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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삼시세끼>처럼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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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삼시세끼>처럼 어떠세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잠시 멈춤'의 치유 효과

얼마 전부터 한 케이블 방송에서 방송 중인 <삼시세끼>란 프로그램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치유계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이 프로그램은 복잡하고 바쁘고 각박한 현실에 '때에 밥은 먹었니?', '이리와~ 밥이나 한끼 먹자'라고 말을 거는 것 같습니다. 강원도 산골의 작은 집에서 벌어지는 단순한 일상(물론 작가와 피디의 치밀한 구상으로 만들어진 것이겠지만)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끈이 살짝 느슨해집니다.

텔레비전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어릴 적 시골집 생각도 나고 이런 저런 따뜻했던 기억들이 떠올라 실없이 웃다가 아내에게 한 소리 듣기도 하지요. 다 보고 나면 괜히 본가에 전화를 걸어 보기도 하고 추석에 보고 못 본 고향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남기기도 합니다. 다들 큰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답신이 오면 괜히 가슴 한 켠이 뭉클해 집니다. 바보상자를 들여다 보다 잠깐 바보증후군에 걸린 것인데, 이게 그리 나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증상을 앓고 나면 심장에는 온기가 돌고 머리는 맑아지기 때문입니다. 좋은 책 한권, 한편의 방송프로그램이 때론 어떤 약보다도 효과적일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 환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병들이 일상의 삶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살아 오면서 몸과 마음을 써온 습관들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차곡차곡 쌓여서 임계치를 지나 병이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 몸을 과하게 쓰거나 운동을 안하거나 사고로 다친 것과 같은 신체적인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고 확실한 불편함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좋은 영양을 섭취하고 적당히 몸을 움직이고 충분히 쉬는 것 만으로도(물론 이 또한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일정한 효과를 기대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감정의 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들은 본인이 인식하기도 쉽지 않고 바꾸기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다들 이렇게 살죠", "세상 일이 다 내 맘대로 되나요", "이 정도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론 몸의 모든 신호들은 '난 지금 예민하고, 상처 받았고, 힘들어요'라고 말하는데도 "아무 문제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수 십년전 받은 마음의 상처가 물결처럼 그 이후의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있고요.

▲<삼시세끼>의 한 장면. ⓒtvN


병의 뿌리가 너무나 생활밀착형이고 본인 스스로가 잘 인식을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서 이 뿌리를 살짝 흔들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하루나 이틀 정도 가까운 곳이라도 여행을 떠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여기 저기 관광 다니지 마시고 그냥 많이 걷고 남이 해주는 맛있는 음식 먹고 푹 자고 가능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많이 갖으시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냥 집에서 쉬면 되지 않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안된다고 말씀드리지요. 이 여행의 목적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던 삶을 잠시 멈추고 자신의 일상을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는데 있으니까요. 그렇게 잠시 떠나 있는 시간을 가지면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그 빈 시간을 통해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돌아보게 됩니다.

솔직히 이렇게 한다고 해서 영화에서와 같은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별 것 아닌 이 시간이 계기가 되어 조금씩 변할 수 있습니다. 마치 방향키를 아주 약간 튼 것처럼 말이죠. 처음에는 똑같이 나아가는 것 같지만 한참의 시간이 흐르면 이전의 항로와는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본인의 지속적인 노력과 옆에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더 빠르게 건강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삶도 좀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몸 뿐만 아니라 감정을 내고 마음을 쓰는 습관이 변해야 하니까요.

연말연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떠들썩하고 유쾌하게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에는 하루 정도,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행위만을 하면서 아주 고독하게 보내 보면 어떨까요? 누군가는 청승맞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 고독과 여백 속에서 내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앞으로의 삶에 활력을 불어 넣어 줄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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