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체결로 한국은 미국, EU, 중국 등 세계 3대 경제권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국가가 되었다. 정부에서는 경제적 영토가 그만큼 확장되었다고 이야기하지만, 97년 외환 위기가 성급한 세계화의 결과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는 지나친 낙관이다. 오히려 우리가 세계 3대 경제권과 모두 FTA를 체결한 유일한 나라로서 이를 관리할 수 있을만한 국가적 역량이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산업 정책이 더욱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예측 불가능해졌다.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변수를 안게 되었고, 이는 결코 긍정적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문제다. 보다 세부적으로 문제를 살펴보면 이러한 점들이 잘 드러난다. 우선 대중국 수출에서 우리가 유리한 상황에 있는 자동차와 IT분야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협상력의 문제가 있었거나 서둘렀다는 뜻이다.
이익은 불투명한 반면에 손해는 당장 눈에 불을 보듯 뻔하다. 특히 농업 부문이 그렇다. 2008년의 마늘 파동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농산물 문제는 통상개방과 관련해 지난 수십 년간 사회 갈등의 진원지였다. 당장 농가의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 보면 식량 주권의 문제도 달려 있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모호한 정부 입장이다. 농업·수산업처럼 예측이 장기적이고 어려운 분야는 심리적 타격이 중요하다. 당장 농업 부문에 대해 투자가 줄어들고, 농사를 포기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일부 상업적 영농 부문의 발전이 대 중국 수출의 판로를 개척할 수 있을지 모르나, 이는 생산과 유통 전 분야에서 농업 현대화, 혹은 수입대체에서 수출주도형 전환 등의 국가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될 때만 가능하다. 오히려 농업 전반에 대한 비관적 전망은 농촌공동체 파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순전히 농산물 등에 대한 경제적 보상만 염두에 둘 경우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체결 과정의 비공개성 역시 상당한 문제가 있다. 이명박 식 자원외교와 4대강 사업처럼, 정부의 실적 쌓기 용 졸속 행정의 결과가 후대에 부담을 주는 정책은 지양되어야 한다. 국가 정책에 의해 산업 부문별로 심각한 피해를 보거나, 정부 부처나 산하 공기업에 막대한 부채를 남기고 세금으로 그 부분을 메우는 식의 국가운영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주요 경제 선진국과의 FTA 체결은 민주적이고 공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중 FTA에 따른 국가적 피해는 당장이 아니라 5년 뒤, 10년 뒤부터 장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까지 박근혜 정부는 장밋빛 낙관론만을 추상적으로 제시하는데 그치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이번 FTA 협상 과정은 또 한번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한국이 아무런 국제정치적 비전 없이 이번 FTA를 체결했다는 점이다. 한국이 이번 한중 FTA 체결을 한국이 서둘렀다는 점은 항간에 잘 알려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이후 시진핑 주석과 무려 5차례나 만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음에도, 속칭 '드레스 외교', '패션쇼 외교'에만 머무르면서 사실상 아무런 실질적 외교 성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해 도출한 조급증의 결과였다.
FTA 체결 과정이 졸속으로 진행되면서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한국과 중국 간의 역학적 관계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중 수교 이후 중국은 항상 한국에 경제적 이익을 내주고 정치적 이익을 취해왔다. 이러한 중국의 대한 외교의 일반적 경향에 따르면, 한국은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상을 진행해야 했다.
중국은 미국이나 영국과의 정치적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늘 경제적 손실을 감내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극진히 환대하면서, 한편으로 중국의 에너지 시장을 노골적으로 요구해 관철시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FTA라는 큰 협상에서도 뚜렷하게 얻어낸 것이 없다. 사실 한중 FTA는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자유시장과의 첫 접점을 만든 것으로, 중국이 손해를 감내하면서도 무엇인가를 배워가려는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으로서는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면서도 구체적인 경제적 이익을 요구할 수 있었다. 가령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 대통령은, 현재 투자 부족으로 침체에 빠진 송도경제자유구역이나 새만금지구에 중국의 투자를 적극 요청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체결에만 급급한 나머지 실질적인 국익 확보의 계기를 허공에 날려버렸다.
FTA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지렛대로 삼기 위한 정치, 외교적 관계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수반되어야 했다. 아쉽게도 한중 FTA 체결 이전, 이후에도 정부로부터 이러한 그랜드 비전,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외교와 대북관계에서 한중 FTA가 어떤 기반으로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단 한마디도 들어보지 못했다. 큰 틀에서 국가 이익을 위한 전략 기반이 없었다는 뜻이다.
아주 늦은 것은 아니다. 한중 FTA의 국회 비준을 계기로 삼아 FTA와 관련한 동북아시아 외교 협력 제안을 서둘려 마련해야 한다. 한중 FTA가 경제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하기 위해 남북한 접경지역에 중국이 참여하는 제2의 개성공단 조성과 같은 아이디어를 중국과 협의할 수도 있다. 이것은 경제적 협약인 FTA를 정치적·외교적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며, 한반도에서 지리적으로 사실상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한국이라면 반드시 고려했어야 할 정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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