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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 걸린 어린이,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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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병' 걸린 어린이, 무슨 끔찍한 일이 있었나?

[서리풀 연구通] 아동 학대 감소, 날카로운 눈과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수많은 언론이 하루가 멀다 하고 최신 의학 기술이나 '잘 먹고 잘 사는 법'과 관계있는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하루에 ○○ 두 잔 마시면 수명 ○년 늘어나" 같은 것들입니다.

반면 건강과 사회, 건강 불평등, 기존의 건강 담론에 도전하는 연구 결과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습니다. <프레시안>과 시민건강증진연구소는 '서리풀 연구通'에서 매주 목요일, 건강과 관련한 비판적 관점이나 새로운 지향을 보여주는 연구 또 논쟁적 주제를 다룬 연구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개인의 문제로 여겨졌던 건강 이슈를 사회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건강의 사회적 담론들을 확산하는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아동 학대 감소, 날카로운 눈과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지난 9월 29일부터 '아동 학대 범죄의 처벌들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되었다. 작년 8월 경북 칠곡에서 학대 받던 어린이가 사망하고, 이어 11월 울산에서도 비슷하게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것을 계기로 국회는 서둘러 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아동 학대 신고 의무를 갖는 직군이 2개 더 늘어났다.

지난 10월에는 딸을 강제로 성추행한 친아버지에 대해 일시적 친권정지 결정이 처음으로 내려졌다(2014년 10월 22일, 전북경찰청). 또 강원도 정선에서는 아동 학대를 신고하지 않은 교사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첫 사례가 발생했다(2014년 10월 31일, 정선군). 아마도 이런 사건을 계기로 아동 학대 신고 건수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은 아동 학대에 대처하기에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미 특례법 이전에도 무려 22개 직군에게 아동 학대 신고 의무가 부여되어 있었다. 이들이 제대로 신고만 했어도 상당수의 아동 학대는 발견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발견 이후에 피해 어린이를 어떻게 보호하고 돌볼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데, 이에 대한 준비는 불충분해 보인다. 당장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법무부 등으로 분절되어 있는 학대·방임 아동에 대한 조치와 절차들이 어떻게 통합 관리한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아동 학대에 대한 처벌과 신고의무 강화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드러나지 않는 피해 어린이를 꼼꼼하게 찾아내고 보호할 수 있을지 세심하고 구체적인 수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최근 영국의 리차드 리딩 교수 등이 <아동질환 논집>에 발표한 논문은 한 가지 참고할 만한 단서를 준다. 이 연구는 영국과 아일랜드의 모든 소아과 전문의들이 25개월 동안 참여한 전국 성 매개 감염병(전염병) 감시 사업 결과에 기초한 것이다. 의사들은 자신이 진료한 1~13세 어린이 중 검사 결과 임질, 매독, 클라미디아 감염증이 확진된 경우, 설문 조사를 시행하고 상세한 임상 정보와 함께 이를 중앙 사업단에 보고했다.

연구 기간 동안 총 15명의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는 100만 명당 채 1명이 안 되는 드문 발생이다. 이 중에서 법원이나 사례 집담회를 통해 성적 학대가 입증된 경우는 3명이었다. 하지만 임상적 특징과 가족력, 사회력을 종합해 볼 때 추가로 7명에서 성적 학대가 의심되었다. 연구진은 13세 이하 어린이가 성 매개 감염병에 걸렸다면 성적 학대를 의심하여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의 성 매개 감염병이 결코 흔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발생한다면 이는 아동 학대, 특히 성적 학대의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2013년 한 해 동안 14세 이하 어린이들 중 성 매개 감염병으로 보고된 건 수는 9건이었다. 이 어린이들이 이후 어떠한 처치를 받았는지, 아동 학대와 관련한 추가 조사나 상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질병관리본부가 발행한 성 매개 감염 진료 지침은 어디까지나 진단과 치료를 위한 임상 지침이지, 성학대나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보호나 후속 조치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어린이, 청소년의 임신이나 낙태, 출산의 경우에도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 여부 확인, 사회적 보호와 같은 지침이나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운이 좋은 경우에는 그룹 홈이나 쉼터로 연계되어 보호와 돌봄을 받지만, 대개는 그렇지 못하다.

앞서 소개한 논문에 따르면, 단순히 아동 학대를 신고하는 게 끝은 아니었다. 어린이 성 매개 감염병이 확인된 경우, 대부분 보건의료서비스 뿐 아니라 경찰이나 아동 서비스 기관의 추가 조사, 사례 토의, 아동 복지 전문가들의 개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어린이의 건강과 인권을 가장 우선에 둔, 날카로운 눈과 세심한 손길이 우리 사회에도 절실하다.

참고 자료

Reading R., Rogstad K., Hughes G., Debelle G., 2014, "Gonorrhoea, chlamydia, syphilis and trichomonas in children under 13 years of age: national surveillance in the UK and Republic of Ireland." Arch Dis Child 99(8): 712-716.
보건복지부 &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2013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
통계청, <성 매개 감염병 연령별 통계>.

(이 글은 2014년 11월 5일 시민건강증진연구소 누리집에 실렸던 원고입니다. '서리풀 연구通'은 연재 시작에 맞춰서 새롭게 준비한 글 외에도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글 가운데 몇몇을 추려서 다시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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