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7월 18일에 2015년부터 쌀시장을 관세화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쌀의 관세화 전환은 사실상 쌀의 전면개방을 의미한다. 관세화로 전환하는 2015년부터 한국은 매년 약 40만 9000톤에 달하는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고, 여기에 추가하여 의무수입물량 이외에도 누구든지 정해진 관세만 부담하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쌀 수입이 자유화된다.
쌀 수입자유화는 현재의 부분개방 상태와 대비시켜볼 때 쌀을 완전히 개방하는 것과 같다. 현재는 매년 일정한 의무수입물량만 수입하고, 그 외의 쌀 수입은 법에 의해 금지하고 있다. 즉, 지금은 쌀을 완전히 개방한 것도 아니고, 개방을 전혀 하지 않은 것도 아닌 부분적으로만 개방한 상태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의무수입물량 이외에도 누구든지 관세만 부담하면 자유롭게 쌀을 수입할 수 있도록 자유화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부분개방과 비교하여 전면개방이라 부르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관세화 방침을 지난 9월 3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하면서 관세율을 513%로 정한다고 발표했다. 지금 정부가 통보한 내용에 대한 WTO 회원국들의 회람이 진행되고 있는데, 올해 말까지 어느 한 국가라도 이의를 제기하게 되면 2015년부터는 주요 이해 당사국과 검증절차에 들어가게 된다. 검증절차는 곧 쌀에 대한 협상을 의미하며, 그 기한이 특별히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일본의 경우 23개월이 걸렸고, 대만은 57개월이 걸렸다는 선례만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검증절차, 쌀 협상이 완료되면 최종적으로 쌀의 관세율이 확정된다.
그러나 1월 1일부터는 일단 한국이 통보한 513%의 관세율이 적용되어 쌀 수입자유화가 이루어지고, 추후에 협상을 통해 관세율이 최종 확정되면, 그 이후에는 협상에서 확정된 관세율이 적용된다. 결국 정부가 WTO에 통보한 사항을 스스로 철회하지 않는 이상 올해부터는 관세화로 전환될 것이며, 앞으로는 관세가 우리 쌀을 보호하고 식량 주권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보호 장치로 남게 되었다.
정당한 현상유지 권리를 스스로 포기
정부의 쌀 전면개방 결정이 갖는 첫 번째 문제점은 우리나라의 정당한 권리인 '현상유지'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농민단체가 쌀 개방의 대안으로 제시했던 현상유지(standing still)란 것은 현재의 부분개방 상태를 2015년 이후에도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계속 유지하자는 것이다.
이 주장의 근거는 WTO 농업협정문의 의무를 모든 회원국이 형평성 있게 이행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농업협정문은 모든 회원국의 의무이행 기간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선진국은 6년(1995∼2000년)간 관세 감축, 보조금 감축 등과 같은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개발도상국은 10년(1995∼2004년)간 의무를 이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WTO 회원국은 각각 6년 내지 10년의 의무를 모두 이행했다. 그리고 이들 모든 회원국은 지금까지 현상유지를 해오고 있다. 즉 선진국은 추가적이고 새로운 개방조치 없이 2000년의 개방수준을 현재까지 14년 동안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다. 개발도상국도 추가적이고 새로운 개방조치 없이 2004년의 개방수준을 현재까지 10년 동안 유지해오고 있다.
그런데 개발도상국 지위를 받은 한국의 쌀은 최초 10년(1995∼2004년) 동안 의무수입물량(MMA)을 연차적으로 증가시키는 의무를 이행하였고, 여기에 추가하여 새로 10년(2005∼2014년) 동안 의무수입물량을 두 배로 늘리는 의무를 추가로 이행하였다. 만약 올해부터 쌀을 관세화로 개방한다면 한국은 또다시 쌀에 대해 추가적이고 새로운 개방조치를 한 번 더 이행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현상유지는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무이행의 형평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미 20년에 걸쳐 의무를 이행한 것도 모자라서 또다시 관세화 개방과 같은 추가적이고 새로운 개방조치를 취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다른 모든 회원국과 같이 현상유지를 하자는 것이다. 현상유지는 특혜 요구가 아니라 회원국으로서 한국의 정당한 권리다. 그런데 정부는 현상유지를 위한 그 어떠한 노력이나 시도도 하지 않고 스스로 권리를 포기해 버렸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현상유지 여부에 대해 WTO에 정부가 정식으로 질의를 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는 이것마저도 거부하고 관세화 전면 개방을 선언해 버렸다.
특히 작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결과를 보면 정부의 직무유기 혹은 자포자기가 엄청난 실책이라는 점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당시 각료회의에서는 인도의 WTO 농업협정문 위반 문제에 대해 다른 모든 회원국이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는 합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소위 '평화조항'으로 불리는 이 합의는 인도의 보조금 규정 위반 문제를 합법화시켜 주는 매우 주목할 만한 결정이었다. 인도는 WTO 농업협정문 위반 사항도 정식 안건으로 발의하여 자신의 위반을 오히려 합법화시키는 결과를 얻어내었다.
그런데 인도의 보조금 규정 위반 사항조차 WTO 협상의 의제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정당한 현상유지 권리조차 제기하지 못하는 행태를 보였다. 만약 당시에 현상유지 주장을 제기하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현상유지 가능 여부에 관해 결론이 나왔을 것이며, 그 이후 쌀 개방 문제에 관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러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 지난 7월 7일에 개최된 쌀 개방 해법을 찾기 위한 국제토론회에 주제발표자로 참석한 아프사 제프리(인도)는 한국이 왜 현상유지 주장을 WTO 각료회의에 제기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인도의 비영리기구(NGO) 대표로 각료회의를 참관하면서 인도 정부가 제안한 '평화조항'이 WTO 각료회의에서 합의되는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았던 전문가이기도 하다.
결국 정부는 쌀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 주권을 지키는 최선의 방안으로서 현상유지를 위한 그 어떠한 시도나 노력을 하지 않고, WTO 회원국으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협상도 하기 전에 스스로 포기
정부의 관세화 결정이 갖는 두 번째 문제점은 협상도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쌀 시장개방 문제를 풀어가는 해법의 키워드는 '협상'이었다. 정부의 주장대로 관세화로 전환하는 경우에도 관세율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세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협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정부가 농업협정문에 근거하여 관세 상당치(TE)를 정하여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할 경우 한국의 쌀 관세를 낮추고자 하는 미국 등 상대방 국가가 이의를 제기하면 불가피하게 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일본도 그런 과정을 거쳤고, 대만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밟았다. 아울러 한국이 현상유지를 주장한다고 해서 다른 상대방 국가들이 쉽게 동의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경우에도 어차피 주요 이해 당사국과 협상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결국 쌀 개방 문제의 최종적인 결론은 주요 이해당사국과의 협상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관세화 개방이든, 농민들이 요구하는 현상유지든 결국은 협상이라는 관문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예상되는 쌀 협상의 주요 당사국은 미국, 중국 등이 될 것이며, 쌀 협상의 양상은 WTO 농업협정문 협상 테이블에서도 이루어지겠지만,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관련 협상 테이블에서도 협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쌀 개방 문제에 관한 최종적인 결과는 이와 같은 다양한 협상 테이블에서의 복합적인 협상을 통해 도출될 것이다. 그 협상 결과는 정부가 주장하는 관세화 개방이 될 수도 있고,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현상유지가 될 수도 있다. 또한 관세화 개방과 현상유지 사이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조합되는 절충점도 도출될 수 있다. 결국 고차원의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고도의 복잡한 쌀 협상은 정부가 내세우는 관세화 개방을 최저수준으로 하고, 농민단체가 요구하는 현상유지를 최고수준으로 하여, 그 사이에서 적정한 절충점을 찾아서 합의하는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의 쌀 전면개방 발표로 인해 다른 모든 선택의 가능성이 배제되었고, 관세화로 전면 개방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협상도 하지 않은 채 처음부터 최저수준으로 결정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 것이다. 협상도 하기 전에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 버리고 마지노선에 불과한 관세화만을 유일한 선택으로 좁혀 버렸다. 그동안 정부의 통상협상에서 익숙하게 나타났던 자승자박의 협상 행태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나타난 것이다.
정부와 농민 사이 소통은 없었다
정부의 쌀 개방 결정이 갖는 세 번째 문제점은 쌀 개방과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일방통행식으로 독주하면서 관세화 전면개방을 독단적으로 선택한 것에 있다. 일본은 지난 1999년 관세화로 개방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필리핀은 올해 7월에 타결된 쌀 협상을 통해 2017년까지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는 선택을 했다. 일본과 필리핀은 쌀 개방에 관해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는 공통점을 보였다. 바로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정부와 집권당 그리고 농민단체(농협) 사이에 3자 협의 기구를 구성하여 쌀 개방의 방식 및 사후 쌀 대책 등에 긴밀하게 협의하였다. 이러한 협의 과정을 통해 관세화 개방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정부가 최종적으로 발표하였다. 필리핀은 쌀 협상에 농민대표를 정식으로 참여시켜 협상의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였고 정부와 농민단체의 협의 하에 협상이 진행되었다. 협상에서 상대방 국가가 요구한 사항과 필리핀 정부의 대응방안 등도 공개하였고, 농민단체와 협의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 국가와의 협상을 진행하였다. 최종적으로 쌀 협상의 결과에 대해서도 농민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수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처럼 일본과 필리핀은 쌀 개방 방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선택을 했지만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정부와 농민의 소통 및 협의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쌀 개방에 관한 최종적인 결정에 대해 누구나 다 만족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성과는 거두었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의 독단과 독선에 의한 일방독주로 쌀 전면개방이 발표되었다. 정부와 농민의 소통은 없었다. 정부 주도의 간담회나 설명회 등과 같은 형식적인 요식 행위는 있었지만 상호 간의 의견의 차이를 조율하는 제대로 된 협의 과정은 없었다. 정부는 요식적인 절차를 통해 자신의 전면개방 입장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만 활용했다. 더구나 정부와 국회의 협의 과정 또한 형식적인 보고와 제한적인 정보 공개로 요식행위로만 진행되었다. 쌀 개방 문제에 관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협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쌀 개방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갈등과 논란의 근원적인 책임은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에 있다. 적어도 쌀 개방과 관련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한국은 일본 보다 뒤떨어지고 필리핀 보다 못한 후진적인 행태를 그대로 드러냈다. 국격은 경제력이나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성숙도에서 나온다고 할 때 한국은 정부 스스로 후진국과 같은 행태를 보여줌으로써 국격을 떨어뜨리는 데 앞장섰다.
고율관세, 정부 의지를 믿을 수 있을까
2015년부터 쌀이 관세화로 전면 개방되는 상황에서 향후 국내 쌀 농업에 대한 보호 장치로는 관세율이 가장 핵심이 된다. 높은 수준의 관세율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가장 핵심적인 이슈로 제기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관세율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513% 수준의 높은 관세율을 반드시 확보하고, 둘째, 향후 모든 자유무역협정에서 쌀을 반드시 제외시키며, 셋째,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에 믿으라는 것이다.
먼저,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고율관세를 확보할 가능성은 상당히 높다고 판단된다. 이 관세율은 앞에서 언급한 검증(협상) 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될 것이지만 대체로 높은 수준의 고율관세 가능성이 좀 더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렇게 높은 수준의 관세를 확보하더라도 이것이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만약 쌀이 자유무역협정(FTA/TPP)과 연계될 경우에는 쌀의 관세율이 철폐되거나 감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고율관세는 기본적으로 WTO 회원국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관세율이다. 그러나 FTA/TPP를 통해 특정 국가에 대해서는 별도의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즉 미국이나 중국 등과 FTA/TPP 등을 통해 미국산 쌀이나 중국산 쌀에 대해서는 별도로 낮은 관세율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주식인 밥쌀용 쌀을 한국에 수출할 수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WTO 농업협정문에 따라 정해진 고율관세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지속되기 위해서는 향후 미국, 중국 등과의 모든 FTA/TPP에서 반드시 쌀을 제외시켜야 하는 것이다. 만약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한 나라에라도 쌀의 관세율을 낮춰줄 경우 고율관세는 그 즉시 유명무실한 빈껍데기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표에서 보듯이 관세율이 300% 이하로 떨어지면 미국 및 중국 쌀의 수입가격이 경기도 및 강원도의 산지쌀값 보다도 낮게 된다. 관세율이 200% 이하로 떨어지면 국내 산지쌀값의 평균보다 낮게 되고, 150% 이하가 되면 국내 산지쌀값이 가장 싼 전남북 및 충남의 쌀값보다 더 낮게 된다. 미국 및 중국 쌀에 대한 관세율이 변하면 얼마든지 쌀이 수입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 및 중국 모두 우리나라와 FTA를 맺고 있고,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이며,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G2 국가로 협상력 자체가 우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특히 박근혜정부가 TPP에 가입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부분이 심각하게 우려된다. 현재까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의 나라에게 TPP 가입을 위한 입장료를 FTA 형식으로 지불하고 있다. 아마도 올해부터는 미국에게도 입장료를 지불할 협상이 진행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입장료로 요구하는 목록에는 쌀도 중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만약 미국 쌀에 대해 낮은 특혜관세를 줄 경우, 중국도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정부가 TPP 가입을 포기하면서까지 쌀의 고율관세를 미국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까? 그동안의 경험법칙으로 볼 때 쉽사리 정부의 의지를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농민과 국민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쌀 관세 특별법,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해야
쌀의 고율관세를 장기간 지속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의지만 믿을 수는 없다. 말로만 믿으라는 구두 약속은 언제든지 백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쌀 전면개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독단과 독선에 의한 일방적인 강행처리 행태와 과거 수많은 통상협상 과정에서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왔던 역사적 경험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따라서 말이 아니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 방법은 향후 그 어떤 FTA/TPP에서도 쌀을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제도화하여 (가칭)쌀 관세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즉, 쌀의 관세율을 현행과 같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법에서 정하도록 하고, 이 특별법을 관세법에 우선하여 적용하도록 함으로써 정부가 자의적으로 관세율을 변경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가 자유무역협정 등과 관련하여 관세율을 변경하고자 할 경우에도 현행과 같이 사후적으로 승인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리 사전에 승인을 받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말로는 믿어 달라고 하면서도 정작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는 분명히 이율배반적인 행태이며, 농민과 국민으로부터 정부에 대한 불신을 더욱 높이고 있다. 만약 정부가 말처럼 그렇게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면 특별법 제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정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며, 정부는 말이 아니라 법과 제도로 정책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513% 고율관세를 유지한다 하더라도 5% 관세율로 수입되는 의무수입물량 쌀과 혼합해서 판매할 경우 실제 관세율 효과는 대략 200∼250% 정도가 되어 쌀 수입이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런 방식의 편법과 꼼수를 막을 수 있는 국내 제도적 장치가 현재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산 쌀과 수입산 쌀의 혼합을 금지하는 법안을 반드시 제정할 필요가 있고, 그 법안에 의무수입물량과 일반수입물량의 혼합판매도 금지하는 내용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예상되는 편법과 꼼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쌀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야
비록 2015년부터 쌀이 관세화로 전면 개방될 예정으로 있지만 그런 조건과 상황에서도 쌀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비록 조건과 환경은 달라졌지만 쌀과 식량주권을 지키려는 본질은 여전히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 쌀 농업이 계속 존재하는 한, 우리 국민들이 우리 쌀을 포기하지 않는 한, 변화된 조건과 환경에 맞게 새로운 내용과 방법으로 쌀과 식량주권을 지키는 운동은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관세화 전환 이후에는 의무수입물량을 폐지하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무이행의 형평성을 근거로 관세화외의 다른 의무인 의무수입물량의 철폐를 WTO를 상대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일본 및 대만 등과 공조를 통해 추진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특히, 작년 WTO 각료회의에서 결정된 인도의 사례를 근거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의무수입물량의 부당함을 제기하고, 의무수입물량의 철폐 내지 감축을 정식 안건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올해부터 벌어지는 주요 이해 당사국과의 검증과정(쌀 협상)도 정부에게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국회를 통해서 농민과 국민이 계속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쌀 협상은 고율관세를 확보하는 문제도 있고, 국가별 쿼터를 폐지하는 문제도 있으며, 밥쌀용 쌀의 비중을 철폐하는 사항도 있고, 의무수입물량의 해외원조(대북지원 포함) 사용 권리를 확보하는 문제도 포함되어 있다. 관세율 못지않게 중요한 사항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내용을 정부에게만 맡겨두지 말고 국회를 통해서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면합의 같은 편법을 막을 수 있고, 우리에게 불리한 조건이 붙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쌀과 식량 주권을 되찾기 위한 농업정책을 올바로 세우는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 농정기조를 그대로 둔다면 쌀 전면개방이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쌀과 식량 주권은 점차 고사되어 갈 것이다. 정책의 방향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
식량주권의 핵심인 쌀
쌀은 우리의 역사이자 문화이다. 우리의 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쌀은 농업과 농민의 중추이다. 돈으로 따지면 축산물이 쌀보다 더 많은 돈으로 계산되지만 오직 쌀만이 우리 농업과 농민 전체를 함께 지탱해 주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 쌀은 국민 먹거리의 중심이다. 비록 밥상에서 쌀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낮지만 쌀은 모든 국민의 주식으로서 식량주권과 다원적 기능의 핵심이다. 정부는 쌀을 포기하려 하지만 농민과 국민은 끝까지 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천과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 계간지 <생협평론>은 (재)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가 펴내는, 협동조합을 다루는 본격적인 전문잡지로서 협동경제·나눔·평화에 대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공간입니다. 정보지이자 실천적 교육서로서 협동조합 활동가뿐 아니라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모든 이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전달하고, 협동조합을 둘러싼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이슈를 다룹니다.(☞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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