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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같이 애 키우면서 놀 아빠 없나요?"

[박진현의 제주살이] 아빠를 위한 아빠 육아

요즘 아빠 육아가 뜬다. 아빠가 나오는 예능 육아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아빠 육아의 필요성과 장점을 부각하는 다큐 프로그램들도 여러 편이 나왔다. 실제로 아빠들의 육아 참여와 관심도 예전보다 높아졌다. 첫째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아빠들을 보면 육아에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전에 비하면 확실히 달라졌다. 아빠 육아휴직도 많이 늘었다. 내가 육아휴직을 했던 2011년에는 한해를 통틀어 1402명이었다. 작년에는 10월 기준으로 아빠 육아휴직이 2789명으로 급증했다. 전체 육아휴직자(6만4646명)의 4.3%가 아빠 육아휴직자로 2013년 10월말(3.2%)보다 1.1%포인트 높아졌다. 지금은 3000여 명에 이르지만 2001년에는 아빠 육아휴직이 전국을 통틀어 단 2명이었다. 10년이 지나는 사이에 슈퍼맨들이 참 많이 늘었다.

▲방긋방긋 잘 웃는 둘째 은유 ⓒ박진현
아내는 내가 육아휴직을 했던 2011년에 주위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남편이 좋은 직장 다니나 봐요".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다. 나는 당시 서울에서 민주노총 소속의 한 산별노조에서 일했다. 사회통념상 좋은 직장이라고 할 수 없다. 공무원인 아내는 주위 동료들에게 나의 직업을 솔직하게 말하기가 그래서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라도 육아휴직을 비교적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업은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 등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상상 속에서 선생님, 공무원,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일하는 곳이 노동자의 경제적, 사회적 권리를 지키고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노동조합이다 보니 남성 육아휴직에도 비교적 관대했다. 제도적으로는.

1년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을 하니 주위 동료들이 "잘 쉬었냐"고들 말을 건넨다. 그 말 속에 육아휴직도 '휴직'이다보니 '쉰다'라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사람들마저도 이러니 일반 직장은 어떨까. 나는 군대보다 육아휴직이 더 힘들었다. 그런 육아가 어떻게 쉬는 시간인가. 출산과 육아 때문에 노동자를 부려먹지 못하는 기업, 사용자의 입장에서라면 몰라도!

독일에서는 '육아휴직'이라는 말 대신 '부모시간'이라고 부른다. 당연히 육아에 대한 인식과 사회적 제도가 우리와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독일에서는 노동자들이 노동자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 하루 8시간만 채우면 출퇴근 시간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 기업이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 사용과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을 '유연화'라고 말하는 우리 사회와는 많이 다르다. 노동이 유연해서 한국 노동자는 굴뚝에 올라가서 농성을 하는 반면 독일노동자는 집에서 아이를 돌본다.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맞벌이 시대 독일에서 가장 큰 경쟁력은 '저녁 있는 삶'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2년 조사를 보면, 독일 노동자는 연간 1317시간을 일한다. 연간 2092시간을 일하는 한국노동자에 비해 무려 775시간이 짧다. 일 년으로 따지면 97일을, 하루로 환산하면 3시간가량 독일노동자는 일을 덜 한다. 그 시간만큼 엄마와 아빠가 같이 아이를 돌본다.

아빠 육아가 왜 관심을 받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다. 과거 대가족 시대에는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 아이를 돌 볼 사람이 많았다. 그때에는 둘째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첫째는 할머니가 돌봤다. 지금과 같은 핵가족 시대에는 아빠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 둘째라도 태어나면 주위의 도움 없이 엄마가 일과 육아를 병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빠효과'라는 말도 있다. 아기가 다양한 인격체를 친밀하게 접하면서 발달과 인격형성에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얘기다. 아빠 육아는 아이와 엄마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는 것. 나는 여기에 보태 아빠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빠육아'는 말만 아빠가 아니라, 진짜 아빠가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첫째 윤슬이는 여섯 살이다. 작년 7월에 둘째 은유가 태어났다. 둘 다 남자 아이다. 둘째가 태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첫째가 질투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엄마, 아빠가 안 볼 때 첫째 동생을 꼬집는 등 해코지를 하더라는 경험담도 많이 들었다. 첫째 윤슬이는 둘째가 태어나도 질투를 하거나 해코지를 전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는 은유를 돌본다고 바쁘지"하면서 이해를 하는 넓은 아량까지 보여준다. "윤슬이는 아빠가 돌보지"라는 말도 꼭 덧붙인다. 첫째를 씻기고, 재우고, 돌보고, 놀아주는 일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둘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랬다. 잠도 둘이서 같이 잔다.

▲서울보다 제주가 좋다는 첫째 윤슬이ⓒ박진현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계기는 1년간의 육아휴직 때문이다. 무늬만 육아휴직이 아니었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내는 거의 모든 육아를 나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내가 온전히 아이를 책임져 본 경험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를 업고 씽크대 앞에 서서 국에 밥을 말아 대충 먹은 것도 일상 다반사였다. 한 시간 동안 어르고 달래다 이제 겨우 잠이 들었구나 싶어 눕히면 등에 센서라도 달렸는지 바로 깨서 난감하게 만든 게 하루 이틀이 아니다. 이유식을 잘 안 먹어서 넣는 재료를 달리해 보고, 조리법도 바꿔봤다. 아이는 그래도 먹지 않겠다고 울면서 이유식을 뱉어내서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 이 모든 경험이 엄마로써의 아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웬만한 엄마 못지않게 육아 내공도 쌓였다. 우리 집에서는 어째서 여성만이 육아와 가사에 더 얽매여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육아휴직을 한 경험은 지금 생각해보면 큰 복이었다. 많은 아빠들이 육아휴직을 해서 온전히 아이를 책임져보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 내가 육아휴직을 하면서 주위에 같은 처지의 아빠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스웨덴에서는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가 있다. 부모가 도합 16개월(480일)까지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 이 중 60일은 반드시 아빠가 써야 한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으면 휴직기간은 14개월(420일)로 줄어든다. 그래서 아빠들의 휴직이 보편적이란다. 한 일간지에서 스웨덴 아빠가 "비슷한 시기에 아빠휴직을 한 친구가 3명이 있어 티타임도 하고 정말 재밌었다"고 말한 인터뷰는 참 부러웠다.

우리 가족은 작년 1월 제주도로 이주했다. 1,2월은 첫째 아이와 하루 종일 보냈다. 제주 이곳저곳을 신나게 놀러 다녔다. 언제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행복한 시간이었다. 3월부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서는 나만의 시간이었다. 물론 집안 살림은 나의 몫이었다. 7월 말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내의 산후조리를 내가 했다. 음식부터 모든 것을. 10월부터는 한살림에서 일을 시작했다. 제주에 오면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싶은 바람도 있었고, 한살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이가 있는 엄마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급여는 서울보다 뚝 떨어졌다. 서울 생활과 다른 것이 있다면,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이 짧고(15분으로 왕복 30분), 특별한 상황이 생기지 않으면 야근을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아내는 가벼워진 월급봉투를 아쉬워 하지만, 대신 서울보다 넉넉해진 나의 시간에는 만족해한다. 아내는 최근 한 발 더 나가서 "자기 일 나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을래"라고 말했다.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지금은 아이 키우는 데 더 많이 집중을 하고 있지만,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아이와 다른 나의 삶도 있다. 대신 육아휴직을 3개월 정도 할 생각이다. 육아휴직은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하고, 끈끈한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육아를 하는 아빠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볼 생각이다. 제주에서 나랑 같이 아이 키우면서 놀 아빠 어디 없나요.

▲지난 주말에 온 가족이 새벌오름에 다녀왔다ⓒ박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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