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시련의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도심에서 전광판 농성을 벌이던 씨앤앰 해고 노동자들은 해를 넘기기 전 극적 타결을 이뤄 일터로 돌아갔지만, 양대 통신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의 파업은 장기화되는 분위기다.
민주노총은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진짜 사장 SK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로 54일째 파업을 진행 중인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는 지난 6일 원청과의 대화를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SK그룹 본사 점거농성에 돌입했다가 200명 넘게 무더기로 연행되기도 했다.
이들은 SK브로드밴드에 간접 고용된 인터넷 및 IPTV 설치·수리 기사들로, 다단계 하도급 근절과 고용 보장, 노동시간 단축, 근로기준법 준수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11월20일부터 파업을 벌여왔다. SK브로드밴드의 모회사인 SK텔레콤 앞에서 노숙 농성을 벌인 지도 벌써 84일째다.
이경재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장은 "엔지니어로 취급받고 싶은 기술자들을 서비스맨으로 전락시키고,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법도 무시한 채 이용당하다 버려지는 것이 SK브로드밴드 수리기사들의 현실"이라며 "회사에 노조를 인정하고 대화를 하자고 요구하며 10개월 넘게 기다린 끝에 '진짜 사장'을 찾아갔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조합원 222명의 연행과 간부 1명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였다"고 질타했다.
앞서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조합원들은 지난 6일 SK그룹 본사 점거농성에 나선 뒤 3시간 만에 자진 해산했지만, 경찰은 4층에서의 점거 농성을 풀던 조합원 222명 전원을 강제 연행하고 이들 중 3명에 대해서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 9일 이들 중 2명의 구속영장은 기각하고 정모(42) 부지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SK그룹 총수인 최태원 회장의 가석방 논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부는 "횡령, 배임, 비리로 두 번씩이나 구속되고 아직 형기의 절반도 지나지 않은 범법자를 구하고자 집권 여당의 대표까지 볼썽사납게 나섰다"면서 "현재도 매일 매시간 SK브로드밴드에서는 범법 일과가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데, 가장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총수를 감옥에서 풀어주자니 말이 되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감옥에 갇혀 있는 지금도 최태원 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을 불법적으로 착취해 엄청난 돈을 벌고 있다"며 "가석방 운운할 것이 아니라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마땅하며,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재벌 총수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가장 고통스러운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 먼저 달려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오전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업인이라고 해서 특혜를 받는 것은 안 되지만 역차별을 받아서도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혀, 최태원 회장이 조기 석방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상균 민주노총 신임 위원장은 "SK 재벌이 중간 착취로 이제껏 많은 돈을 벌었고 비리까지 저질러 감옥에 있는데,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무차별 연행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라며 "다시 한 번 SK자본에 엄중하게 경고한다. 15일까지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면 더욱 강력한 국민적인 저항 전선을 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오는 15일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긴급 결의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이 단위 사업장 현안에 대해 총연맹 차원의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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