? 왜, 팥죽 먹을 때 새알은 일부러 안 먹잖아요. 나이 먹기 싫어서. 그런 거에요. 이곳에서 까치집을 짓고 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려고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밥줄은 묶은 것은, 굴뚝에서 보내는 구조 신호에요. 빨리 이곳에서 우리를 내려 달라는…."

쌍용차의 최대주주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평택공장에 다녀간 14일, 자정에 가까운 시각. 휴대전화 너머로 굴뚝 위의 냉기가 전해졌다. 굴뚝 농성 34일차를 맞은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마힌드라 회장과의 면담으로 대화의 빗장이 열린 만큼, 회사가 빨리 대화에 나서 해고자들에게 고통의 시간을 하루빨리 끝내 달라"고 했다. "점점 익숙해진 이 공간이 무서웠고, 그래서 낯설게 만들어야 했다." 이들이 밥줄을 묶은 이유다.

밥줄에 걸린 'Let's Talk'

마힌드라 회장의 공장 방문이 예정된 이날 아침, 굴뚝 농성자들은 끌어올린 줄로 밥 대신 피켓을 매달았다. 'Let's Talk(대화합시다)'. 찬바닥의 냉기를 막아주던 은색 깔개에, 청테이프로 쓴 글씨다. 이날 쌍용차 인수 이후 처음으로 해고자들을 만난 마힌드라 회장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지상과 연결된 끈은 사라졌지만, 70미터 허공 위에서도 배터리는 부지런히 움직여 굴뚝의 목소리를 지상으로 전했다. 영어와 힌디어로 쓴 메시지가 마힌드라 회장의 트위터로 전송됐다. "주인없는 26켤레의 신발을 보았나", "그 신발의 의미를 아는가."

비슷한 시각 지상의 동료들은 "그 사람의 신발을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인도 속담이 적힌 현수막과 낡은 신발들을 챙기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세련됐던 쌍용차의 신차 발표회 행사장 앞, 낡고 뒤틀린 신발 26켤레가 가지런히 놓였다.

"쌍용차엔 주인 잃은 26켤레의 신발이 있습니다. 공장을 걷던 낡은 작업화와 운동화입니다. 욕실에서 사라진 동료의 슬리퍼도 있고 신발장에 남겨진 아내의 구두도 있습니다. 주인 잃은 목발과 여름날 신던 고무신과 용접불 맞아 구멍 난 안전화, 막노동 공사판의 시멘트 묻은 운동화도 있습니다. 모두 26켤레입니다. 저 하늘의 반짝이는 별처럼 보석같은 동료들입니다. 제 곁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12일 이창근 트위터(@Nomadchang))

ⓒ프레시안(선명수)

신차 '티볼리' 출시에 맞춰 방한했던 마힌드라 회장이 돌아갔다. 해고자 복직의 전제 조건으로 '신차의 성공'을 내걸며 즉각적인 복직엔 난색을 표했지만, 어쨌든 중단됐던 대화의 물꼬는 트인 셈이다. (☞관련 기사 : 쌍용차, 해고자 이용해 '티볼리'만 팔겠다?)

굴뚝 위의 이창근 실장이 마힌드라 회장에게 보낸 수백 개의 트위터 메시지 중, 마힌드라 회장이 유일하게 답한 메시지는 "Let's Talk" 하나 뿐이었다. 이 실장은 각각 다른 사진이 첨부되고 'Let's Talk'이라고 적힌 여러 개의 메시지를 보냈는데, 유독 울고 있는 그의 아들 사진이 첨부된 메시지에만 반응을 했다. 마힌드라 회장은 "공장 안에 있다. 기꺼이 만나겠다(I am in the plant. I am happy to meet you.)고 썼다.

"왜 내가 보낸 수백 개의 메시지 중, 왜 하필 여기에만 답했을까요. 이제는 우리 눈물을 닦아주겠다는 것 아닐까요?"

수화기 너머 이창근 실장이 반문한다. 6년 동안 26명의 동료를 잃으며 거리에서 버텨온 그들은, 화려한 신차 행사장에 초대받지 못한 채 낡은 신발만 붙잡고 있던 그들은, 또 미련할 정도로 이 한 마디에서 '희망의 근거'를 찾는다.

70미터 굴뚝에서 보내는 SOS

이날 오전, 이창근 실장의 트위터 타임라인엔 '돈월(Dawn Wall)' 등반에 성공한 미국 두 청년의 사진이 올라왔다. 이들의 등반 성공 소식을 전하는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리트윗한 것이다.

이날 세계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등반에 성공한 미국 청년 케빈 조르게슨은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등정 성공을 보고 사람들이 각자의 '돈월(Dawn Wall)'을 찾는 영감을 얻길 바란다. 우리는 이번 등반을 천천히 그러나 확신을 가지고 해 왔다. 모든 사람에게 언젠가는 완주하고 싶은 각자의 '돈월'이 있을 것이다. 그걸 각자의 상황에 맞게 추진하면 된다. (I hope it inspires people to find their own Dawn Wall, if you will. We’ve been working on this thing a long time, slowly and surely. I think everyone has their own secret Dawn Wall to complete one day, and maybe they can put this project in their own context.)"

ⓒ이창근 트위터(@Nomadchang)

이창근 실장은 <뉴욕타임스>에 "안전 로프없이 당신이 '돈월'에 올랐다면, 나는 밥없이 이곳에서 저항할 것이다. 나의 '돈월'을 완수하겠다. 영감을 줘서 고맙다고 케빈에게 전해 달라"고 썼다.

굴뚝 위로 올라간 밥줄이 다시 내려오지 않은 지 벌써 이틀째다. 비상 식량으로 버틴다고 했지만, 그래봐야 육포 몇 장과 약간의 생수, 끓여먹을 물도 없는 라면 몇 개 뿐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맨손'인 이들에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다.

정리해고 6년, 굴뚝 농성 34일. 두 명의 등반가가 엘 캐피턴 등반을 준비하던 6년 동안, 쌍용차 해고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시간 6년을 거리에서 보냈다. 지금은 70미터 허공에서 줄에 밥 대신 'Let's Talk'이라고 쓰인 팻말을 걸고 맨손으로 버티고 있다. 70미터 굴뚝에서, 지상으로 내려보내는 구조 요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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