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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오판, 김정일 와병설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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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의 오판, 김정일 와병설 때문?

[제네바 합의 20주년 특별기획] 북핵, 역사에 길을 묻다(5)

20여 년간의 북핵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그는 임기 초반에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불렀다가, 임기 막바지에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러한 대변신은 네오콘의 몰락과 더불어 ‘정권교체’가 아니라 협상이 북핵 해결에 더 좋은 방식이라는 깨달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 사이에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 정권만 바뀐 것이 아니라 정책까지 확 바뀌었다. ‘백악관에서 쫓겨난 네오콘이 청와대로 들어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보다 더 강하게 북한을 몰아붙였다. 이명박 정부는 9.19 공동성명의 2단계 합의, 즉 10.3 합의에 없었던 북핵 검증을 더 강하게 요구해, 결과적으로 6자회담을 파탄 낸 책임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역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는 역사적 기회를 맞이하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의 변신은 한반도 핵문제를 비롯한 정전체제에서 빚어진 비정상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극보수에 가까웠던 부시 행정부 때 큰 진전을 이루면 그다음에 미국 정권을 누가 잡든 지속가능한 합의 및 이행이 이뤄졌을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또한 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항을 이행하면 그 공도 MB에게 돌아갈 터였다. 그러나 MB 정권은 역주행을 선택했다. 왜 그랬을까? 청와대의 머릿속에서는 딴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와병, 그리고 MB의 딴 생각

MB 정부가 딴생각을 품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었다. 김정일이 2008년 8월 14일 군부대 시찰 이후 공개 활동이 뚝 끊기고, 특히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60돌 행사에도 불참함으로써 와병설은 더욱 증폭되었다. 그러자 국가정보원은 “김정일이 뇌졸중이나 뇌일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회복 중”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부축하면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거나, “양치질을 할 정도의 건강 상태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는 등 마치 김정일을 옆에서 보고 있는 것처럼 상세한 언급들을 쏟아냈다. 이렇게 김정일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자랑했던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정작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에는 이를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 2010년 10월 노동절 행사 당시 김정일(왼쪽) 국방위원장 ⓒAP=연합뉴스

김정일의 와병설이 불거지자, MB 정부 안팎에서는 ‘이 기회에 통일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원장은 9월 하순에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발표되면서 통일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고, 이기택 민주평통 수석부의장도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통일에 이제라도 서둘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그동안 통일에 비해 평화의 가치를 과도하게 내세웠던 적이 있었다”며, “그러나 평화와 통일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 할 우리의 가치”라며, 통일에 주목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11월 중순 워싱턴 기자간담회에서는 “자유 민주주의 하에서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김정일 와병설은 북한 급변사태 대비론으로 급격히 옮겨붙었다. 이상희 국방장관은 11월 초에 “북한의 불안정 상황을 대비하는 게 군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12월 초에는 “북한에 급변 사태나 불안정 사태가 발생할 때 중국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급변사태 발생에 대비해 개념계획인 5029를 작전계획으로 격상하는 것을 비롯해 대응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2008년 12월 31일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는 MB 정부의 흡수통일 야심을 여실히 드러낸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남북대화 재개와 관계 정상화 방안을 설명했다. 2008년 내내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남북관계를 2009년에는 풀기 위한 방안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이명박은 “과거와 같이 북한에 뭔가를 주고 경제 협력을 하는 것으로 남북관계가 개선됐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된다”며 김하중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러면서 대화 재개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며, “통일부는 제대로 된 근본적인 전략을 세워보라”고 주문했다. MB가 말한 “근본적인 전략”이 바로 북한 급변사태 대비 및 흡수통일 전략이었다.

한일 ‘몽니 연대’

이처럼 MB 정부가 북핵 해결보다는 흡수통일에 관심을 두면서 6자회담도 크게 흔들렸다. 당시 첨예한 문제였던 검증 문제와 관련해 “우리가 달성해야 할 검증의정서가 과학적이고 국제적인 기준에 바탕을 둔 것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런 핵심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핵 신고서에 핵무기가 빠졌다”며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런데 9.19 공동성명의 2단계 이행 조치 합의인 10.3 합의에서는 국제적 검증과 핵무기 문제를 3단계 협상에서 논의하기로 한 바 있다. 미국 네오콘과 마찬가지로 MB 정부 역시 ‘경기 중에 골대를 옮긴 것’이다.

MB 정부의 강경 기조는 행동으로도 옮겨졌다. 북한이 2008년 9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불능화된 영변 핵시설 재가동에 돌입하자, MB 정부가 에너지 지원 중단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10.3 합의에 따라 북한에 제공할 예정이었던 자동용접강관 3000톤 중 이미 생산된 1500톤의 북송을 늦췄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협상의 동력을 살리고자 부시 행정부가 에너지 제공을 계속했던 것과는 상반된 것이었다. 더구나 MB 정부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원상 복구한 이유를 김정일의 와병과 연결시켜 북한 내 불안정이 증폭되고 있는 징후로 간주했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이 10월 들어 테러지원국 해제를 결정하자 즉각 영변 핵시설 불능화에 다시 착수했다.

2008년 11~12월 당시 최대 쟁점은 ‘시료 채취’ 문제였다. 북한은 낮은 수준의 검증에는 협력할 수 있지만, 시료 채취를 포함한 강도 높은 검증은 다음 단계의 의제라는 입장이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계속 협의할 사안”이라며 이 문제로 6자회담이 좌초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MB 정부는 일본과 ‘몽니 연대’를 구축했다. 양국 정부는 “어떤 종류의 합의가 어떤 형태로 나오든 간에 거기엔 시료 채취가 의심의 여지 없이 있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면서 시료 채취를 에너지 지원과 연계했다.

이게 ‘몽니 부리기’인 까닭은 10.3 합의나 그 이후 수석대표 합의 어디에도 이러한 내용은 담겨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7월 12일 채택된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합의문에서는 “북한의 영변 핵시설 불능화와 여타 참가국들에 의한 대북 중유와 비중유 잔여분 지원은 병행하여 완전하게 이행될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 합의문 어디에도 에너지 지원의 조건으로 시료 채취를 포함한 검증의정서 채택이 있어야 한다는 언급은 없었다.

결국 6자회담은 그해 12월 중순 결렬되고 말았다. 그리고 6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만약 이때 MB 정부가 기존 합의에 충실해 미국 내 협상파와 보조를 맞췄다면, 2단계는 마무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009년부터는 미국의 새로운 파트너인 오바마 행정부와 함께 최종 게임, 즉 북한의 핵무기 폐기 및 검증 협상에 돌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딴생각에 빠진 MB 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에게 딴생각을 심어주는 데 관심이 컸다. 그건 바로 김정일이 사망하면 북한은 오래갈 수 없으니 흡수통일을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흡수통일론과 북핵의 적대적 상호의존

기실 제네바 합의 20년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는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일성 사망 직후에도, 북한의 대기근 시기에도, 김정일 사후에도,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북한은 곧 망하고 통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묵시록적 예언이 판을 치고 있다. 한미 양국 정부는 공식적으론 부인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박론’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도 결국 북한 붕괴를 노리는 것이라는 혐의를 씻기에는 역부족이다.

북한붕괴론은 편리한 도구이다. 찌질하고 까탈스러운 북한을 피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정책 실패를 타자에게 돌리는 근거로도 이용된다. 국내외 보수 진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로 비난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중국이 대북 제재와 압박에 적극 동참하지 않아 북핵 해결도 안됐고, 북한이 그럭저럭 버텨왔다고 비난한다.

북한붕괴론은 또한 ‘북한의 핵포기 불가론’으로 둔갑되어 표현되곤 한다. 북한 정권의 목표는 핵보유이고 그 정권은 곧 망할 것이라고 믿어버리면, ‘협상’은 아예 필요 없게 된다. 그저 대북 제재와 압박, 그리고 ‘기수열외’와 비슷하게 북한을 악마화하고 ‘국가열외’를 시키면서 ‘그 날이 오면’을 기다리면 된다.

그런데 기다린 결과가 과연 무엇인가? 북핵은 비약적으로 강화되었고, 김정은 체제는 빠르게 안착되고 있으며, 경제와 식량 사정도 호전되고 있다. 특히 북한붕괴론은 ‘한미 양국의 의도는 자신을 무장해제시켜 잡아먹으려고 한다’는 북한의 의구심을 자극해왔고, 그 결과 북한은 “핵 억제력”에 더더욱 집착하고 있다. 북핵과 흡수통일론은 이렇게 만나온 것이다.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론이 안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북핵 협상과 양립할 수 없고, 그 결과 북핵 강화를 초래해왔다는 점에 있다. 협상을 통해 북핵을 해결하려면 북한의 요구 사항 상당 부분을 들어줘야 한다. 에너지 제공과 경제제재 해제부터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 사항을 들어주면 ‘북한은 곧 망하거나 망해야 한다’는 자기 신념을 배신하는 셈이 된다.

북한이 무너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한심한 일이지만, 북한의 패망은 ‘거대한 버섯구름’을 동반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북한에서 무슨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한미연합군이 투입되는 경우이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땅에서 통일 코리아의 꽃을 피울 수는 없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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